"선생님은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하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듣고는 하는 질문이다. 나는 외형적으로 마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음식을 깨작거리며 먹는 모습으로 인해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고는 한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면 누구라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에 빠질 것이다. 나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 어떨 때는 눈이 뒤집혀서 숨 한번 제대로 고르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는 경우도 있다. 다만 살이 찌는 것을 의식하거나, 낯선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수저는 더디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었다. 허리둘레도 컸고 흘리는 땀도 많았다. 그때는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기도 했지만, 거울에 보이는 혐오스러워하는 나의 눈빛은 그 누구의 시선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대학교에 들어가며 어렵게 살을 빼게 되었다. 줄어든 체중만큼 일상에서 용기를 가지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다시 살이 찌게 되는 상황이 못내 두려웠다. 매끼마다 먹는 양을 의식했고,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더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는 날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친하지 않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다 보면 수저를 들 타이밍을 자주 놓치고는 했다. 그 사람의 말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친했다면 자연스럽게 정수리를 보이며 말을 들었겠지만,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나는 최선의 반응을 보이기 위해 음식 대신에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열심히 대꾸했다.
이러한 의도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음식 섭취에 대한 의지가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우울증의 한 가지 증상으로는 체중 변화가 있다. 높아진 우울감으로 인해 체중에 현저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살이 빠지는 것을 경험했었다. 대학원 생활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였다. 먹는 것에 소홀했던 날이 많았다. 하루 한 끼는 대부분 라면으로 해결했다. 저녁은 굶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 라면 한 봉지가 마지막 식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배가 고프다는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찾아서 먹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주식이던 라면마저도 먹고 싶어서 끓였다기보다는 배에서 울리는 소리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서 그나마 선택한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특별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그만둔지도 1년이 넘었었고, 특별한 소속도 없었다. 밥을 혼자 먹는 날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아침이면 엄마는 조카를 돌보러 가고, 아빠는 출근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차려 먹는 것이 내게는 일상이었다. 밖에서 밥을 사 먹거나 주문하는 날도 드물었다. 밥을 먹겠다고 외출하거나, 식당을 검색하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울감이 깊어질수록 스스로 원하지 않았으나 고립하게 되는 굴레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들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다 보면 기분은 나아지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없게 하는 것이 내게 찾아온 우울이었다.
이처럼 말라가던 나에게 먹는 즐거움을 손수 알려준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조카들이었다. 우준이와 서준이는 누나를 통해 보고 싶다는 얘기를 수시로 전했다. 그간의 삶을 통틀어서 나에게 아침, 저녁으로 보고 싶다고 표현한 사람은 조카들이 유일했다. 조카들이 놀자고 할 때면 기쁘기도 했지만,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허하고 의욕이 없는 상태인 내가 조카들의 기대만큼 놀아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카들의 나이는 어느덧 6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당연하면서도 신기했다. 만날수록 혈기왕성해졌기 때문이었다. 놀이에서도 신체의 움직임이 많아졌고, 방식도 과격해졌다. '그들의 에너지 수준에 맞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면 음울했던 나는 그 어떠한 대답도 시원하게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가도 보고 싶은 마음에 덜컥 조카들을 만나러 가면 이내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당시에 조카들이 하원하는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그 시간에 맞춰 조카들 집에 가고, 함께 놀다 보면 저녁때가 금세 찾아왔다. 우준이와 서준이가 나를 만나는 일이 그들의 기대만큼 자주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저녁밥을 미루고서라도 더 놀려고 했다. 그럴 때면 엄마나 누나는 소리쳤다. "그러면 삼촌 집에 가라고 한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식탁에 모여 앉은 우리는 밥을 기다리며 어떤 놀이를 할지에 대해 떠들고는 했다. 대부분 명칭만 다를 뿐 '치고받는다'는 놀이의 규칙은 비슷했다.
우준이, 서준이와 같은 식탁에 앉으면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반찬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소시지나 계란 프라이, 김은 특히 빠지지 않는 반찬들이었다. 이들은 우준이와 서준이의 1, 2, 3 순위의 반찬이기도 했고, 그들 못지않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기도 했다. 나는 우준이, 서준이의 생활이나 취향에도 관심이 많았으므로 밥을 먹는 시간을 빌어 질문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우준이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해?", "서준이는 어떤 간식을 제일 좋아해?", "오늘 어린이집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어?" 이처럼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유일하게 허락된 곳인 식탁에서 우준이, 서준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조카들과 놀며 노곤해진 상태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입맛이 도는 게 느껴졌다. 한 것이라고는 악당이 되어 조카들의 정의로운 공격에 맞거나, 놀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거나, 조카들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밥과 반찬이 모두 맛있게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밥알의 식감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했고, 반찬의 맛이나 향을 음미하기도 했다. 뭐랄까.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잠들어있던 나의 감각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조카들과의 한 끼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때의 기쁨을 새삼 체험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먹는 양을 편하게 조절할 수도 있고, 잘 보이기 위해 신경 쓸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카들과 밥을 먹을 때처럼 호기심과 관심에서 비롯한 대화가 오가는 식탁에서는 사람의 푸근한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기에,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가까운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는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친구들이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을까?' '기대와는 다른 맛으로 실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기꺼이 먼저 연락할 수 있는 데에는 우준이, 서준이와 함께 있었던 식탁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굳건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다.
"따끼는 어떤 음식 제일 좋아해?"
"삼촌은 소시지랑 계란 프라이, 김을 좋아해"
"어? 우리랑 똑같네"
"사실 우준이, 서준이가 좋아하는 거 알고 대답한 거야"
"따끼는 거짓말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