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상담센터에서 인턴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내담자를 만나고, 자신이 진행한 상담에 대해 숙련도 높은 전문 상담사의 지도를 받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이다. 대학상담센터에 지원서를 쓰기 전에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곳이 있었다. 그곳은 여느 직장처럼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또한 사람으로 아픈 마음을 치유하기에는 받는 상처가 깊고 쓰라린 곳이었다. 회사 생활은 시작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나의 믿음에 따라, 메마른 인내심을 짜내며 6개월 정도를 근무하고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며 퇴사했다.
대학상담센터의 분위기는 낯설었다. 내가 경험했던 새로운 환경들이 대부분 낯설었지만, 그러한 경험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낯설었다. 학생상담센터는 친근하면서도 은밀한 곳이었다. 내담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면서도, 상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인턴 상담사들의 자리는 학생상담센터 입구 근처에 있었다. 상담센터를 찾아오는 내담자들에게 일차적으로 응대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상담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기 이전에 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배웠다.
학생상담센터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좋았던 점들 중에 하나는 여러 상담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나와 함께 인턴 근무를 했던 동료 상담사들부터 경험이 풍부한 선배 상담사들까지 많은 상담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직업 선택에 저마다의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상담사들이 상담을 업으로 결심한 이유는 다양했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부분 "저에게 잘 맞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상담 수련을 막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말할 수 없었다. 반면에 상담사들의 대답은 다양했다. 또한 경력이 많을수록 목소리는 또렷했다. 돈이 목적인 상담사는 드물었고,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나누며 내담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는 상담사는 많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센터에서 근무하던 선배 상담사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러 얘기를 주고받다가 선배 상담사는 문득 나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은 정리했던 내용을 말해주는 것 같네요?"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옳았다. 나에게는 글을 쓰며 의미 있는 경험에 대한 생각, 감정, 느낌 등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와의 대화에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글을 통해 정리해두었던 속마음을 보기 좋게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정리한 내용을 들려주는 것 같다는 그의 물음은 그 순간의 나를 자각하며 그간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되어주었다.
스트레스는 일반적으로 만병의 근원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게 될 경우 몸과 마음에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받는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그 외의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의 일상적인 패턴이다. 즉, 무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우울감과 기분 변화가 심한 상사로 인한 충격적인 경험, 외부로 시선을 두며 깊어진 무가치함과 그곳을 그만두고 겪게 된 무의미함, 절망감은 나를 새로운 자극이 두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학생상담센터가 유독 낯설게 느껴지며 적응하는 데에 고생을 했던 이유도 안정적인 상태에서는 견딜 만한 정도였을 스트레스가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실수도 중대한 사건으로 지각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일어났거나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글을 쓰며 해소하고, 정리하고, 대비했다.
6월이 끝나갈 무렵, 나와 조카들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우준이와 서준이 그리고 나는 같은 달에 태어났다. 날짜도 단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생일을 두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특별한 인연의 증거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이번 생일에는 부모님과 누나, 매형, 조카들과 나는 도란도란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때의 나는 대학원생과 조교, 인턴을 병행하던 시절이라 직장에 다닐 때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연스레 쉬는 일에는 소홀했었고, 그날은 몸살에 걸린 것 같은 상태로 식사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우준이는 매형의 등에 업혔고, 서준이는 나의 등에 업혔다. 손깍지가 풀릴 것만 같은 무게에 괴로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때였다. 서준이는 나에게 물었다. "삼촌, 어제 아이스크림 몇 개 먹었어?" 내가 식당에서 몸이 안 좋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두 개 먹었는데?" 내가 대답하자, 우준이는 말했다. "에이,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으니까 그렇지"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몸이 아프다고 말했을 때에 나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흐릿한 인상으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아플 때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평소에 물어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습이 특별히 선명해지지는 않았다. 정리했던 내용을 말하는 것 같다는 선배의 물음처럼 아이스크림을 몇 개 먹었냐는 서준이의 질문은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인사치레처럼 할 법한 보편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흔한 궁금증조차 낯설게 느낄 만큼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타인들로부터 고립된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번 정리했던 경험을 말할 때의 나와 정리하지 못한 경험을 말할 때의 나는 사뭇 다르다. 일목요연하게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 손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어렵게 말을 이어간다. 두 상황을 굳이 비교해보면 후자가 기억에 더 오래 남는 편이다. 전자가 미리 써둔 대본을 읽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진실에 가까운 나로서 즉석 연기를 펼치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체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다양한 정보들은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생생함은 마치 여행을 할 때의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 정리하지 않은 삶의 일부분을 말하는 상황은 여행지에서 우여곡절을 경험하는 우리네 모습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계획에는 없던 당황스러운 여행 경험이 이윽고 최고의 기억으로 남아 어려운 시기에 빠진 우리의 등을 넉넉하게 밀어주듯, 누군가의 질문이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나를 향한 여행을 허락하는 신비한 주문이 되어준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한 완벽한 계획은 없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스트레스이고, 때로는 우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할 때에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상황조차 치명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럴 때는 혼자서 이겨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차분히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했던 질문들을 곱씹어보자. 우리는 인식하지 못했을 뿐, 많은 사랑을 이미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는 그들에게 안부 연락을 하며 조만간 듣게 될지 모르는 흔하면서도 기적 같은 질문을 상상하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보자.
"얘들아 삼촌인데 오늘 놀 수 있어?"
"어. 놀 수 있어. 지금 놀러 와"
어딘가로 외출해야 하는 날에도 우준이와 서준이는 괜찮으니 지금이라도 오라는 대답을 하고는 했다. 그러했던 조카들이 성장하자 대답은 보다 구체적으로 변했다.
"얘들아, 삼촌인데 오늘 놀러 가도 돼?"
"잠깐만. 따끼, 오늘은 할아버지 만나러 가야 해서 안 된대. 내일 놀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