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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04. 2022

나의 외로움이 나를 부를 때

"이번 주 주말에 등산 가실래요?" 상담 공부를 같이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등산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일전에 등산을 함께 다녀온 사이였다. 그때는 관악산을 갔었는데, 그의 뒤꿈치를 보며 따라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당시에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한 주이기도 했고, 날도 쌀쌀해져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피곤에 찌든 상태로 주말을 맞이할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이내 생각을 달리 했다. '한주가 더 지나면 더욱 추워질 테고, 주말에 집에 있더라도 나는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는 않을 거야' 생각이 정리되자 약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주말 아침, 오전 6시 40분 정도였다. 알람 소리를 들으며 깼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아...."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수요일부터 시작된 근무는 생각보다 힘겨웠다. 수요일 오전에 인수인계를 받고 곧장 업무에 투입되었다. 여러 내용을 한꺼번에 배우다 보니 뭐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급한 일부터 급급하게 처리했다. 그렇게 3일을 보냈다. 4개월 정도를 취향껏 살아오던 내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정신없이 해냈으니 지칠 만도 했다. 하지만 체력적인 힘듦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약속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충분히 꾸물대다가 더 미루면 돌아올 수 없는 시간까지 버티고서야 씻으러 갔다.


"우와, 오늘 엄청 춥지 않아요?" 나는 불광역 9번 출구로 나오는 친구에게 첫인사로 날씨 얘기를 꺼냈다. 지하철에서 갓 나온 친구는 "따뜻한데요?" 라며 대답했다. 나는 10분 일찍 도착하여 구입한 핫팩 두 개를 친구에게 건네며 추워지면 언제든 붙이라고 했다. 그때 내 배와 등에는 핫팩이 한 개씩 이미 붙어있었다. 나는 목으로 부딪치는 찬바람을 느끼며, 점차 달아오르는 배와 등의 온기를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목적지는 족두리봉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오르기 위해 험준한 길을 거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광동 아래를 내려보며 "경치 좋네요"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던 구간은 초입뿐이었다. 바위로 이어지던 길 때문에 손을 사용하기도 하고, "어이쿠"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며 우리는 올랐다. 산을 내려온 뒤에 비로소 서로가 무서웠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올라야 할 곳으로만 생각했다. 기어코 족두리봉 정상에 올랐던 우리는 챙겨갔던 컵라면이나 연양갱을 먹을 여유도 없이 서둘러 다른 길로 빠져나왔다. 우리로 하여금 어쩐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향로봉 쪽으로 걸어가다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불광동 방향으로 내려왔다. 관악산 때와는 사뭇 다르게 바위나 돌길을 많이 걷다 보니 무릎도 제법 시큰했다. 우리는 독바위역 근처까지 걸어가서 라면과 김밥, 만두를 사 먹었다. 4시간 남짓 산행을 하고 실내에 처음 들어가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추운 곳에 있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몸을 녹일 수 있는 그 자체로 감사함을 느꼈다. 행복은 김가네에 있었다.


우리는 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또한 점심을 먹으며 저런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짝사랑했던 아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겨울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추워서였을까. 수저를 내려놨던 나는 냉수를 한 모금 마시고 얘기를 이어갔다. 나는 그 아이를 20살 때 알게 되었다. 그는 국어국문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쌀국수를 좋아했고, 소설가 김연수의 책을 또한 좋아했다.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건 봉사활동을 하던 곳에서였다. 우리는 지역 행사의 보조를 맡았었는데 나는 그날 그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 애는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 있었다. 그를 좋아했던 이유도 묘하게 전해지는 비슷한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보았던 그는 우울해 보였다. 늘 우울해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값이 마치 우울인 것만 같았다. 그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고독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러한 그의 외로움 같은 그늘진 구석을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방법을 그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에 대해, 그를 위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물론 함께 활동한 기간이 1년 정도 있었기에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그 애의 취향을 묻고, 그 애를 더 잘 알고 싶어서 그가 좋아하는 거라면 우선 해보았다. 그렇게 쌀국수의 맛에 처음 눈을 뜨고, 김연수의 책을 모두 사서 보았다. 


우리는 제법 가까워졌었지만, 연인이 되지는 못했다.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티만 어설프게 냈기에 그 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시간이 더욱 지나도 결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그 아이를 많이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한다. 그 애가 좋아하던 음악을 요즘도 가끔씩 듣고는 한다. 그 노래는 가수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이다. 그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 된 이 노래를 나는 밤이 다가올 때마다 찾아 듣고는 했었다. 그때는 그에게 향하고 싶지만 향하지 못하는, 겹겹이 쌓여가는 외로움을 삭이며 들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움으로 듣는다. 그 애를 사랑했던 순수한 마음, 그 시절의 풋풋함, 어설프고 엉성하며 부족했지만 최선이었던 그때가 그리워서. 그때의 중심에 서 있던 그 애가 어렴풋이 생각나는 밤이면 그보다는 나를 그리워하며 나는 가사를 읊조린다.


"이 노래 좋은데 나중에 한번 들어봐요" 연신내에서 헤어지며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추천한 노래는 역시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였다. 이 노래가 나의 짝사랑과 연관이 있다고는 설명하지 않았는데. 친구는 과연 가수 장필순의 노래를 듣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외로움일까. 그리움일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었을까? 다음에 또 만나자는 우리의 말마따나 그때가 되면 지긋이 물어보아야겠다.


Image by Ina Hoekstr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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