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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21. 2022

저의 종무식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내가 일했던 곳은 회사 내에서도 작은 부서에 속했다. 얼마나 작았냐고 하면 고위직 상사들이 찾아올 일이 전혀 없다고 적어도 무방할 정도였다. 물론 전자 결재를 통해 중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보고했지만, 직속상사와는 매일 같이 만났지만, 고위층의 발길이 뜸했던 우리 부서는 동료들 간의 끈끈함으로 그 해의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으레 일찍 퇴근시켜주기를 기대한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어쩌면 앞서 적은 '대부분'이라는 표현은 나의 병적인 조심스러움 때문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보다 자신 있게 적어보자면 모든 직장인들은 한 해의 마지막 근무일에 일찍 퇴근하기를 희망할 테다. 


돌이켜보면 나는 12월 마지막 날에 일찍 퇴근해본 적도 없지만, 주변에서 일찍 귀가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오후 2시가 넘어가면 일찍 퇴근하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이날도 그랬다. 나와 동료들은 혹시 모를 칼칼퇴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후 3시, 4시가 지나도 퇴근과 관련한 어떠한 말도 듣지 못했다. 그 사이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 한두 가지가 다만 쌓여갈 뿐이었다. 


퇴근하라는 얘기만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옆자리 동료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서둘러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음료를 손에 잡히는 대로 구입(물론, 나의 손은 자연스레 2+1로 향하긴 했다)하고, 한걸음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외쳤다. "그럼 우리만의 종무식을 시작해 볼까요?" 나는 앞서 동료들에게 퇴근 전에 회의를 하자고 얘기했었다. 회의 앞에 '중요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회의실에서 맞게 될 엄숙한 분위기를 일찍이 조성했었다. 하지만 내가 준비했던 회의는 깜짝 송년회였다.


비록 특별히 꾸민 것도, 차린 것도, 가꾼 것도 없었지만, 우리는 한 데 모여 한 해동안의 소감을 나누었다. 근무하면서 어려웠던 점, 속상했던 점, 힘들었던 점처럼 회사에 초점이 맞춰진 얘기들도 있었고, 개인적인 얘기들도 많았다. 뒤이어 새해의 계획이나 목표에 대해 나누었다. 이 또한 저마다의 고민과 욕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그때의 나는 무어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쓴 편지를 몇 년만의 읽어보게 되면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아마도 나는 '자유롭게'나 '나답게'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을까. 나와 동료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가득했던 우리만의 종무식은 떠올리고 있는 오늘의 나에게 여전한 포근함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종무식이 따로 없어요" 회의 시간에 상사로부터 듣게 되었다. 종무식이 따로 없다고 했다. 종무식을 기대하고 회사에 입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예전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사이가 좋았기에 낼 수 있었던 특별한 분위기였을 테다. 차가운 빛깔의 조명과 상처받았던 기억들 때문에 싫어했던 회의실이 더 머물고 싶게 느껴졌던 건 분명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진실한 대화의 힘 덕분이었다.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하고, 그 마음을 따라가며 알아주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반응들이 쏟아졌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만의 종무식을 열어보기로 했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앞서 '나만의'라고 표현했지만, 브런치에 공개함으로써 나의 종무식에는 몇몇의 참여자들이 생기게 된다. 비록 독백하듯 글은 쓰이겠지만,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가 또한 자신의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해 가는 시간을 맞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도 함께 머물러주기를 소망한다. 


Image by ❄️♡�♡❄️ Julita ❄️♡�♡❄️ from Pixabay


한 해가 또 가네. 올해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나도 잘 모르겠어. 돌이켜보면 좋았던 순간 뒤에는 대부분 싫었던 순간이 금세 찾아왔던 것 같아. 아니, 싫었던 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기도 해. 음, 글이기는 하지만 그냥 떠오르는 대로 편하게 적어볼게.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은 것 같거든.


나는 올 해에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사람 덕분에 위로받았던 것 같아. 이번 해에는 특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그러기 위해 내가 의도한 적도 있었고,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된 사람들도 있었어. 이래나 저래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 다만 그들을 알아가며 가까워져 가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야.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 시간을 필요로 하는 편이다. 단편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내게 불쑥 다가오면 나는 왼쪽 어깨에 힘을 잔뜩 주는 편이야. 발가락도 김밥처럼 돌돌 말리고. 그래서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나, 오래 함께 하는 날에는 어깨가 쑤시고 발가락이 뻐근한 편이야. 올해는 유독 어깨와 발가락이 남아나질 않는 날이 많았던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러니까 상대방이 내게 위협적인 존재라고 느껴질 때면 나는 그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나는 한 사람에 대해 여러 상황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가 나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을 여는 편이야. 내가 성격이 민감하기도 하지만, 눈치도 많이 보거든. 


나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서 나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 서면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내면의 평화를 찾기를 기대하며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는 해. 그 사람이 예민성을 발휘할수록, 표정이 일그러질수록, 목소리가 커질수록 나는 움츠러들며 다만 그의 마음이 어서 안정을 되찾기만을 바라지. 올해는 이러한 나의 관계 패턴을 보다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어. 이제는 내가 나의 욕구를 좌절시키면서까지 맞추려고 할 때마다 '아, 내가 또 나를 외면하고 있구나' 하며 알아차리고는 해.


이 얘기를 왜 적고 있었지. 너와 나누고 싶었나 봐. 아무튼 위의 내용을 정리해서 적을 수 있었던 데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관계에서의 취약성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을 거야.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을 단순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들이 예민성을 더욱 발휘할 수 있도록 내가 일조한 부분도 있으니까. 나는 나의 몫이 또한 있었다고 생각해.


이렇게 관계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나는 관계 덕분에 행복하기도 했어. 올해는 내적으로 친밀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것 같아. 그러니까 "솔직하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꽤나 만날 수 있었던 해였어. 내가 사람들과 만났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 즐거워하는 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어. 나는 나의 익살스러움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좋아하더라. 내 내면에 숨 죽어 있던 개구쟁이가 활발하게 튀어나올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나는 많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더라고. 의외였어.


올해는 나의 익살스러움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받는 경험을 했어. 물론, 나만의 조심스러움이 선을 넘지 않도록 지켜준 덕도 있던 것 같아.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이 더 큰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예년보다 더 많이 웃고, 떠들고, 행동하며 활달하게 지냈수 있었어. 오늘만 해도 그래. 전 직장에 잠시 다녀왔었거든. 그곳에서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청중들과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주고 받는 코미디언처럼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다 돌아왔어. 그 순간을 잠잠이 떠올려보니 익살스러움이라는 자아가 명랑하게 세상과 소통할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느껴. 나는 아무래도 장난꾸러기인가 봐.


관계 말고도 올해는 다사다난했어. 준비하던 자격증 필기시험에 기적적으로 붙었고, 코로나에 걸리며 면접에서는 떨어졌어. 그때의 충격과 상실감은 여전히 외면하고 싶을 정도야. 그리고 또 다른 자격증 필기시험에 붙었고, 면접 결과를 다시 기다리고 있어.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평가했을지 모르겠지만, 합격이라는 결과를 2022년의 마지막 선물로 받고 싶어. 그럴 수 있을까.


퇴사하고 다시 취업하기까지의 공백도 내게는 괴로웠던 시기였어. 처음 한두 달은 쉬니까 그저 좋았어. 하지만 꾸준하게 뭔가를 하지 않으며 가만히, 쭉 쉬니까 언젠가부터는 불안해지더라고. 나를 찾던, 찾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고, 다시는 취업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자주 들었어. 다행스럽게도 나는 취업에 성공했고, 아직 적응하고 있기에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주말에 두 다리 뻗고 쉬어보니 역시 사람은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며, 고통을 느끼기에 행복을 만끽할 수 있구나 싶더라고.     


아, 그런데 나만 너무 많이 떠들은 것 같아. 어디 가서 이렇게 길게 얘기해본 적은 없었는데. 네가 가만히 읽어줄 거라고 생각하니 편하게 써 내려갔네. 너의 올해는 어땠어? 즐거웠어? 아니면, 힘들었어? 누구라도 좋으니 만약 여기까지 읽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너의 한 해를 함께 나누어주었으면 좋겠어. 읽어줘서 고마워. 올 한 해 건강히 마무리하길 바라고, 새해 복 많이, 듬뿍 받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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