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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Feb 12. 2023

기적을 꿈꾸는 이 순간, 저는 행복합니다

나는 '글썽글성'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함께 쓸 글의 주제를 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요일마다 담당자를 정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나는 수요일 담당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마감 기한을 이틀이나 넘기고서야 브런치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글의 주제는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한 글쓰기'이다. 모임에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맨발로 산을 저벅저벅 자유롭게 걷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고, 너른 모래사장을 걸으며 이따금씩 발가락에 닿는 파도의 끝자락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침이 다시 밝아오자 외면하고 싶었던 일상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어제 하고 온 일들 중에 실수가 발견되면 어떡하지?', '오늘 또다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오늘도 나를 몰아세우며 일을 서둘러 처리해야겠지?'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전히 출근에 대한 걱정뿐이다. 이 글을 적어도 6시 40분까지는 마무리지어야 씻고 제때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호흡이 짧아진다. 방금 전에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회사에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을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만큼 '회사'라는 그림자가 내 뒤에 짙게 깔려 있고, 내가 바라는 삶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기적이 필요하다.   


문득, 기적질문이라는 기법이 떠오른다. 해결중심단기치료라는 모델에서 활용하는 방법인데 기적이 일어났다고 상상하도록 하며 내담자의 고민을 해결하도록 돕는 기법이다. 김인수와 Peter Szobo가 쓴 <해결중심단기코칭>에서는 기적질문을 사용하는 상황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이야기한 후, 당신은 물론 직장으로 되돌아가서 일을 더 하겠지요. 그리고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저녁 준비를 하고, 숙제를 봐주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는 등 평소와 같이 지냈어요. (잠시 멈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자는 밤사이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 결과로 당신이 여기에 와서 이야기한 걱정과 불안이 모두 사라졌어요. 기적이 일어났으니까요. 그런데 자는 동안 일어났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지요. (잠시 멈춤) 자, 내일 아침 당신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엇을 보면 '밤사이에 기적이 일어났구나'라고 알 수 있을까요?"


Image by Manuela Jaeger from Pixabay


햇살이다. 해님이 무거운 눈틈으로 아침을 알린다.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며, 명상을 시작한다. 누운 상태에서 호흡을 차분히, 몸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느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탐색을 시작한다. 나에게 한층 가까워진 나는 이불을 개고 방밖으로 나간다.


고요한 거실. 이곳은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이다. 탁자 위에 있는 미지근한 물을 머그컵에 따라 마신다. 물을 삼키며 목의 상태는 어떠한지 가늠해 본다. 나는 그날의 컨디션을 목소리로 알아보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가 힘 있고 또렷하게 나온다면, 오늘도 오케이다. 물이 빈 머그컵에 커피를 따른다. 나는 캡슐 커피를 좋아한다. 내게는 원두를 직접 내려마시는 일이 수고스럽고, 저어마시는 커피도 지난 16년 동안 마음껏 마셔본 것 같다. 오늘의 캡슐은 콜롬비아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향을 듬뿍 머금어본다. 전해지는 커피 내음에 입꼬리가 천장에 닿을 것처럼 솟아오른다. "음-" 하는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아가면 하늘과 만날 수 있다. 집은 주택이지만, 높은 지대에 위치했기에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줄곧 하늘로 향한다. 나는 햇볕과 구름, 그리고 그들의 무대가 되는 하늘을 사랑한다. 그의 시간이나 기분에 따라 변하는 색감도 좋고, 유유자적 살아가는 듯한 태도도 선망한다. 


커피와 하늘을 친구 삼아 요즘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결국 프리랜서가 되었다. 한 곳에 고용되어 사는 삶을 포기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적절한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심까지 가장 고민이 되었던 것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였다. 서른여섯에 직장을 다니지 않는 나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겁이 났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사라진다는 것이 못내 두려웠다. 


나에게는 그동안 많은 제안이 들어왔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능력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 열등감을 가득 안고 살아가던 과거의 내가 나를 바라보던 틀이 내게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발달을 거듭해 왔다. 서울 시내를 혼자 다니기 어려워하며 쩔쩔매거나, 가위질을 반듯하게 하지 못해 도망치고 싶었던 그때는 나의 오래 전이되었다. 


나는 나의 능력과 잠재력을 충분히 인정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나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중히 하며, 관계에서 서로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순간의 경험과 체험을 중요하시며, 나의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있는 힘껏 살아가는 흔한 사람이자, 특별한 존재이다. 


나는 작가로서 글을 쓰는 시간만큼,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또한 보내고 있다. 이제는 타인이 나와 반대되는 성향이더라도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 보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의 오래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을 궁금해하고, 기꺼이 시도하며 얻게 된 중요한 성취이자 믿음이다.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교감하기 위해 몇몇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함께 글을 쓰거나, 밥을 먹거나, 산에 오르거나, 바다를 보거나, 걷거나, 나란히 앉거나 하는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고 있다.


이처럼 기적이 일어난 내 삶을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주고 있다. "수호, 요즘 자주 웃네?", "예전과는 다르게 활동적인 것 같은데?", "너의 글에서 밝은 느낌이 전해져" 하며 나로서 살아가는 나를 알아차리며 환영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적의 순간이 지금보다 자주 일어난다면, 구체적이 된다면, 가까워진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하게,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Image by Alfonso Cerezo from Pixabay


글을 올리기로 약속한 날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 이 글의 제목을 "지금의 제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글의 제목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기적을 꿈꾸는 이 순간, 저는 행복합니다"가 적절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 글이 해야만 하는 과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만큼 내 일상이 바쁘고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하다. 눈물이 차오를 만큼, 마치기 싫을 만큼.  


재미있게도 기적이라고 적은 내용들 중에는 이미 내가 하고 있거나 이룬 것들도 있다. 어쩌면 내게 기적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알아주지 않았을 뿐.



참고: 김인수, Peter Szobo(2011). 해결중심 단기코칭. 노혜련, 김윤주, 최인숙(옮김), pp. 65-66. 서울: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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