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썽글성'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함께 쓸 글의 주제를 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요일마다 담당자를 정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나는 수요일 담당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마감 기한을 이틀이나 넘기고서야 브런치에 접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글의 주제는 '내가 꿈꾸는 삶에 대한 글쓰기'이다. 모임에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맨발로 산을 저벅저벅 자유롭게 걷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고, 너른 모래사장을 걸으며 이따금씩 발가락에 닿는 파도의 끝자락에 숨통이 트이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침이 다시 밝아오자 외면하고 싶었던 일상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어제 하고 온 일들 중에 실수가 발견되면 어떡하지?', '오늘 또다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오늘도 나를 몰아세우며 일을 서둘러 처리해야겠지?'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생겨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전히 출근에 대한 걱정뿐이다. 이 글을 적어도 6시 40분까지는 마무리지어야 씻고 제때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호흡이 짧아진다. 방금 전에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회사에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을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만큼 '회사'라는 그림자가 내 뒤에 짙게 깔려 있고, 내가 바라는 삶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기적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동안 많은 제안이 들어왔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능력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먹고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 열등감을 가득 안고 살아가던 과거의 내가 나를 바라보던 틀이 내게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인이 되면서부터 발달을 거듭해 왔다. 서울 시내를 혼자 다니기 어려워하며 쩔쩔매거나, 가위질을 반듯하게 하지 못해 도망치고 싶었던 그때는 나의 오래 전이되었다.
나는 나의 능력과 잠재력을 충분히 인정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나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중히 하며, 관계에서 서로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순간의 경험과 체험을 중요하시며, 나의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있는 힘껏 살아가는 흔한 사람이자, 특별한 존재이다.
나는 작가로서 글을 쓰는 시간만큼,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또한 보내고 있다. 이제는 타인이 나와 반대되는 성향이더라도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 보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의 오래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을 궁금해하고, 기꺼이 시도하며 얻게 된 중요한 성취이자 믿음이다.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교감하기 위해 몇몇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함께 글을 쓰거나, 밥을 먹거나, 산에 오르거나, 바다를 보거나, 걷거나, 나란히 앉거나 하는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고 있다.
이처럼 기적이 일어난 내 삶을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주고 있다. "수호, 요즘 자주 웃네?", "예전과는 다르게 활동적인 것 같은데?", "너의 글에서 밝은 느낌이 전해져" 하며 나로서 살아가는 나를 알아차리며 환영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적의 순간이 지금보다 자주 일어난다면, 구체적이 된다면, 가까워진다면 나는 지금보다 행복하게,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올리기로 약속한 날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 이 글의 제목을 "지금의 제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글의 제목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기적을 꿈꾸는 이 순간, 저는 행복합니다"가 적절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 글이 해야만 하는 과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만큼 내 일상이 바쁘고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하다. 눈물이 차오를 만큼, 마치기 싫을 만큼.
재미있게도 기적이라고 적은 내용들 중에는 이미 내가 하고 있거나 이룬 것들도 있다. 어쩌면 내게 기적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알아주지 않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