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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제인 Feb 21. 2023

소설의 매력은 뭘까

김영하, 말하다 책 리뷰

소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작용합니다. 그 작용을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도 못하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소설의 가장 멋진 점 아닐까요? 소설은 적어도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 p.160 김영하, 말하다 中


나는 책 편식이 있다.

소설의 매력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동안엔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 못했는데 책에서 찾게 되었다.


"조하리의 창"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자의식이 큰 편에 속한다. 무의식보다는 의식적인 면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의 매력보다는 책을 통해 사고의 확장과 새로운 관점을 더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편협한 습관이다. 그래서  유명한 소설가를 정작 소설보다는 그가 쓴 에세이로 자주 접한다.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앤 타일러, 이승우 작가 등, 모두 소설책이 아니라 그 소설가가 쓴, 혹은 다른 누군가의 에세이 속에서 간접경험 했다.


김영하 작가의 " 말하다"도 마찬가지이다. 다행히도 그의 소설은 2개 정도 읽은 적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소설의 즐거움을 이론으로만 배우고 있는 쪽에 가깝다.




"말하다" 책은 초판이 2015년에 나왔으니 꽤 역사가 오래되었다. 말하다, 보다, 듣다 시리즈가 있는데 지금은 3권이 합본되어 "다다다"로 개정되었다. 책이 만들어진 역사로 보자면 이 책이 아버지 뻘인 걸까. 읽다 보니 다른 책에서 본듯한 이미지가 꽤 있다. 중간중간 이 이야기 좀 익숙한데, 싶어서 기억을 더듬어보는데 몇 개는 기억해 냈고 몇 개는 그렇지 못했다.



기억해 낸 것 중 하나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스티븐 킹도 그의 에세이에서 자기가 만든 인물이 살아 움직여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의 끝은 대체로 인물에 맡겨두는 편이에요. 인물들끼리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는 경우가 많아요.
-p.143


기억해 낸 두 번째는 이승우 작가의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책은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책이 파본이면 교환/환불이 되지만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환불 사유가 아니다. 그 이유가 책으로 출판되는 순간 콘텐츠보다 책의 물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판이라는 과정으로 책은 상품이 되며, 팔리고 난 이후에는 독자가 읽던 읽지 않던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제가 쓴 소설들은 제 인생의 각 단계별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출판이 되어 시장으로 나가면 그 연속성을 잃고 그냥 떨어져 나와서 상품으로 존재하게 돼요...(중략)... 저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금고에 넣어뒀다는 샐린저를 이해해요.  
  -p.166




기억해 낸 몇 가지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인데,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제가 소설을 완성해서 띄워 보내면 이제 그것은 다른 세계예요. 부산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해요...(중략)... 저의 관심사는 배를 최선을 다해 만들고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예요. 바다로 나가면 남의 배가 되죠. 오래 항해하기를, 좋은 일을 많이 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중략)... 소설을 쓰는 동안에 저는 오직 제 소설과 소통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면 저는 나오는 거죠. 그때부터는 제가 아니라 소설과 독자 간의 소통이 시작됩니다. 거기 제 자리는 없습니다.
-p.162


소설을 IT 기술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 같은 IT 쟁이 시각으로 보자면 기술이 과연 중립적인가,라는 문제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같은 걸 일단 만들어 놓으면 그게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오직 사용자의 몫인 걸까, 하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 표절 논란으로 시끌시끌한데 기술발전이 표절을 쉽게 했다는 일부 시각이 있다. 물론 개발자가 모든 부작용을 예측할 수도,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자기의 손에서 나온 기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소설도 쓰는 자와 읽는 자의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는 건 맞지만 최소한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 "소설이 완성되면 그때부터는 거기에 제 자리는 없다"라고 못 박는 부분이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물론 김영하 작가님은 독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의 인터뷰를 글로 옮긴 것이다. 작가님이 "말하기"에 대해서 느끼는 바는 내가 느끼는 것과 좀 비슷한 결이 있다.


오래 생각해 온 어떤 문제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일상적인 가벼운 대화에서 핀트를 잘 못 맞춰 오해를 사는 일이 잦았다. 글은 발표하기 전에 거듭하여 고칠 수 있지만,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말보다는 글을 쓰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p.240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말하는 나보다는 글 속에 있는 내가 더 나답다. 말은 글보다 완벽할 수 없다. 말을 잘하고 싶으면 완벽하게 말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분위기를 느껴야 한다.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영역이 크다. 내가 소설을 더 즐기게 되면  말을 더 잘할 수 있게 될까.








작가가 되어 책으로만 보던 위대한 선배작가와 시인을 만난다는 것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은 현실에서 만나도 훌륭한 분들이지만 작품이라는 아우라 뒤에 숨어 있을 때 더 신비롭고 멋졌습니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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