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난번에 말씀드린 건 혹시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담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에게는 상담 연장 여부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어, 그거 전에 말씀드렸었는데...."
그는 지난주에 나눴던 대화에서 연장을 하겠다고 얘기했던 상황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제야 나는 "아.. 맞네요"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OO님도 오늘 못 오셔서 시간이 중간에 많이 비네요."
다른 상담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에게는 두 내담자가 오늘 상담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했었다.
"어, OO님도 오늘 못 오시는 거예요?"
상담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네, 아까 메시지 드렸었는데..."
"OO님이 아니라 OO님도 못 오시는 거예요?"
그는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내담자를 언급하며 재차 확인했다.
그제야 나는 "아.. 이름이 헷갈렸어요"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들. 수화기 너머로 어떤 사연을 듣게 될지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 때로는 생사가 달린 듯 다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청소를 하던 동료의 빗자루가 우연히 의자 다리를 툭-하고 건들자 경기를 일으키듯 화들짝 놀라던 나.
요즘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 상황들이다. 그제는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그의 호소는 나의 판단과 권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사에게 보고했다. 아무쪼록 내가 해결해야 하는 듯했다. 휴가 중이던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나는 반복했다. 그는 간단한 조언과 함께 휴가에서 복귀한 뒤에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된 나는 의식이 몽롱해짐을 느꼈다.
아침 9시에 한 끼를 먹었다. 생일 전날이라고 끓여주신 어머니의 미역국이었다. 맛있다며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연신 치켜세웠다. 든든한 속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곤란한 일이 생겨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받는 전화가 쌓이고, 고민하고,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사이 전의가 점차 사라짐을 느꼈다. 익숙한 그 모습, 실의에 빠진 나로 돌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기에 글렀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느라고 저녁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저녁 9시가 넘어야 퇴근할 수 있는 날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눈물이 다만 흐를 것 같았다. 복합기 앞에서 서류를 복사할 때에 눈물을 허락하고 싶은 갈망은 더욱 커졌다. 창밖은 밤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햇빛에 물든 하늘로 한남동은 고독해 보였다. 사무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지만, 혼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에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원망이 꿈틀거렸다.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회사에 없는 걸까?',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왜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걸까?', '내가 저녁을 먹으러 가지 않았는데 왜 그 누구도 묻지 않는 걸까?' 슬퍼하던 마음은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들을 일으켰다. '왜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려고 하지 않을까?' 소망을 알아차리던 순간, 눈물이 밀려왔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음을 외면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을 감추기 위해 이불을 사용하듯, 동료들에게 말을 걸고 끊임없이 자세를 바꾸며 흐느끼려는 마음을 숨겼다.
생일이 밝았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들수록 세상과 처음 마주한 날을 소홀하게 대한다. 반면에 나는 생일에 점차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당시에는 자신의 집에 초대하거나 패스트푸트점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렵게 살던 집에, 돈을 아끼던 부모님께 폐가 될까 걱정이 되었던 내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두 명의 친구를 초대하는 게 고작이었던, 엄마가 만든 떡볶이와 시장에서 튀겨온 치킨을 함께 먹던 나는 부끄러웠다. 같은 반에 있는 친구들을 대다수 초대하던 친구들의 생일파티와 비교하며 다시는 생일파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카카오톡에 생일이면 뜨는 알림을 끄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날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그럴싸한 일을 해내지 않았어도 축하를 받을 수 있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이날이 이제는 몹시 소중하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있다. 메시지는 대부분 내가 예상한 사람들에게서 왔다. 그들의 축하가, 안부 인사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감사했다. 정성껏 답장을 했다.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자주 가는 곱창집에 들렀다. 익숙한 메뉴를 시키고 통창으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은행나무가 가지런히 정렬된 낮과 밤 사이는 여유로워 보였다. 해질녘 식당은 또한 조용했다. 비스듬히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나무잎들을 보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기다려왔다.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의 손을 놓쳐 백화점을 헤맸던, 뒤집어진 튜브에서 몸을 빼낼 수 없었던, 불 꺼진 방에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울던 순간을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거듭 반복되는 예상 불가능한 회사에서의 일들이, 시간이 나를 위태롭게 했다. 돌연 사라지고 싶었다. 숨고 싶었다. 그러나 자의로 감은 태엽으로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전화를 받는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으니까. 그곳은 안전했으니까. 노을 지는 중계동 거리를 쫓기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랐을지라도 나는 알아주었으니까. 마음을, 알아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