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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는 그 한 마디의 힘.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자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온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흔히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기간을 10년으로 잡는다는데, 나는 그 10년을 넘겼음에도 스스로를 전문가의 'ㅈ'자도 꺼낼 수 없는 쪼무래기라 여긴다. 이는 넘실대는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기웃대느라 상담자의 길을 진득하게 파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이 세상에 얼마나 대단한 상담자가 넘쳐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 크다.


주변의 지인들부터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나의 직업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도 상담을 해달라'며 자주 다가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런 건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며 물러선다. 이는 나에게 '대단하고 전문적인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간혹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는 말을 던지기도 하는데, 다행히 열에 아홉은 후련한 표정으로 대화를 마치곤 한다.


사실 내담자들을 만날 때의 나도 일상에서의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상담을 받고자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런 건 못한다'고 말하지 못할 뿐이다. 상담실에서 이뤄지는 상담에서도 탄탄한 이론에 기반한 날카로운 통찰 따위의 '대단한 무언가'는 없다. 내가 그들에게 내어 주는 건 그들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들을 준비가 된 두 귀가 전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들 또한 대부분 만족스런 표정으로 상담실을 나선다.




지난 한 달간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읽은 책 [당신이 옳다]는 한낱 쪼무래기 상담자인 나에게 참으로 큰 위안을 주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적정 심리학'이라는 이름 아래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나의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면허를 가진 자' 그리고 '자격을 가진 치료자'라는 견고한 경계를 허물고 '공감이 가능한 사람'을 누구든 치유자의 영역 안으로 초대한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을 정확하게 공감할 수 있다면 누구든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 부족하더라도 '당신이 옳다'는 메세지를 넌지시 전해준다.


나의 주 내담자인 청소년들 또한 나를 '충분히 좋은 상담자'라 느끼게 해 준다. 성인들의 것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에 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주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그들을 한 개인으로 존중해 줄 사람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만으로 좋은 치유자의 역할을 수행하곤 한다.


그들은 지금껏 잘난 어른들의 투철한 논리에 의해 미숙하고 부족한 존재로 평가받아왔다. 끊임없이 '너희의 생각과 행동은 틀리니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혹은 네 마음이 정말 그랬겠다'는 이해와 공감만으로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수용감을 느끼며 놀라우리만큼 큰 변화를 보인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당신이 옳다는 말은 모든 치유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생각만큼 대단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나는 충분히 마주하고 지켜봐야 할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마냥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걱정한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리적인 고통을 단순히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치부하며 약물로 손쉽게 고치려는 의사들의 시도를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내담자들에게 그들이 느끼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부디 가만히 바라보라 요청한다. 대부분의 이들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다른 것으로 회피하거나 외면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손을 붙들고 그 곁에 머물며 그것들을 온전히 함께 충분히 느끼려 애쓴다.


저자 또한 '감정은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삶의 나침반이며, 함부로 없앨 하찮은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대상'이라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나 또한 나의 내담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며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으로 삼기를 바란다.  


500장이 넘는 페이지들 가운데 나의 눈길을 머물게 한 구절들이 무수히 많다. 그 500장에 걸쳐 풀어쓴 내용을 추리고 추리니 가슴에 몇몇 문장이 명료하게 남는다. 내가 살려 온 그리고 앞으로 살려야 할 무수한 사람들에게도 내 모든 마음을 실어 들려주려한다. '당신이 옳다'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수용이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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