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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4살 바기'입니다.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한 단어로 를 정의하기 위해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궁리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해 본 건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예쁘고 좋은 말들을 뒤로하고 여러 가지 모난 단어들만 떠오르더라구요. '백조가 되지 못한 미운오리새끼, 관심병 말기 환자, 희뿌옇게 구름 낀 그림자' 따위의 말들니다.


여러 가지 단어들 가운데 그나마 조금 순화하여 고른 것이 '4살 바기'입니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에 항상 목말라하는 제가 4살짜리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웃고, 울고, 소리 지르고, 달리고, 던지고, 넘어지고. 4살 바기 꼬마가 일상처럼 하는 행동들은 놀랍게도 저에게 역낯설지 않니다.




어려서부터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행동을 곧잘 했어요. 원체 골목대장에 말괄량이 기질도 다분했고 목청도 타고나게 좋았던 저는 어딜 가나 우두머리로 아이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잘 먹는다는 칭찬이 좋아 입이 찢어지게 밥숟갈을 퍼넣고, 힘이 장사라는 감탄이 좋아 쌀가마니를 끌고 다니는 꼬마소녀가 상상되시나요?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동요대회나 학예회가 열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출전했어요. 잘하든 못하든 남들 앞에서 저를 보여주는 것이 좋았거든요. 사춘기였던 중학교 시절이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조용히(?) 보낸 시기이 않을까 싶네요.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었지만 지금도 저는 여전히 저를 보여주기 좋아한답니다.


노래든, 춤이든, 말하기든, 하물며 조용히 글을 쓰는 행위조차도 제겐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사람들의 반응을 얻어내는 수단입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받은 대부분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어요. 누군가는 기쁨과 웃음을, 누군가는 감탄과 칭찬을 보내줬고 그 끝에는 저에 대한 애정 한송이가 달려있었거든요. 그렇게 얻어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제게 큰 힘이자 삶의 동기가 됩니다.


아이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사랑과 케어 없이 혼자서 생존하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입니다.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점차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이 생기며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게 되죠. 그런데 어째서 인지 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나눠주던 애 늙으니에서 점점 4살 바기 아이로 퇴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마음처럼 충분치 못해 점점 시들어가고 있어요.


저는 제가 다시 건강하게 기능하는 어른으로 자라났으면 합니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누군가의 사랑계속해서 갈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버겁고 지치는 일이거든요. 외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며 애쓰기보단, 저 스스로 돌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싶어요. 그래서 제가 조금 더 편안해지고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분노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아서 나타나는 감정이래요. 자꾸 화가 나는 걸 보니 제가 제 마음의 소리를 많이 놓치고 살아왔나 봅니다. 우울 또한 분노의 색을 띤 감정이에요. 외부로 향하던 분노가 내부로 향하여 자신을 공격하게 되는 거니까요. 한창 온 세상을 향해 화를 내고 다녔는데, 요즘은 그 화가 저에게로 향합니다. 평생 동안 저를 아먹어온 얕고 잔잔한 우울이 자꾸만 깊이 일렁이며 저를 집어삼키려 해요.  


우울의 바다에서 저를 구해내려면 저를 많이 사랑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항상 함께 할 수 있고 저를 가장 최우선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지금껏 저를 돌보고 아끼는데 많이 박하고 서툴렀던지라, 아직 어떻게 해야 저를 보듬어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제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 궁리해야겠어요.


4살 바기의 마음, 어떻게 하면 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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