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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an 26. 2024

누군가의 손으로, 자유로이 걸으며

"선생님은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예정이에요?"

"글쎄요. 요즘은 그냥 오늘, 내일 하는 것 같아요."

"아.. 그러면 지금까지 선생님을 회사에 다니게 한 원동력은 뭔가요?"

"지금은 아무래도 그냥 쉬고 싶어요..."


최근 회사 동료와 나눈 대화이다. 나는 계약직으로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최대 2년 계약이므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계약 기간을 채우게 된다. 입사한 지 5개월 남짓 되었는데, 2년이라는 기간이 참으로 길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다.


퇴근 후 시간을 얻기 위해 이직을 감행했다. 정규직을 포기하고, 급여도 낮춰가며, 서른여섯이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나를 위하는 시간을 일상 틈틈이 얻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직한 회사의 상황은 기대와 사뭇 달랐다. 회사는 나에게 깔때기와 같은 역할을 요구했다. 일은 끊임없이 위로부터 떨어졌고, 수행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젊음과 저녁 시간을 도구삼아 정교하게 처리하고자 노력했다.


일은 상사의 기대만큼 빠르게 처리되지 않았다. 혼자서 그 많은 페트병에 요구하는 만큼의 무언가를 채워 넣는 일은 어려웠다. 잘못된 걸 넣었다는 피드백으로 기껏 넣은 결과물을 빼내는 경우도 있었고, 페트병을 여기저기 오가며 채워 넣던 까닭에 흘린 노력도 많았다. 근무한 기간이 늘어갈수록 빈 페트병은 쌓여갔고, 애매하게 채워진 페트병과 그것에 확신을 갖지 못하며 불안해하는 나의 시간은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그간의 퇴사를 돌아보면 현재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막다른 길에 몰렸다고 생각 들 때에, 나는 퇴사했다. 업무는 언제나 나의 상황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그날의 계획은 세우지만, 계획대로 마무리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안전하지 않고, 불안정하다는 믿음이 커질수록 상상에 빠지는 순간이 늘어갔다.


'이 일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상사에게 미리 말해 놓는 게 좋을까?'

'고객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은 내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은 앞선 상상을 먹이 삼아 점차 커져갔다. 놀이공원 한가운데에 놓인 저녁 시간대의 사람처럼 줄이 길어서, 거리가 멀어서 하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생각하며 행동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만약'이란 가정을 반복하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행동이 더디어진다. 물론, 끝과 시작의 경계가 모호한 일터에서 해일처럼 밀려드는 업무를 담당자로서 맞는다는 것은 사람을 기본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유사한 경험에서 비롯한 불안은 상상을 야기하고, 상상은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쉬지 않고 가정하게 한다. '또 나에게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 일에 치이고, 이윽고 사람에게 치이며, 나의 내일이 거세게 흩날리는 눈발처럼 걷잡을 수 없겠다고 느껴질 때에, 이러한 느낌이 견고해질 때에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겠다든지, 새로운 분야를 경험하겠다든지 하는 목적은 드물었다. 퇴근 후의 시간을 확보하겠다던 마지막 이직만이 궁지에 몰리기 전, 나의 의지로 실현한 자발적 퇴사였다. 대부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막연하게 커져서, 실존하지 않는 '만약'의 결실을 실제로 착각하며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마음 챙김 명상 수련을 시작하던 첫날이었다. 으레 그렇듯 구성원들 간에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강사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지목했다. 누군가의, 또 누군가의 소개가 이어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내 귓가로 들어서지 못했다.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나를 소개할 때면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내가 호명되기를 가만히 기다려야 할 때면 별안간 경직된다.


대면과 달리 비대면 화상의 단점이랄 게 있다면 화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계속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손바닥 만한 공간으로 다수의 사람들 틈에 끼인 나를 흔들리는 동공으로 스치듯 보았는데, 나의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과히 솟아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간 살아오며 이상하리만치 왼쪽 어깨가 뻐근할 때가 많았다. 어깨를 위, 아래로 움직이거나 원을 그리며 아픔을 해소하려고 해도 그 순간뿐, 미약한 통증을 꾸준히 달고 살았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친밀하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가야 하거나, 처음 가보는 장소에 들르거나 하는 것처럼 내게 일어날 일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혼란스러워하고, 긴장했으며, 불안해했다.


학생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나는, 최근 소매틱 테라피(Somatic Therapy)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기회가 생겼다. 2시간 남짓한 워크숍이었는데, 담당자이자 한 명의 참여자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첫 시간에는 자신의 신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긴장한 부위를 알아차리며 이완해 보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어서 두 명씩, 그리고 네 명씩 그룹을 지어 활동을 해 볼 거라고 강사는 얘기했다.


강사는 시범을 보일 수 있도록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담당자로서의 정체성을 감안하며 곤란한 듯한 표정과 어투로 수락했다. 강사는 손을 포개어 잡아야 한다고 했다. 다한증이 심한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는 걸 꺼려한다. 긴장할 때 특히 땀이 크게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낯설게 느껴지는 강사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땀을 이미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제가 다한증이 심한데.. 괜찮을까요?"

"네, 그럼요."


강사는 흔쾌하게 괜찮다고 했다. 사람의 손을 맞잡는 순간을 느껴보는 게 얼마만이었을까. 강사의 손에서는 건조한 듯한 촉감과 주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반면 나의 손에서는 어김없이, 멈추지 않고 땀이 흘렀다. 강사는 이윽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눈을 뜨고 뒤로 걸을 테니,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걸으라고 했다. 내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가면, 강사가 뒤로 한 걸음 걷는 형태였다.


"아이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네요.."

"아니, 그게 느껴지시나요?"


강사는 내가 걸음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면, 강사의 손이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신체의 느낌으로 말미암아 나는 강사에게 어떠한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다. 왼발을 떼고, 강사의 오른발이 떼어지고, 왼발에 땅에 닿고, 강사의 오른발이 땅에 닿았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나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편안하다는 느낌이 마음으로부터 머리로, 다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오, 이제야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렸네요."

"오.. 어떻게 아셨어요?"


내 어깨에 힘이 풀렸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강사도 알아차리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동안 긴장할 때면 나의 힘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혼자가 되어 긴장을 유발한 경험을 곱씹으며, 긴장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거나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할지를 정리했다.


그런데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누군가의 손에 의지하여, 어두운 세상을 자유로이 걸으며, P에 올려져 있던 기어를 단숨에 D로 옮기듯 사람으로 유발되어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던 의식과 평가, 판단과 집착의 혼란에서 즉시 벗어나 볕을 고요하게 쬐는 출근 직전의 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교육실은 이윽고 무대로 변했다. 무대에는 나 혼자 있었지만, 결코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의 시선이, 보이지 않는 따듯한 마음들이 나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음악으로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황금별이 흘렀다. 일순간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그 무엇도 할 수 있었다.


다시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내게, 퇴사 이후의 삶이 불확실하게 느껴져 지쳤지만 업무를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내게, 부단히 노력하는 동료를 지켜보며 미안한 마음에 불씨를 틔워보지만 이내 꺼지어 좌절하는 내게, 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하여 좋아하는 순간도 즐거웠던 기억도 모두 잊고 살아가는 내게, 일과 퇴근, 퇴사와 꿈 사이의 선택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순간 나의 마음이었다.


이따금 긴장감이 엄습할 때면, 불안감으로 일에 손이 잡히지 않고 그 무엇도 판단하기 어려울 때면, 무언가를 해내려고 부단히 애쓰기보다는 우선 심호흡을 크게 해 보자.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을 때 멈추지 말고, 한숨 더, 두 숨 더 크게 내쉬어보자. 그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발은 바닥에 평평하게 닿아 있는지, 몸 이곳저곳의 감각을 차분히 느껴보며 지금의 내가 진실로 괜찮은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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