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전 직장에서 퇴사한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거든요. 퇴사 직전에는 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퇴사를 했고, 템플스테이나 코로나 감염, 제주도 여행, 자격증 면접시험과 필기시험 등 몇몇의 중요한 일들을 거치고 나니 오늘에 이르고 말았어요.
퇴사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경력은 있지만 자격은 애매하고, 괜찮아 보이는 직장 같지만 채용 공고가 자주 올라오고.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 정도의 구직 기간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운이 좋게도 한 곳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내일 인수인계를 받으러 가게 되었어요.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어떤 일을 맡게 될까?' '일의 양은 많을까?' '직장 동료가 될 사람들은 나와 잘 맞을까?'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게 했어요. 우선 내일 인수인계를 받고, 출근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들이지만 일찍 알고 싶고, 기왕이면 제 입맛에 맞았으면 하는 기대 때문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출근할 날을 기다려오기도 했어요. 물론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부분들이에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필요했어요. 제가 누군가를 찾거나, 누군가가 저를 찾아주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보내왔던 것 같아요.
여유 있는 삶과는 분명 달랐어요. 여유는 바쁘고 긴장되는 시간 뒤에 진정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여유의 참맛을 알 수 있거든요. 아무튼 저에게는 회사라는 소속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 그리고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어요.
어쨌든 내일부터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지만, 불안감을 느끼는 제가 오늘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서 요동치는 불안을 알아주는 일일 거예요. 이봉희(2014)에 따르면 감정을 표현하는 글쓰기 활동 중에 5~6분 정도의 시간 동안 집중해서 쓰는 "5분 집중글쓰기"는 글쓴이의 자기 검열을 막고 내면 속 소리를 이끌어내는 좋은 기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시간을 재며 5분 집중글쓰기를 시도해보았어요.
내일부터 다시 근무를 해야 한다니.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하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일이 많지는 않을까. 야근이 잦은 건 아닐까. 몹시 두렵고, 불안하여 한편으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여행이라도 더 다녀올걸 그랬나. 친구들을 더 만나고 다닐걸 그랬나. 방 안에 웅크려 지난 회사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 아파할 때조차 나에게 더 필요한 시간으로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괜스레 자책하게 된다.
아니다. 나는 예전부터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글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 중에 하나는 자유였다. 나는 자유를 꿈꿨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자유. 하지만 막상 쉬어보니 그런 자유는 일하지 않거나,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나의 목소리를 스스로 듣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며, 필요하다면 그 목소리를 세상에 꺼낼 수 있을 때에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해보지는 않았으니, 그저 생각할 뿐이다.
벌써부터 쉴 때가 그립다. 양평 용문사에서 듣던 빗소리. 계곡에서 힘차게 흐르던 물소리. 코로나에 걸린 부모님을 대신하여 돌보았던 조카들과의 시간. 북한산 대남문에 올랐다가 앉아 쉬던 시간에 조우했던 찰나의 고요. 모든 것이 새로웠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며, 여유로운 마음에 넉넉히 스며들었다. 이제는 글을 끝마칠 시간이다. 이 글은 퇴고를 할 수 없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알려주는 대로 적은, 솔직한 나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여운이 많이 남네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들고요. 하지만 5분 동안 실컷 떠들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제 마음에 가까이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만약 저처럼 마음이 요란해지는 일을 겪고 계시다면 5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 글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어디서 보다, 누구와 보다 소중한 시간을 마주하게 되실 테니까요.
참고: 이봉희(2014). 문학치료에서 활용되는 글쓰기의 치유적 힘에 대한 고찰과 문학치료사례. 교양교육연구, 8(1), 28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