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인턴을 선택했다.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자, 사이버 대학교에서 조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3학차로 접어들고 있었고, 논문 과정을 포함하여 5학차면 졸업이니 상담사가 되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학원 선배들은 대학교 학생상담센터가 수련 환경이 체계적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다만 대학교에서 상담 수련을 하게 되면 평일 2~3일을 근무하거나 교육을 받아야 했으므로 여느 직장인처럼 매일 출, 퇴근하던 사이버 대학교의 조교 자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상담대학원으로 진학한 결정이 사실 빼박이긴 했지만, 어쨌든 상담심리사가 되어보기로 결심했으므로 기왕이면 상담 기술, 지식, 경험을 고루 쌓고 싶었다. 대학교 학생상담센터 인턴을 지원하는 데까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공고가 올라오는 족족 확인하고 지원서를 썼다. 인턴이 되는 과정은 치열했다. 무급이지만 상담 수련을 목적으로 특히 대학원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대학교이기도 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수십 명의 지원자들 중에 나를 포함한 6명이 같은 해 인턴으로 선발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OT를 할 때였다. 학생상담센터 문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들어서기 전부터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니터를 보며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센터 입구에서는 그들의 옆모습이 보였다. 긴장되는 마음을 감춘 채 문을 열며 "안녕하세요" 인사하니 나란히 앉아 있던 다섯 명의 직원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며 보인 굳고, 부드러운 인상은 인턴 근무를 시작하는 나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았다. 집단상담실이라는 곳에서 인턴 과정에 대해 안내를 받았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한 가지 선명한 것은 '1년 간의 인턴 과정을 잘 끝마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나의 모습이다.
걱정이 기우이기를 늘 바라지만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인턴을 시작한 지 불과 1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다. 상담 교육을 받다가 '다시' 도돌이표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날 교육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상담 시연을 통해 기법을 설명했다. 선생님은 내게 인턴 동기 A를 대상으로 상담하듯 대화해 보라고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질문하고 반응했다. 선생님은 나의 질문과 반응 하나, 하나를 유심히 듣다가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게 아니잖아. 다시"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하..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다시!"
선생님의 '다시'가 반복될수록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교육을 위한 가상의 활동이었지만 상담자 역할을 맡았던 나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때마다 질문과 반응에서 의도를 잃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상담자가 아니라 나로서 그저 대화를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다만 나를 집어삼킬 듯 날카롭게 날이 선 선생님의 눈빛과 말투로부터, A와 나를 제외하고 고개를 떨군 채 침묵하는 동기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선생님이 말했을 때 그날의 교육은 비로소 끝이 났다.
이날의 이야기는 '인턴 수료'라는 책의 첫 페이지에 실려있다. 이 책은 물론 실제하지 않지만, 이후로 겪은 다양한 경험이 함께 담겨있다. 상담 슈퍼비전을 받으며 엄하게 지도받았던 이야기도, 내담자의 호소문제에 대해 고심했던 이야기도, 상담에서 했던 반응에 대해 머리를 싸매며 후회했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상담 수련 과정이 늘 고통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찰나와 같은 행복한 순간이 더욱 반짝였다. 고통이라는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반 쪽짜리 분량일지라도 부록처럼 행복한 경험이 뒤따랐다.
인턴 과정에서 내가 경험한 행복한 순간의 대부분은 인턴 동기들과 저녁을 함께 먹을 때 찾아왔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교육과 자문을 받았는데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끝나는 일정이 더러 있었다. 그런 날이면 시간이 되는 동기들끼리 교육실에 남아 떡볶이나 치킨 같은 음식을 시켜 먹고는 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해 상담자로서 취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진실한 모습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하루는 동기 C가 그림 카드를 가져왔다. 카드는 여러 장이었고 다양한 배경이 코딩되어 있었다. 그날 모였던 우리 여섯은 먹다 남은 떡볶이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책상 위로 카드를 넓게 펼쳤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잘 설명하는 카드를 한 장씩 골라보기로 했다. 선택을 완료한 뒤에는 자신이 고른 카드에 대해 차례대로 설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내가 고른 카드에는 해변에서 볼 법한 모래에 발자국이 찍힌 그림이 담겨 있었다. 발자국은 나아가는 방향에 맞추어 서너 쌍이 고르게 새겨져 있었다. 모래는 햇볕을 반사하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에게 누구도 왜 이 카드를 골랐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이제 제 차례죠?" 말하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맨발로 여행하는 모습을 가끔 상상해요. 발목을 간지럽히는 풀들 사이를 스치며 걷기도 하고,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를 걷기도 하고, 골목길을 굽이굽이 걷기도 해요. 사막을 걷다가 발이 푹푹 잠기기도 하고,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며 서로의 발을 바라보기도 해요. 발등으로 전해지는 감촉이, 발등에 고스란히 쌓이는 모래와 먼지, 떼가, 핏줄과 상처, 딱지가 상상만으로 저를 자유롭게 해요. 양말도, 신발도 벗고 피부 그대로 느끼고 체험하며 살고 싶어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자유로움이 일상 더 가까이 있기를 바랐다. 상담사라는 옷을 처음으로 입는 과정은 어딘가 뻣뻣하고 불편했다. 수련 과정은 엄숙했고, 대학원 과정과 병행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는 내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뻗쳐 나가고 싶었다. 상담사도, 나라는 사람도 잘 모르겠고 그냥 발길 가는 대로, 무작정, 온전히 경험하고 싶었다.
인턴 과정 중에 하루는 출근길 마을버스에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그냥 지나치는 상상을 했다. 그 정거장은 종점이자 노선의 반환점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모험의 시작이었다. 출근하며 보았던 풍경이 반대로 바뀌며 또 다른 감각을 전해주었다. 저녁이 되어야만 지날 수 있는 배경이 아침 햇살 그대로 눈부시게 아른거렸다.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종착지가 어딘지 중요하지 않았다. 거꾸로, 반대로, 뒤엎인 길로 나아가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눈물이 흐를 만큼 환상적이었다.
나는 가끔 삶이 마음 같이 않을 때,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고, 입어야 할 옷들로 그득할 때, 여행을 떠난다. 상상에 그치는 여행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소소한 모험을 시도한다. 회사에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면, 왼쪽 길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지하철로 환승해서 가는 길이 가장 효율적이라면, 다른 노선을 이용하지 않고 그대로 가다가 한 정거장 가까이 걸어간다. 퇴근할 때는 어디로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간다. 집으로 돌아갈 길은 생각하지 않는다. 걷고, 호흡하고, 느끼고, 체험한다.
떠나는 삶을 살고 싶다. 탐험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내면을 향하여, 자유로운 순간을 위하여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 그런 삶을, 하루를, 순간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