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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중요한 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by 두근거림

카카오톡 메시지가 분주하게 도착했다. 전 직장 동료들이 모인 단톡방이었다. 잘 지내고 있냐는 B의 메시지를 시작으로 한두 사람이 대화에 참여하였다. D와 내가 대답하면 모임 일정이 확정되기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날 시간이 된다는 D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연말모임'이라는 공지가 단톡방 상단에 순식간에 게시되었다.


모임 당일이 되어 "오늘 맞지?"라는 메시지가 단톡방에 올라왔다. B가 오늘 만나는 게 맞는지 되물었다. 단톡방에서는 모임 날짜를 정한 이후로 한 달 가까이 어떤 메시지도 올라오지 않았다. 모임 당일이 되자 누군가는 해야 했을, 만나는지 여부를 한 동료가 확인했다. 단톡방에 포함된 다섯 명 중 어느 누구도 모임 전날까지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지만, C가 남긴 '오늘 맞지'를 시작으로 어느 지역에서 만날지, 몇 시에 퇴근하는지, 뭘 먹을지, 언제까지 갈지, 어디쯤 도착했는지가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street-789626_1920.jpg Image by donterase from Pixabay


"오, 김작가 왔어? 어서 와!" 약속한 식당으로 들어서던 내게 C가 큰소리로 말했다. 동료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기도 잠시, 식당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걸 느꼈다. "저, 갈게요.." 말하며 뒷걸음치던 내게 C는 "알겠어. 미안, 미안" 같은 반응을 보였고, 동료들은 크게 웃었다.

"자, 김작가. 모처럼 만났으니 다리로 줄게" 닭볶음탕이 끓는 냄비에서 고기와 감자를 앞접시로 덜어주던 C는 말했다. 매콤하게 졸여진 듯한 국물을 보니 군침이 절로 돌았다. 젓가락으로, 숟가락으로 밥과 반찬, 닭볶음탕을 오가며 동료들의 모습을 차례대로 눈에 담아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식당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주변 테이블에서 쏟아지는 높고 굵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윙윙거리는 소음 속에서 동료들의 언어가 나직이 들려왔다. 새로 다니는 회사가 어떻고, 여전히 다니는 회사가 어떻고, 사는 게 어떻고. 다양한 소리가 혼재되어 동료들의 말조차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다만 또렷하게 들렸던 건, 서로의 말이 끝날 때마다 술잔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였다.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각자의 경험들 속에서 하나의 의식처럼 "자, 잔!" 하는 외침이 들려왔고, 잔과 잔이 맞닿으며 내는 청량한 소리를 신호 삼아 우리는 잔을 비웠다.


이들은 내가 사회복지사로 근무할 때 만났던 동료들이다. B는 선배처럼 나를 챙겨주던 동료였다. C는 근무할 때는 교류가 크게 없었지만, 모임을 이어가며 가까워졌다. D는 나보다 6살 많은데 동네 형처럼 친숙한 동료였다. A와는 같은 날 입사했는데 동기라는 이유로 편한 동료였다.

나는 당시 감정 기복이 심한 상사와 한 팀에서 근무했었다. 상사의 기분에 따라 괜찮았던 결과가 욕을 들을 만큼 잘못한 결과가 되기도 했다. 상사의 옆자리로 불려 가 큰소리로 혼나는 일이 잦았다. 한 사무실을 같이 쓰던 동료들은 모두 들어보았을 소음이다. 불안에 떨며 일할 때가 많았다. 언제 보고할지 고민하다가 기한을 놓친 적도 있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 게 두렵고, 뒤돌아서면 울고, 상사와 한 공간에 있다는 자체로 숨 막혀하던 내게 이들과의 약속은 회사의 영향로부터 신속히 벗어날 수 있는 비상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함께 근무할 때 아지트 같은 술집에서 자주 만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회사에서 있었던 상황이나 서로 아는 사람에 대해 주로 나누었다. 때로는 고성을 터트리고, 속닥거리고, 울음을 삼키며 해소하지 못한 순간들을 꺼내놓았다. 우리는 대체로 탁자에 놓인 누군가의 경험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지 않았다. 말과 말 사이에 틈이 생길 때마다 잔을 부딪쳤다. 얼마나 아팠냐는, 지금은 괜찮냐는, 나아질 거라는 말은 뒤따르지 않았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주량만큼 담긴 술잔을 서로를 향해 다만 내밀었다.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 보낸 시간만큼 세월이 내려앉은 듯했다. 싱글이었던 B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C는 직업을 바꾸었고, A는 이직한 회사에서 진급했으며, D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한 회사에서 함께 근무할 때와는 사는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우리는 분명 각자의 일터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만나기만 하면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스스럼없다. 처음 만났던 날이 10년도 넘었지만 이들도, 나도 그 시절의 모습을 한편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예전에 수호 토하러 다녀온 거 보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알아?" B가 문득 말했다. 우리가 아지트로 모일 때면 B가 유독 술을 따라주었다. 잔에 술이 남아 있으면 비우고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술을 건네는 B의 목소리는 친근했고, 표정은 장난스러웠다.

나는 안다. 나는 호불호가 강하다. 마음에 안 들면 싫은 기색을 숨기기 어려워한다. 어제는 비록 토를 했지만, 오늘 B가 주는 술로 잔을 다시 채웠다는 건, 그가 따라주는 술을 내가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그게 누나가 저를 후배처럼 생각하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이들과 만날 때마다 깨닫는 게 있다. 이들이 내가 가진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때로는 투박하게 느껴지더라도, 함께 버텨주는 존재가 있으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에서 받은 상처가 아물어 가는 과정을 곁에서 견뎌주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자, 잔!"을 외치며 슬며시 웃는 이 순간의 내가 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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