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아빠가 이번 생애 더 이상 손자를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누나의 두 아들로 만족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아기를 좋아한다. 정확하게는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내게는 사촌 동생이 네 명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내가 입으로 중계하며 게임하는 걸 동생들은 특히 즐거워했다. 우리의 얼굴을 모아 놓은 것보다 작은 텔레비전을 두고 의도적으로 선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동작과 나의 반응으로 우리 집 거실은 명절마다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나는 자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자녀가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기까지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돈도 그렇지만 인적 자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는 결혼을 가족 간의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는 또한 가족과의 합심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처럼 가사나 양육의 비중을 부부 중 한 사람이 전담하지 않는다. 물론, 부부간의 합의가 중요하겠지만 맞벌이를 하는 부부의 비중도 크고, '~해야 한다' 같은 고정관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 가족의 경우, 맞벌이하는 누나와 매형 부부를 위해 엄마와 아빠가 양육에 참여했다. 두 손자가 태어난 해부터 엄마는 그들을 돌보는 데 시간을 전적으로 할애했다. 아빠도 양육을 도왔다. 엄마와 아빠가 손자들을 키워갔다면,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양육에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함께 놀았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조카들은 삼촌의 나이를 39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처럼 대한다.
"삼촌. 우리 이제 로블록스 하는데 삼촌도 깔아 봐"
"응? 그게 무슨 게임인데? 재밌어?"
"응. 우리 반에서도 이제 브롤스타즈 안 하고 로블록스 많이 해"
다른 어른에게는 하지 않은 듯하지만, 내게는 게임을 깔라고, 들어오라고, 같이 하자고 말한다. 3D 게임이라 멀미가 난다고 조카들에게 토로하면서도 다소 과장된 움직임으로,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게임에 참여한다.
나는 스스로 어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조카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어른이고 어린이고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해맑게 놀 때가 많았다. 가족들이 삼촌이 어디가 좋은지 물어보면, 조카들은 놀아줘서 좋다고 말했다. 나는 조카들과 함께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이라도 된 것처럼 숨바꼭질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조카들이 만든 기상천외한 놀이에 참여하며 웃음 지었다. 가족으로써 해야 하는 양육의 의무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어울렸다. 나와 조카들은 체력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체력도, 나이처럼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눈높이만큼은 적어도 비슷했다.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는 주 양육자부터 받는 영향의 정도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나, 받지 못한 것이 특정한 행동을 선택하는 동기로 이어지며 다른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부모와의 관계 역사와 관련 있는 대상일수록 욕구와 결핍, 소망을 포함한 내적인 영역의 작용이 관계의 향방을 결정하기도 한다.
나는 조카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를 따끼라고 부르는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모님과 함께하는 순간으로부터 체험할 수 있는 긍정적인 느낌과 감각을 원했다는 게 명확해졌다. 조카들과 눈을 맞추고, 발을 맞대고, 손뼉을 마주치며, 서로에게 체온이 맞춰진 것처럼 놀이에 참여하며 깨달았다.
반면, 조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좌절시켰다는 느낌이 두드러질 때 불안감이 촉발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조카들이 보다 어렸을 때는 그들의 감정이 비언어적으로 잘 드러났다. 토라진 표정, 줄어든 말수, 높낮이가 달라진 목소리처럼 조카들의 감정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단서가 뚜렷했다.
나는 조카들 중 누구라도 감정의 추가 '나쁨' 방향으로 기울면 혼란에 빠졌다. '조카들의 좋았던 기분이 왜 달라졌을까?' 생각했다.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가 기여한 부분은 없는지 찾아내려고 했다. 조카들에게 보인 미세한 반응일지라도 내가 한 행동을 '저지른 잘못'이라고 인식하며 부적절감을 느꼈다.
쌍둥이 조카 중 한 아이는 나와 성향이 비슷하다. 조심성이 많고, 신중하며, 부끄러움을 잘 탄다. 다른 아이는 모험적이고, 활발하며, 재치가 많다. 내가 관찰한 조카들의 행동 경향은 한 아이의 행동이 촉발되고, 부모의 언어적, 비언어적 반응이 개입되고, 다른 아이가 행동을 선택하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조카 A가 불만족스러운 듯 행동하면 부모의 주의가 A에게 향한다. 부모가 A를 향해 반응하면 B는 A와 엄마, 아빠의 행동과 반응을 지켜보고 자신의 행동을 선택했다.
어렸을 때, B는 대부분 양보를 선택했다. 나에게는 A처럼 때를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B가 자신의 욕구나 감정, 느낌, 감각, 소망처럼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소중하고 중요한 일들을 외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A에 의해 놀이의 규칙이 무너질 뻔한 상황을 적절히 다루고 조율하며 B의 목소리가 놀이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가족들의 시선이 크게 우는 아이로 향할 때, 나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로 향했다.
그래서일까. A도 나를 좋아해 주지만, B의 사랑은 남달랐다. 조카들이 두 살 즈음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B는 '삼촌 내 거야' 말하며 쾌활한 미소를 보였다. 누나가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크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옹알이를 할 때는 현관에 놓인 내 운동화를 만지며 놀고 있다고 엄마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 적도 있었다. 더 어려서는 안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거실로 덜컥 뛰어나오며 "따끼?" 외치며 나를 찾기도 했다.
하루는 누나 집에서 놀다가 "삼촌 이제 집에 갈게" 조카들에게 말하니 B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눈물을 보였다. 선 채로, 목청껏 울었다.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가 당황할 만큼,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감정의 파도가 거실로 퍼졌다. 나는 조카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집으로 향했다. 내일 출근해야 되므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며 내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 때문이다. 조카에게는 커다란 상실처럼 다가왔을 수 있는 나와의 이별을 소화할 수 있도록 품을 내어주지 못했다.
나는 나를 탓한다. '만약, 그때 내가 B를 안아주며, 이별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다만, 나는 알고 있다. B가 내게 보인 관심과 기다림, 좌절은 내게 익숙하다. 내가 경험해 온 대인관계 과정을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편향된 시선은 내가 보고 싶은 정보에 초점을 맞춘다. 조카들은 나와의 관계에서 경험했을지 모르는 부정적인 체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저지른 행동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에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지만,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 누나네 집, 거실, B의 표정, 울음소리, 가족들의 반응,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다가오는, 넘실거리는 파도에 여전히 잠겨있다. 나는 나조차 받지 못했던 걸 B에게 줄 수 없었고, 내가 줄 수 없었던 걸 받길 원했던 B의 바람은 적어도 그날 좌절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