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사라진 기억이라 해서 반드시 아까운 건 아니다.

by 마리스텔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무거운 속삭임에 빠져 젖어들고 있었다.

'이런 것일'

'이렇게 하면 어떨까?'

고민이 지속될수록 시간은 조각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저렇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끈질기게 미궁으로 빠져들어갔다.

무의식과 의식으로 번갈아 가며 미간사이로 슬금슬금 스며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불끈 솟구치면 숨을 참지 못했고 분노로 이어지다가도 죄책감으로 치달았다.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이어진 감정의 골은 가족 모두에게로 확대되었다.

고질적인 감정의 악성종양은 깊이가 가늠되지도 않았다.

깊숙이 세포 속에서 옴짝 달짝하지 않고 박혀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 분열이 찾아왔다.

원망과 비난에서

난 자유롭고 싶었다.

감정의 폭풍이 몰아칠 때면 맹물을 들이켜 희석시켜서라도 옅어지기를 바랐다.

빨리 진정이 되지 않으면 불안함이 커지고 잠을 청해도 악몽에 시달렸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바랐지만 알 수 없었다.

지금 내가 힘든 것에 대한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 1년을 훌쩍 넘겼다.

내 앞은 막막하고 무거웠으며

다른 사람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무기력했다.

노력해도 틀어진 관계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수렁에 빠져들었다.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어 판단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둔한 신경은 허둥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다 보면 지난 시간만큼 다시 회복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그걸 무작정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생각과 다르게 감정이 표출되기도 했다.

막연한 기대였음을 알아차리기까지 힘에 겨웠다.

그러다

어두움 속에서 빛나는 공간으로

기억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것은 생각일 뿐 맘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 헛수고임을 느낄 때면 비참했다.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잣대로 나를 시험하기도 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며 오해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내 잘못이 아님을 증명해야 속 시원해질 것이란 생각에 그 순간순간의 억울함을 수집해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지금이 벗어날 그날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알게 된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의 크고 작은 자극들은 정신적 피로를 가중시켰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믿었던 사람이었다, 비밀을 지켜줄 것 같은 - 날 조롱하듯 쏘아댔다.

"누군가에게 버려지길 바라는 거잖아요. 그걸 결심한 것 아닌가요?"

심장이 막힐 듯 아팠다,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 말이 자꾸 생각이 나서 그렇게 말한 그 사람이 미웠다.

'내가 먼저 버리려고 했는데 왜 날 비참하게 하는 거야.'

그렇다.

어떤 것은 기억에 남아 자꾸 괴롭혔다.

그것이 상처로 남아 아프지 않게 하는 건 결국 내 몫이었다

이젠 더 이상

아픔이 반복되길 바라지 않게 되었다.

상처를 더 이상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기로 결심했다.

길이를 알 수 없는 터널은 없다.

미리 그 길이를 안다면 곧 벗어날 수 있다.

진실을 알아차리기에 무뎠던 감정이 깨어났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얽매였던 집착을 끊어 낸다.

진전도 없이 막연하게

기다린다는 걸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내 의견이 아직 받아들여질 준비가 안된 상대방은 어떤 말을 해도 오히려 독을 내뿜고 감정을 오염시킬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준비가 안되었듯 그들도 아직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통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손 내밀며 오는 날

두려움 없이 안아줄 일만 남았다.

그때 실컷 울 것이다.

나 자신 또한 날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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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

너무 잘하려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림의 힘]

저자 김선현

p 30 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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