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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13. 2020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자세

키위야, 지금쯤 어디서 구름 꾹꾹이 하는 중이니?

키위는 뉴질랜드의 털이 보송보송 난 귀여운 과일이다. 키위라는 이름은 또 우리 가족에게 살포시 왔다가 간 아주 작은 고양이의 이름이다.

나는 오늘 가슴 아프지만 짧고, 따뜻한 여운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키위의 얘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집 딸아이는 외동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동물친구가 우리 곁에 있어왔고 그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배워야 하는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물론, 귀여운 동물을 꽤나 좋아하는 대학생이다. 항상 바쁘게 일을 하는 엄마 아빠에게 고양이 입양 얘기를 꺼내곤 했다. 왜냐하면, 강아지보다 관리가 훨씬 수월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여기 멜버른에는 RSPCA(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라는 동물학대 방지협회센터가 지역마다 위치해있다. 버려지거나 위기에 있는 동물들을 구하고 돌봐주며, 새로운 주인에게 입양이 되어 잘 정착하게끔 도와주는 곳이다. 물론 입양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아 오가며 자기 가족의 환경에 어울릴만한 동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곳은 동물병원까지 같이 운영하고 있다.

무한 동물 사랑이 몸에 배어있는 딸아이는 이미 RSPCA에  많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또 가엾은 동물들은 여기서 데려와서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고양이 입양에 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날 마침, 토요일이라 서로가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기 딱 좋았다. 우리가 들어선 입구에서부터 오전에 온라인으로 봐 두었던 브라운색의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다. 많은 고양이들은 자고 있거나 아님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뭔가 끌리듯 찾아간 곳에서 우리가 찾던 고양이를 만났다. 역시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초록색 눈을 가진 작은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우리 가족에게로 와서 몸으로 인사를 하며, 은근 함께 지낼 것을 바라는 모습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동물이 그런 친화감을 준다는 건, 모처럼 느끼는 따뜻한 감정이었기에, 우린 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이 고양이를 집에 데려 오겠노라고 무언의 사인을 눈으로 주고받고 있었다. 딸아이는 한참을 앉아서 그 고양이를 만져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친해진 모양이었다.

상당히 들뜬 맘으로, 딸아이는 자기가 모아둔 용돈으로 입양 수속을 하겠노라고 얘기하며 들떠 있었다.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우리에게 내일을 약속하며 입양을 진행하겠다고 얘기했다.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기로 한 우리 가족은 너무 바쁘고 설레는 맘에 그날밤을 설치고 있었다. 그다음 날, 우리 가족은 3시간이나 넘게 그곳에 있으면서 키위와의 만남에 설레 하고 있었다. RSPCA 직원들 또한 바쁘게 움직이면서, 키위와 함께할 우리의 삶에 응원의 목소리를 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고양이, 키위와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집이 도착한 키위는 꽤 낯설은지 많이 움직이지 않고 비교적 얌전한 모습이었다. 이제 겨우 8개월,  성묘가 되기 직전의 아이였다.

작은 체구에 길고양이어서 그런지 사람의 따듯한 손길에 애정을 많이 보여주었다. 우리가 꽤 낯설을 텐데도  날카로움 없이 항상 친절했다. 마치 거처를 마련해준 우리의 선처에 감사를 하듯이 말이다. 키위는 소파에도 올라가고, 피아노에도 올라가 보고 호기심 많은 모습은 여느 고양이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내가 만들어준 보송보송한 빨간 쿠션에 올라가 꾹꾹이를 하다가 잠이 들 때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꾸 보게 되었다. 딸아이는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양, 정성으로 키위를 돌봐주고 놀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와 남편은 다시 바쁜 일상이 계속되었다. 키위는 자고 있다가도 우리가 집에 오면 마중을 나와 인사해주고, 머리꿍도 같이 해주며 귀여운 짓을 많이 해서 세상 천사처럼 우리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딸아이는 너무 얌전한 것이 심심해서라며, 자기 용돈을 털어서 장난감을 사 오고, 또 값이 더 나가는 간식도 사주며 키위와의 시간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키위는 잠을 자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조금씩 무기력해져 갔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잘 수 있다지만, 여기저기 집안에서 잠을 자는 키위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자는 키위 깨워 노는 게 다반사였으니깐 말이다.나는 키위의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딸아이한테는 최대한 부정적이지 않게 걱정을 의논하려고 남편과 나는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이미 여기저기 알아보고 병원에 가 봐야 할거 같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을 주려고 키위를 깨우는데 키위의 머리를 만지는 순간, 열감을 느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바로 RSPCA 동물병원에 연락을 해서 바로 키위를 데려갔다. 키위는 생각보다 훨씬 열이 높았다. 의사는 감기 같아 보이니 약을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처방받은 약을 먹이고 보살피는데도 키위의 열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날도 열이 계속되는 상황이라 병원에 다시 데려가야만 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시켜 몇 가지 검사를 해봐야 좀 알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렇기 키위는 병원에서 며칠 밤을 보냈다. 잘 먹지 못하는 키위에게 갖가지 죽을 전달 해 주면서, 부디 빨리 회복하길 바랬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담당 의사, 키에꼬는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키위의 건강 상태를 계속 알려주었다. 며칠 동안 검사 결과를 하고 약을 써본 결과, 불행하게도, 키위의 건강상태는 그다지 호전되지 못하고, 복막염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고 말았다. 정말 한낱 희망을 품은 우리에게 너무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딸아이는 계속 울며 마음 아파하고, 우리도 너무 안타까워서 일이 손에 내내 잡히질 않았다. 고양이한테 복막염은 치사율이 아주  높은 치명적인 병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했고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병원은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면서 키위가 너무 아프고, 또한 우리가 이런 상처를 받은 것에 대해 너무 안됐다고 위로하면서 모든 병원비에 입원비를 다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양이 입양비 차원으로 받은 250 여불 정도의 돈도 환불해주겠다고도 얘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시, 어떤 보상도 별로 위안이 되지 않고 힘없는 어린 우리 키위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게 넘 가슴 아플 뿐이었다. 진정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에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햇살이 한창 퍼질 늦은 아침에 , 남편은 병원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놓었다. 우린 알 수 있었다. 그 침묵이 뭐를 말할지,,

키위는 어젯밤부터 호흡곤란과 복수가 많이 차서 너무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도 안락사를 해야 할 것 같다면 우리에게 동의를 구해왔다. 우리 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키위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딸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침착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키위를 기억하면서, 한 달 남짓 우리 곁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편안하게 천국으로 가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고 잠시 있다가, 키위 주치의인 키에꼬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그녀는 키위는 편안한 모습으로 떠났고, 길거리 고양이로 살다가 우리 가족이랑 한 달 동안 따뜻한 정을 느껴서 정말 행운이라고 얘기하며, 우리가 보여준 관심이 너무 고맙다며 슬퍼하는 우리 가족을 마음을 다해서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안했다. 우리가 원하면, 자기 병원 RSPCA에서 연결되어 있는 동물 화장(cremation) 시스템이 있는데 그것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얘기해줬다.

그렇게 키위는 우리에게 돌아왔다.  딸아이는 볕이 좋은 날, 우리 집 근처에 묻어주자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RSPCA가 버려지고 갈 곳 없는 동물들에게 새 삶을 찾도록 도와주고 또 그 동물들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에 대해서 깊게 감동받았다. 더불어 그들을 입양한 보호자를 최대한으로 존중하며 마지막까지 위로해주려는 자세에 대해서 더없이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우리 고양이, 키위는 그렇기 떠났지만, RSPCA에서의 경험은 우리가 작은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또 나아가서 지역사회라는 곳에서 서로 협력하며 도와주면서, 안타깝게도 불행에 마주했을 때 슬픔을 위로해주는 방식면에선 그 가치가 더해지는 듯하다.


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상실이 주는 허한마음이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다. 그러나, 키위가 남기고 간 여러 따뜻한 손길과 그 위로의 목소리들은 내 가슴속에 사랑이란 기억과 함께 그날의 여운을 남긴 채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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