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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13. 2020

김치, 내 밥상에 앉다

코로나는 내 인생을 참 많이도 바꾸는 중이다. 틈이 나면,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센터로 달려가 종횡무진하며 옷을 고르다가 커피 한잔을 하기도 하며 사색에 빠지곤 했는데 이젠 갈 곳 잃은 내 지름신은 집안에서 조용히 머무르는 중이다.


그래도 전염병이 무서운지라, 이곳 락다운(이동제한령) 내내 슈퍼 가는 것도 자제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또한 반경 5킬로미터를 넘는 이유로  한국 슈퍼에 가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밥상에서 찾아내야 하는 나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수련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중에서 밥상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던 김치 자리는 텅 비어진 지 오래이다. 게다가 김치 만들기의 시도는 이렇다 성공한 적이 없기에 진작에 내 입맛에 맞는 김치 브랜드에 의지하고 살고 있었다. 이렇게 김치 찾아 방황하는 동안, 여기 멜버른에  한 공구업체가 한국 김치를 주문받는다고 하길래 나는 그날 밤 광클릭을 해대면서 김치와의 영접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차갑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호주의 꽃샘추위가 느껴지는 오후, 우리 가족은 라면을 먹기로 하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파를 송송 썰어 놓고 계란 두 개를  보글거리는 냄비로 투척하려는 순간, 우리 집 강아지는 이미 현관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 김치가 도착한 것이다. 이건 정말, 인내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마치, "라면엔 김치지"라는 진리에 마침표를 찍듯이 말이다.



김치 5킬로를 받아 들고 오는 남편의 얼굴은 미소로 무장되어 있었고, 내 손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그 빨간 양념에 살포시 담겨있는 포기김칫잎사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밥상에 가장 가운데 자랑스럽게  앉은 김치는 그 자체가 아우라였다.  젓가락에 라면을 돌돌 말아 김치 한점 얹어 먹으니 내 입속으로 그리움 가득한 오손도손 밥상을 함께 차려냈던 그 고향이 들어와 앉았다. 한국에 있었을 때 친정, 시댁 또는 마트에서 사다가 맛을 평가하고 먹다 남기고 그러다 오래되면 가차 없이 또 다른 신선한 김치로 갈아타버렸던, 애틋함도 없고 감사함도 없던 내 김치를 다루는 삶의 태도는 어느덧 진지해지면서 지금 이렇게 소중히 김치 한 점에 가족의 따뜻한 추억을 실어 먹고 있다니...



인생도 그런 거 같다. 항상 쳇바퀴 돌듯 지나가는 시간들에 묻히고 퇴색해지는 것들에 아쉬움을 깨닫지 못하다가 문득 지나 보면 그 시간들이 그립고 한 번쯤은 애달퍼지는 순간들로 맞이하게 될 때 우리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지금 힘든 이 시간을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안부와 건강을 염려하면서 말이다. 김치가 고향을 가져다주는 이민자의 삶에도 이렇게 추억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여기는 봄이 서서히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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