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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13. 2020

딸기 인형의 소환

키덜트라서 행복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형을 참 좋아했다. 가끔 나는 키덜트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또 그걸 굳이 애써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 이유는 어린시절 순수했던 세상을 지금의 내 나이에 내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세월인형들은 참 다른 모습으로 내게 왔었다. 아주 어릴적, 할머니랑 시장에 갔다가 산 국민 마로니인형. 아빠의 과장승진 기념으로 받은 얼굴 큰 헝겊인형. 눈이 잔뜩 내렸던 크리스마스날의 커다란 스누피인형. 그리고 지나가다 엄마를 졸라서 산 동네문방구 인형등이 지금 내 머릿속을 스쳐간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말레이지아에서 살다 온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집은 더운 나라에서 살다 와서인지 모든 가구들이 라탄으로 된 이국적인 분위기로 생생히 기억이 난다. 어느날 수다삼매경중, 내 코를 자극하는 달콤한 딸기향이 방안 어디선가 솔솔 났다. 그것은 친구의 책상위에 다소곳이 서 있는 자그마한 딸기인형에게서 나는 향기였다. 그 인형은 커다란 딸기케익모양의 모자를 쓰고 통통한 붉은 볼에 주근깨를 갖고 있는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난 그 곳에서 그 작은아이와의 만남에 심하게 흥분하며 소유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인형의 원산지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라는 높은 장벽을 나에게 드러냈다. 미국에서 파는 인형을 내손에 넣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아빠가  곧 미국출장을 가실거라는 희망적인 말씀을 나에게 하셨다.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이건 내가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하늘의 뜻이던가? 그렇게 아빠는 2주동안의 미국출장길에 내가 부탁한 딸기인형 찾기 미션을 가지고 떠나셨다.

그리고 2주 후, 아빠의 출장가방안에는 기대와는 다르게, 금발의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나를 보고 활짝웃는 바비인형이 들어있었다. 그 딸기인형 찾기 미션은 아빠에게 성공의 키를 쥐어 주지 못한 채, 아빠의 바쁜 출장길을 재촉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아빠에게 그런 섭섭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그 바비인형을 꼭 안아주며, 내 맘속의 딸기인형과 작별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난 벌써 대학생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어느날, 딸아이와  두런두런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어린시절 딸기인형 (원제:스트로베리 쇼트케익)을 갖지 못한 아쉬움을 얘기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엄마가 아쉽게도 만나지 못한 그 추억의 1985년, 딸기인형을 곧 만나게 해주겠다고 얘기했다. 나는 긴가민가하면서도 30여년 전 추억과 마주서게 되는 순간이 올수도 있다는 것에 이미 설레고 있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퇴근후 집에오니 조금 큼직한 택배상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딸아이가 나를 위해 추억소환을 해 준 것이었다. 거기엔 빨간 상자하나가 놓여있었다. 딸기인형은 내가 보고싶어하던 모습 그대로 미소를 지으며, 상자 안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커다란 딸기케익모자를 쓰고 통통한 붉은 뺨에 주근깨 있는, 1985년 그때를 기억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인형에서 솔솔  풍겨나오는 그 기억의 달콤한 딸기향은 꿈 많고 말괄량이였던 순수한 그 시절의 나로, 어린시절 향수 가득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었다. 마냥 그리워해도 돌아갈수록 없는 아련한 그때 그 시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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