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 보면, 점심때 나도 모르게 진한 카페인 한잔을 찾아 발걸음이 바삐 움직여지는 곳이 있다. 내가 일하는 유치원을 나와 모퉁이 돌아서 한 10여분을 걸어가면 몇 개 안 되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 전혀 화려하지 않은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카페가 하나 나온다. 멀리서 보면 간판도 없고 오직 후각의 힘으로 쫓아가다 보면 우연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를 찾기까지 주변 동료들이 들고 오는 수많은 커피 컵들에 눈도장을 찍어대며 지내왔었다. 괜스레 지나가다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기대감에 서 있어 보기도 하고, 혹은 멋진 이탈리안 바리스타가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20분을 헉헉거리며 걸어가 보기도 했지만, 내가 그렇게 만난 커피들은 내 인생의 후회커피들로 남아있다.
커피가 유명한 멜버른이지만, 모든 카페가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만들고 있지는 않다. 물론 시티에 나가게 되면 훌륭한 맛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한 카페들도 정말 많다. 그런 곳을 매일 갈 수 없으니, 나에게 맞는 진짜 커피를 찾아 커피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방황을 몇 년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내가 찾은 이 중독성 있는 카페는 여기 남동부 해변가에 위치한 브라이튼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카페 내부는 몇 개 안 되는 테이블과 간단한 조명 하나 천장에 달려있고, 몇 개의 소박한 화분이 다다. 왠지 이런 분위기는 커피맛도 성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는 몇 번을 그냥 지나쳤었다. 그러나 나의 발걸음을 서둘러 돌리게 한 이유는 그 카페를 지날 때마다 나는 강한 원두향이었다. 내가 무심코 가졌던 편견은 그날의 커피 첫 모금에서 말끔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집의 커피는 강한 신맛의 날카로운 원두향이 일단 내 후각을 자극하고, 우유와 잘 섞인 묵직한 농도는 내 하루의 피로를 싸악 씻어주는 커피를 내어 주었다. 정말 유레카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나는 기뻤다. 이제 유목민의 신세에서 정착이란 걸 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카페에 앉아있으면, 그 짧은 40분 남짓의 시간에 나는 너무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내 움직임과 시선에 방해가 될만한 것들이 별로 없어서 나한테 오롯한 휴식을 내어준다. 예전에는, 카페는 당연히 예쁘고 세련되어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카메라를 바쁘게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볼거리를 제공해야지만, 커피도 맛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의 맛과 그 아름다운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집중하게 됐다. 또한 내가 펜을 꺼내 들 수 있는 여유는 분명히 이 카페가 만들어내는 무슨 공식 같은 거라 느껴진다. 생각을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힘 말이다. 그것이 미니멀리즘 감성인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그곳의 커피 향이 내 코끝에 머무는 듯한 느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