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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14. 2020

커피를 마시며 엿보는 미니멀리즘

아침부터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 보면, 점심때 나도 모르게 진한 카페인 한잔을 찾아 발걸음이 바삐 움직여지는 곳이 있다.  내가 일하는 유치원을 나와 모퉁이 돌아서 한 10여분을 걸어가면 몇 개 안 되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 전혀 화려하지 않은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카페가 하나 나온다. 멀리서 보면 간판도 없고 오직 후각의 힘으로 쫓아가다 보면 우연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를 찾기까지 주변 동료들이 들고 오는 수많은 커피 컵들에 눈도장을 찍어대며 지내왔었다. 괜스레 지나가다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기대감에 서 있어 보기도 하고, 혹은 멋진 이탈리안 바리스타가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20분을 헉헉거리며 걸어가 보기도 했지만, 내가 그렇게 만난 커피들은 내 인생의 후회커피들로 남아있다.


커피가 유명한 멜버른이지만, 모든 카페가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만들고 있지는 않다. 물론 시티에 나가게 되면 훌륭한 맛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한 카페들도 정말 많다. 그런 곳을 매일 갈 수 없으니, 나에게 맞는 진짜 커피를 찾아 커피 유목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방황을 몇 년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내가 찾은 이 중독성 있는 카페는 여기 남동부 해변가에 위치한 브라이튼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카페 내부는 몇 개 안 되는 테이블과 간단한 조명 하나 천장에 달려있고, 몇 개의 소박한 화분이 다다. 왠지 이런 분위기는 커피맛도 성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는 몇 번을 그냥 지나쳤었다. 그러나 나의 발걸음을 서둘러 돌리게 한 이유는 그 카페를 지날 때마다 나는 강한 원두향이었다. 내가 무심코 가졌던 편견은 그날의 커피 첫 모금에서 말끔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집의 커피는 강한 신맛의 날카로운 원두향이 일단 내 후각을 자극하고, 우유와 잘 섞인 묵직한 농도는 내 하루의 피로를 싸악 씻어주는 커피를 내어 주었다. 정말 유레카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나는 기뻤다. 이제 유목민의 신세에서 정착이란 걸 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카페에 앉아있으면, 그 짧은 40분 남짓의 시간에 나는 너무 편안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내 움직임과 시선에 방해가 될만한 것들이 별로 없어서 나한테 오롯한 휴식을 내어준다.  예전에는, 카페는 당연히 예쁘고 세련되어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카메라를 바쁘게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볼거리를 제공해야지만, 커피도 맛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의 맛과 그 아름다운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집중하게 됐다. 또한 내가 펜을 꺼내 들 수 있는 여유는 분명히 이 카페가 만들어내는 무슨 공식 같은 거라 느껴진다. 생각을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힘 말이다. 그것이 미니멀리즘 감성인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그곳의 커피 향이 내 코끝에 머무는 듯한 느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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