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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17. 2020

남편은 족발 장인

족발은 집에서 해 먹는 거야

호주로 이민 온 이후로 우리의 식탁은 간단한 한 끼가 대부분이었다. 풍성한 한식상차림은 기대하지도 않고 산지 오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남편은 요리에는 거의 관심도 없었고, 솔직히 얘기하자면 굳이 열심히 배울 필요도 없었다. 상상하는 그 맛을 내기에는 들이는 공보다 사 먹는 게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여기 호주로 훌쩍 오게 되었다. 엄마의 레시피를 제대로 손에 쥐지 못한 채, 주방에 뛰어드니 매일이 새로운 시도이며, 두 번 다시 똑같은 맛을 만들어내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게다가 나와 남편은 한국 야식에 꽤 길들여진 사람들이었다. 손에 쥐어진 전화기로 치킨, 족발, 신선한 바로 뜬 생선회 그리고 닭발이며 저녁식사 후 찾아드는 아쉬움을 달래기엔 정말 이것만 한 것이 있으랴. 그중에서 족발은 그리운 야식메뉴 중에 하나였다.


어느 날, 한국 마트를 갔는데 냉장고에 ‘족발 있음’이란 안내를 보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바로 장바구니에 담아왔다. 집에 가져와 꺼낸 족발은 우리의 족발 추억에 흠집을 내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맛도 없고 퍽퍽한 고기 맛은 차라리 아니 먹었음 나았을 거라고 우린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족발은 추억의 저편으로 다시 고이 접어두어야만 했다.


우리는 가끔 정육점에 들리면, 통통한 족발들이 담겨있는 바구니를 보았다. 물론 보기에 그다지 친근한 비주얼은 아니지만 은근히 먼 언젠가 우리도 족발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서로 해 본거 같았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족발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지, 사 먹는 게 답이지 하며 항상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외면받은 족발들이 얼마나 많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은 족발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또 다른 브랜드의 그저 그런 족발을 먹을 준비를 하고 집으로 왔다. 집 밖에서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조금 과장하자면, 장충동 족발집을 지나는 분위기의 냄새였다. ‘이 남자 오늘 일냈네’ 하는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가스스토브 앞에서 커다란 냄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족발과 꽤 씨름을 한 흔적이었다.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봤다고 멋쩍게 말했다 내가 보는 남편은 족발 스터디를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는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가 있냐며, 따뜻한 족발이 먹고 싶었다고, 우리 둘이 오손도손 소주 한잔 기울며 먹는 그 족발이 그리웠다고 얘기했다. 나는 남편의 족발 모험에 응원을 보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타이머를 끄고, 다 익은 족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나는 연기에 브라운색의 반질거리는 그 통통한 족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비주얼면에서는 완벽했다. 나는 하나하나 드러나는 아름다운 족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 주방에서 족발을 해서 먹을 수 있다고 상상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무색했다. 남편은 성공의 깃발을 들 준비를 하는 듯이 커다란 체반에 족발 세 개를 올려놓고 식힌 다음,  그때의 그 족발을 기억하면서 균형 있게 잘라내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서 기다리면서 너무 설레고 그 맛있는 족발을 남편이 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하고 있었다. 남편이 두 손 가득 가져온 족발은 벌써 풍기는 냄새부터 달랐다. 정말 푸짐하고 따뜻했다. 게다가 남편의 조바심 담긴 정성이 담겨 있는 걸 알기에 너무 고마웠다. 나는 서둘러 얇게 썰어 버무린 부추에 싸서 그 따뜻한 족발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쫀득쫀득하니 간도 딱 맞고, 이게 바로 우리가 찾던 그 족발 맛이었다. 남편은 우리가 먹던 그 맛을 가장 가깝게 아니 똑같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린 너무 행복하고 신기했다. 집에서 족발을 만들어먹을 수 있다니. 요리에 별 관심 없던 남편이 족발을 한 번에 해 내다니 나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먹고 싶어도 못 사 먹으니 내 손으로 만들자는 남편의 생각의 의지가 불러온 성과였다.


그 후 족발은 우리 집 단골 메뉴가 되었다. 남편은 족발을 자주 만든다. 물론 더 발전해서 이젠 더 빨리 만들고 맛도 진화하고 있다. 우린 그를 족발 장인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족발을 왜 사 먹어, 족발은 집에서 먹는 거야.’라고 도도하게 말하며 오늘도 족발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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