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딜레마
나는 태어날 때부터 통통했다. 통통한 뽀얀 살결을 누리고 사는 대신에 항상 살과의 전쟁을 하면서 살아왔다. 일단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한답시고 다이어트라는 거는 머리에 떠올려보지도 못했다. 공부하는 데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지론이 나의 식욕의 불을 활활 지폈고, 밤늦게까지 공부한다는 이유로 독서실 아래 편의점에서 고칼로리의 간식을 아무 죄책감 없이 선택하곤 했다. 그렇게 살들이 오동통하게 오르고 있을 때, 그 칼로리의 힘을 팍팍 얻어 대학에 붙었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살과의 전쟁에 놓여질 미래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대학 입학식 때, 패션에 한 센스 하는 엄마의 스타일링 아래 입었던 체크 반바지 수트 차림의 사진은 아직도 그날의 불편한 기억을 남긴 채 사진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꽃피는 3월 캠퍼스 생활을 만끽하게 된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살과의 고민을 하고 있는 과친구와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는 다이어트의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무조건 굶다시피 하며 배고픈 여정을 함께했다. 신촌에서 종로를 걸어 다니며, 지하철 몇 정거장쯤은 아주 쉽게 걸어가며 살 빼는 의지를 불태웠다. 물과 블랙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빵 중에 칼로리가 낮은 바게트 빵을 뜯어먹으며 고소하다고 계속 얘기하곤 했다. 진짜 배가 고프면 우리는 저칼로리로 허기를 금세 채울 수 있는 물냉면으로 불쌍한 영혼을 달래고 있었다. 물냉면은 무조건 평양냉면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다이어터들에게 자기 위로를 하기에 딱 좋은 식사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심심한 냉면 국물과 돌돌 말린 냉면 위에 고기 한점, 절인 무 그리고 배 한 조각이 아름답게 놓여있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겸허한 자세로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서 바닥이 보일 때까지 그릇을 비우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먹고 걷고 하면서 내 다이어트의 시간은 아주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살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냉면과 바게트의 생활은 우리의 친구관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웃기지만 슬픈 연결고리가 되었다. 서로 날씬한 미래를 밀어주는 참된 우정이야말로 군대에서 맺어진 돈독한 전우애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었다. 게다가 가끔 날카롭게 반응해도 서로 너그러이 받아줘야 했다. 배가 고픈 걸 참다 보면, 신경질로 승화한다는 구조를 서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나보다 좀 더 참을성이 있었던 거 같다. 많이 예민해진 나를 다독거려주면서 목표 몸무게에 먼저 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든 급히 갈 수 없는 법이었다. 내 속도로 다이어트를 하는 길 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엄마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케트를 뜯어먹으며, 고작 사과 몇 개와 달걀 몇 개로 지냈다. 운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줄넘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체중계와 씨름을 하고 지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내 인생에도 생겨봤음 하는 바람을 20살인 나는 하고 있었다.
나와의 끝날 거 같지 않던 싸움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슬슬 벚꽃이 여의도에 펴 갈 때쯤, 나는 나의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매일매일의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절묘한 순간에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았다. 10킬로가 빠져서 나도 모르게 헐렁한 바지를 발견한 바로 그날, 모든 용돈을 털어 나는 게스 매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이즈 25, 인생에서 처음 만난 심장 뛰는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