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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딩턴 Sep 18. 2020

닥치고 스쿼트 1화

다이어트 딜레마  

나는 태어날 때부터 통통했다. 통통한 뽀얀 살결을 누리고 사는 대신에 항상 살과의 전쟁을 하면서 살아왔다. 일단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한답시고 다이어트라는 거는 머리에 떠올려보지도 못했다. 공부하는 데는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지론이 나의 식욕의 불을 활활 지폈고, 밤늦게까지 공부한다는 이유로 독서실 아래 편의점에서 고칼로리의 간식을  아무 죄책감 없이 선택하곤 했다. 그렇게 살들이 오동통하게 오르고 있을 때, 그 칼로리의 힘을 팍팍 얻어 대학에 붙었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살과의 전쟁에 놓여질 미래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대학 입학식 때, 패션에 한 센스 하는 엄마의 스타일링 아래 입었던 체크 반바지 수트 차림의 사진은 아직도 그날의 불편한 기억을 남긴 채 사진첩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꽃피는 3월 캠퍼스 생활을 만끽하게 된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살과의 고민을 하고 있는 과친구와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는 다이어트의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무조건 굶다시피 하며 배고픈 여정을 함께했다. 신촌에서 종로를 걸어 다니며, 지하철 몇 정거장쯤은 아주 쉽게  걸어가며 살 빼는 의지를 불태웠다. 물과 블랙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빵 중에 칼로리가 낮은 바게트 빵을 뜯어먹으며 고소하다고 계속 얘기하곤 했다. 진짜 배가 고프면 우리는 저칼로리로 허기를 금세 채울 수 있는 물냉면으로 불쌍한 영혼을 달래고 있었다. 물냉면은 무조건 평양냉면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다이어터들에게 자기 위로를 하기에 딱 좋은 식사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심심한 냉면 국물과 돌돌 말린 냉면 위에 고기 한점, 절인 무 그리고 배 한 조각이 아름답게 놓여있고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겸허한 자세로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서 바닥이 보일 때까지 그릇을 비우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먹고 걷고 하면서 내 다이어트의 시간은 아주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살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냉면과 바게트의 생활은 우리의 친구관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웃기지만 슬픈 연결고리가 되었다. 서로 날씬한 미래를 밀어주는 참된 우정이야말로 군대에서 맺어진 돈독한 전우애 못지않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이었다. 게다가 가끔  날카롭게 반응해도 서로 너그러이 받아줘야 했다. 배가 고픈 걸 참다 보면, 신경질로 승화한다는 구조를 서로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나보다 좀 더 참을성이 있었던 거 같다. 많이 예민해진 나를 다독거려주면서 목표 몸무게에 먼저 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든 급히 갈 수 없는 법이었다. 내 속도로 다이어트를 하는 길 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엄마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케트를 뜯어먹으며, 고작 사과 몇 개와 달걀 몇 개로 지냈다. 운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줄넘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체중계와 씨름을 하고 지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내 인생에도 생겨봤음 하는 바람을 20살인 나는 하고 있었다.


나와의 끝날 거 같지 않던 싸움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슬슬 벚꽃이 여의도에 펴 갈 때쯤,  나는 나의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있는 걸 느꼈다. 매일매일의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절묘한 순간에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았다.  10킬로가 빠져서 나도 모르게 헐렁한 바지를 발견한 바로 그날, 모든 용돈을 털어 나는 게스 매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이즈 25, 인생에서 처음 만난 심장 뛰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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