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주말에는 가볍게 책 들고 봄나들이 어떨까요?
봄, 떠올리면 향긋하지만, 한편으론 왠지 우울해집니다. 세상은 완연한 봄인데, 마음은 여전히 겨울. 그 냉기가 더 짙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사계절 중, 우울증이 가장 심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시기가 봄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나 홀로 냉방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 그래서 봄이면 따뜻한 글이 그리운가 봅니다. 세상에 맞춰 내 마음 덥히려고. 세 권의 온기를 선물합니다.
제목부터 이미 먹고 들어가는 책이죠? ‘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일간지에 연재했던 내용을 엮었습니다. 읽다 보면 ‘사람’이 봄이고, 희망이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에 비친 일상이 참 따뜻합니다.
“꽃을 핑계 삼아 그리운 사람을 청하는 멋을 부려보자.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과 마주하며 차를 우리면 어느 해 봄보다 향기로울 것 같다. 그리고 화살처럼 빠른 세월 속 짧은 봄날이어도 마냥 아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 p.207
"살아가면서 사람과의 좋은 인연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진정 죽어서도 잊히지 않을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늘 봄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고 싶다.” - p.171
에피소드마다 2~3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냥 펼쳐지는 대로 가볍게 눈길을 던져보세요. 누가 아나요? 어쩌면 당신 마음에 작은 봄싹이 싹틀지.
젊은 작가, 규영의 데뷔 소설입니다. 2030대라면 공감할 법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서른둘 동갑내기 여자 사람, ‘우영’과 ‘구월’입니다. 소설은 두 여자의 대화를 따라 흡입력있게 전개됩니다. ‘어쩌다' 마케터로 살고 있는 우영은 여섯 번째 퇴사를 고민하고 있고,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기간제 교사인 구월은 소개팅을 백 번이나 넘게 해놓고도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바로 우리가 맨날 하는 그 고민, 일과 사랑이죠!
"몇 살이야?"
― "세 살 위."
"뭐 하는 사람인데?”
― “엔지니어."
엔지니어 되게 많네.
구월이 소개팅한 엔지니어만 모아도 작은 회사는 차릴 듯.
- 소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중에서 -
작가의 가벼우면서도 위트 있는 문체는 우울함에 빠지지 않고 피식피식 웃게 하고, 어느새 읽는 이를 위로합니다.
오빠가 나와 영 딴판으로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며 신망을 쌓았다. 오빠가 내 여섯 번째 퇴사를 어찌 볼지 궁금했다. 오빠의 조언이라면 꾸지람이라도 들을 수 있으니.
“우영아, 내가 회사에 다니면서, 그것도 세계 곳곳에서 근무하며 절실히 깨달은 게 있는데….."
― “응, 말해봐."
“…. 우리가 결코 신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신은 회사에 다니라고 인간을 만든 것 같진 않아."
오빠는 푹 자라며 방 불을 꺼주었다. 하지만 점점 말똥말똥해졌다.
- 소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중에서 -
그렇게 조금씩 빠져들어 둘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릅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의 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야.’ 한마디 힘차게 외치고, 이어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가고 싶어집니다. 그런 소설입니다.
독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현실을 더 풍성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소설을 읽고 그 배경지를 여행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되겠죠. 저는 지금 이 글을 춘천에서 쓰고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으로 추천할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가 있는 춘천 실레마을(경춘선 김유정 역 일대)입니다. <봄봄>과 <동백꽃>은 김유정이 연희전문학교를 그만두고 내려와 야학을 할 때 그의 눈에 비췬 어려운 주민들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푼 소설입니다. 깊어진 지병과 시련의 상처를 간직한 ‘청년 김유정’의 좌절을 승화한 작품들이지요. 개인적으로 교과서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느이 집에 이런 거 없지?”라고 외치던 점순이의 당찬 한 마디, 다들 기억하시죠? 김유정의 단편집도 봄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펴들기에 좋은 선택입니다.
"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소설 <동백꽃> 중에서-
지금 밖에는 점순이가 ‘나'를 넘어뜨렸을 때, 맡았던 ‘알싸한’ 노란 동백꽃 향기로 그득합니다. 봄은 온 세상이 책인 시절입니다. 길가에 핀 잡초 꽃에서도 시를 만날 수 있지요. 돌아오는 주말에는 가볍게 책 들고 봄나들이 어떨까요?
이 중 한 권의 책이라도, 한 구절의 글귀라도 당신의 마음에 작게나마 봄 기운을 불어넣길.
다독다독 필진, 송화준(책읽는 지하철 대표 기획자)님의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