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책의 표지화와 삽화
신혜진, 2016 다독다독 기자단
이 전시회에서는 우리나라의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화가들, 삽화가들, 서예가들 등 미술의 대가들이 만든 책표지와 삽화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래 표에 있듯이 출판 예술을 하는 예술인 65명의 책 117권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사랑손님과 어머니’ 이 두 작품은 국어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작품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룰 뿐 이 책의 표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이 전시회에서 국어 교과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의 표지를 처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8)의 표지는 장정 정현웅의 작품으로 *구상계열 회화에 속합니다. *장정 ‘정현웅’은 1927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과 특선에 오르며 화단에 진출한 화가인데요. 1937년에는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신문은 물론 ‘조광,’ '여성','소년'등 잡지에 삽화와 표지화를 그렸습니다. 책 장정으로는 이광수의 <사랑>, 이효석의 <황제>, 박태원 <삼국지>, 황순원 <별과 같이 살다> 등 많은 작품의 장정을 했습니다.
*구상:20세기에 등장한 자연이나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추상미술에 대항해서 종래의 재현적 표현을 총괄하기 위해서 사용되기 시작한 개념. 기하학적인 추상미술이 형이상학적으로 순수한 형태 관념에서만 출발하고 있는 경우에 대해서, 즉 외계(外界)의 물체를 모티브로 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 물체의 형태를 재현하는 미술을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상 [具象, figurative]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장정:표지 도안을 중심으로 하는 책의 전반적인 꾸밈새. 출처:동아일보, [표정훈의 호모부커스]도서 장정(裝幀) 2016.07.25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장정 ‘조병덕’ 의 작품입니다. 구상계열 회화에 속하며 염상섭의 <취우>,선우휘의 <불꽃> 등의 작품의 장정을 했습니다. 또한, 국어교과서를 비롯하여 역사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었던 홍명희는 <임꺽정>은 장정 ‘김용준’의 작품인데요. 장정 김용준은 화가 외에도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수필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예술가입니다. 광복 전후 한국 화단을 주도하며 날카로운 비평으로 한국미술사 정립에 기여한 인물로 서양화와 수묵화에 능합니다. 전통 회화의 기풍을 계승한 많은 도서 장정 작품을 남겨 출판 장정 역사의 중요한 일부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제가 전시회를 보며 가장 주목했던 화가는 ‘김환기’입니다. 김환기는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두루 겸비한 그림을 구상, 추상을 통해 구현하는 한국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인데요. 한국 현대 문학사의 중요한 단행본, 문예지 등의 장정과 표지화를 맡았습니다. 최근에 윤동주 시인 타계 71주기를 맞아 초판본을 *복간한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윤동주 시인의 시집의 표지가 익숙해졌으리라 예상합니다. 바로 이 책의 장정을 만든 사람이 ‘김환기’입니다. 이외에도 국어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인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의 장정을 담당한 화가입니다. 전시회에서 김환기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특히, 황순원의 <곡예사>,<학>, 안수길의 <제 3인간형>의 장정은 지금도 생각날 만큼 인상 깊게 본 장정입니다.
*복간:간행을 중지하거나 폐지하고 있던 출판물을 다시 간행함.
마지막으로 북디자이너 ‘정병규’에 대해 소개하려합니다.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정병규의 작품은 한수산의 <부초>였습니다. 정병규는 ‘장정의 시대’에서 ‘북디자인 시대’로의 전환을 가르는 기준점이 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에스피엔전문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고 돌아와 1984년 2월엔 공식적으로 국내 첫 편집디자인 전문 회사인 ‘정병규 출판디자인’을 차렸는데요. ‘한국 최초의 북디자이너’라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현재는 ‘정병규 학교’를 세워 활동 중입니다.
전시회 안에는 장정 외에도 오발탄의 작가로 유명한 ‘이범선’의 학촌서실이 입구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작가의 일기장, 창작 노트, 미정리 원고, 소장 도서 등의 유품들을 통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체험 거리도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스탬프로 북마크 만들기, 장정 찍어보기 체험이었습니다. 그 위에는 포스트잇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전시와 체험을 마치고 전시회 안내 데스크로 돌아가면, 전시 관련한 퀴즈를 풀면 고판화 엽서를 공짜로 만들 수 있는데요. 새해를 맞아 악귀가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집안에 붙이는 그림인 ‘세화’를 엽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전시회를 다 본 분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는 퀴즈이기 때문에 잊지 않고, 엽서까지 만들어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근·현대의 문학작품을 읽으며 내용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해 본 경험은 있지만, 책의 표지를 감상해 본 적이 없음을 떠올렸는데요. 이 전시회를 통해 문학 자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문학과 미술의 융합이 갖는 의의를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황금의 장정 시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소개해 드린 작품 외에도 많은 장정의 향연을 볼 수 있으며,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서울삼성출판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기간 : 2016년 9월 21일~11월 30일
관람시간 : 월요일~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휴관일: 주말 및 공휴일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