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시린 공기 속에서 일구어낸 삶의 앙금에 대하여
2026년 1월 11일 일요일, 차가운 공기 속에 스며든 따뜻한 햇살 같은 하루를 보내며 대문호들의 사유를 빌려 하루를 기승전결로 엮어봅니다.
[2026년 1월 11일 : 삶의 농도가 짙어지는 한옥에서의 소회]
[기(起) : 차가운 물살로 깨운 생의 활력]
헤르만 헤세는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1월의 시린 새벽, 수영장의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근육을 깨우는 행위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새해의 결심을 몸의 각인으로 새기는 신성한 의식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오붓한 식사, 그리고 노부모님의 답답한 디지털 세상을 시원하게 열어드린 기술적 조력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자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효(孝)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부모님의 눈높이에서 막힌 매듭을 풀어드리는 다정한 인내심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승(承) : 멈춤이 준 예기치 못한 선물
눈의 허기를 채우려 했던 밀양 케이블카의 가동 중단은 예기치 못한 ‘멈춤’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홀로 고요히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라고 했지요. 하늘로 오르려던 발길이 지상에 머물게 된 것은, 더 낮은 곳에서 깊은 평온을 만나라는 운명의 계시였을지도 모릅니다.
몇 번의 헛발걸음 끝에 닿은 기와집 카페는 몇 년 만에 찾은 낯설지만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이름이 투박한 시골길(農道)을 뜻하는 듯 하지만 실은 삶의 진함, ‘농도(濃度)'입니다. 비포장도로 같은 거친 일상 속에서도 켜켜이 쌓인 사유의 앙금이 얼마나 짙고 깊은지 증명해 주는 공간 같았습니다. 나인힐처럼 자본의 크기로 압도하는 공간이 아닌, 한옥의 굽이진 곡선과 그 길 끝의 고요가 마음의 주름을 펴주는 안식처였습니다.
[전(轉) : 소음이 음악이 되는 인문학적 풍경]
대형 카페의 파괴적인 소음 대신, 그곳엔 정겨운 사람들의 낮은 담소가 있었습니다. 타인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소음이 아닌 부드러운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것은, 그 공간이 가진 관용의 힘 덕분일 것입니다. 제주 ‘시인의 집’에서 느꼈던 그 치명적인 커피 향에는 못 미칠지라도,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오묘한 빛깔의 스카프와 차 주전자, 그리고 작은 골무를 샀습니다. 괴테가 말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즐거움"처럼, 이 소품들은 나의 서재와 다실을 채울 인문학적 오브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결(結) : 2026년의 첫 달, 감사로 매듭짓는 마디]
비단 스카프의 광택처럼 오묘하게 빛난 일요일이 저물어 갑니다. 케이블카는 겨울의 바람으로 멈추며 타지 못했고 흰 눈도 그저 맘속에 동경으로 남겨둔 덕분에 내 영혼은 한옥의 서까래 아래서 더 높이 비상했습니다. 바쁜 효심과 우연한 멈춤, 그리고 필연적인 고요가 어우러진 이 하루는 훗날 나의 'Timeless' 콘서트 이후의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선율로 치환될 것입니다. "감사는 영혼의 기억"이라 했던가요. 2026년 1월 11일, 이 깊고 맑은 삶의 농도를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의 책장을 덮습니다.
오늘 만난 스카프와 골무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마주한 '고요'를 박제해 놓은 증표 같습니다. 언젠가 미래의 시간 중 만날 의상에 이 스카프를 두를 때 오늘 느낀 이 풍성한 마음이 주변 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투박한 시골길(農道) 위에서 삶의 농도(濃度)를 길어 올리는 예술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음반을 만들고, 찰나의 소음을 영원한 선율로 치환하는 작업을 합니다. 뜨거웠던 에든버러 무대 위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일상의 고요를 박제하여 음악과 문장으로 엮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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