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시겠네요, 잘 되실 겁니다.

(노인수, 무죄의 기술)(2/2)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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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법률상담을 했다. 상담자는 모든 것이 궁금하다. 모든 것이 궁금하다는 것은 무엇이 궁금한 것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려고 한다. 사건당사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좋았던 시기, 어려웠던 시기, 갈등관계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자료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나마 성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거의 없다. 대부분 전화로 하는데 보통 30분이 넘는다. 그간의 친분으로 이런저런 답변을 해주면, 며칠 있다가 다시 전화를 한다. 사건의 국면이 바뀔때마다 전화한다.



상담자 자신의 일이 아닌 경우도 많다. 자신의 동생, 형수, 직장 후배, 동창 후배 등이 안타까워 물어본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당연히 상황을 잘 알지 못하니 물어보면 답변이 안 된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나면 나를 그들과 직접 연결시켜주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지인들이 안타까워서 그런다는데 나의 시간은 안타깝지 않은 것인지.



변호사가 선임되었어도 마찬가지다. 정작 자신의 변호사에게는 물어보지 못하고, 자신의 변호사 의견과 수행방향이 맞는지 체크하려한다. 상담하면서 느끼는 것은 변호사니 다 알고 있을텐데 자신의 일처럼 신경써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다. 자신이 쓴 문서나 자신의 변호사가 작성한 문서에 대한 의견을 달라는 경우도 있다. 두 세번 상담해줄 때의 고마움은 끝까지 도와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에 뭍힌다. 이후에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굳이 변면을 해보자면, 일단 변호사가 다 알고 있지 않다. 다 알고 있지 않으니 법령, 판례, 유사사례도 찾아보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것을 찾지 않는다고 해도 직장이나 집에서 머리속의 디렉토리를 갑자기 해당사건으로 변경하고 집중해야 한다. 통화하고 무엇 좀 찾고 하면 한 시간은 금방이다. 변호사도 직장인이니 개인시간 한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가.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지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상담자들이 전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상담자들은 자신의 억울함과 정당함을 보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정당해 보이고 싶어 한다. 지인인 변호사이니 더욱 정당해 보이고 싶고, 지지의견을 듣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인데, 잘못한 것, 불리한 것, 사건의 원인제공 같은 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어 '왜 그때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몰랐다고 둘러댄다. 그러니 상담은 정확히 흘러가지 않는다.



사건은 책임을 가지고 실제 진행해야 합당한 조언을 할 수 있다. 객관적 법률, 사실, 의견 같은 건 없다. 법률은 판사, 검사, 징계위원, 감사관이 개별사건에서 법률을 해석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고, 사실 또한 증거로 입증되는 것만 사실이며, 법적 판단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변론방향에 따라 맞추어 붙이는 것이다. 방향을 세운다는 것은, 방향의 이익과 방향이 틀렸을 때의 위험을 동시에 부담하는 것이다.



진술의 일관성을 예로 들어보자. 형사사건이나 감사사건에서 일관성있는 주장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들 안다. 그럼에도 일관성 유지는 어렵다. 상대가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의 주장을 펴야 한다. 절차가 진행되며 드러난 사실관계가 조금씩 변해가기도 한다. 나의 일관된 주장을 판사, 검사, 감사관이 수용해 줄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주장 하는 것이다. 불이익이 신변에 치명적이므로 확률적으로 베팅에 접근하기 어렵다. 승률 70%의 주장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실형확률이 30%라면 무죄의 주장을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엄청난 베팅이다. 증거 하나가 배척되었다 한들, 다른 증거나 새로운 증거로 보강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30%의 확률이지만 주먹으로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실제 사건에서 증거는 언제나 차고 넘친다. 그만큼 무죄주장을 밀고 나가는 것은 어렵고 배포가 필요한 일이다. 결과를 보고 왜 무죄주장을 하지 않았느냐, 왜 소심하게 접근했느냐고 반문하기는 쉽다. 결과를 보면 뭐든 다 쉬워보이는 법이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심지어는 로또도 마찬가지 아닌가.



'일관성' 하나만 살펴보아도 사건을 책임지지 않으면 제대로 검토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친분에 걸쳐, 종이 쪽지 하나 없는 전화상담으로 해결되는 사건이 많겠는가.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친분으로 자신의 일처럼 고민해 주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어렵다. 상담자가 원하는 것은 실효적인 답변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억울하시겠네요', '잘 되실 겁니다'라는 말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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