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도 가벼운 무료 법률상담

by 고길동


나는 변호사 자격이 있다.


변호사인 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법적인 문제라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직장동료들, 친구들, 대학선후배, 지인의 지인 문제까지 범위와 대상은 무한확장된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무료다. 그동안 경험을 돌아보면 집중하며 상담을 해주었지만 뒷맛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지만, 보람도 적고,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나의 조언을 무료신문처럼 힐끗 본다.


가장 큰 이유는 무료이기 때문이다. 무료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 말의 가치도 광고성 블로그나 카페 게시글처럼 본다. 무료이기 때문에 질문의 양에 끝이 없다. 더 질문해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정말 아무런 부담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궁금한지 정리해 오는 사람은 없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생각해본 사람도 더더욱 없다. 얼굴보고 물어보기 위해 시간 내 찾아온다면 훌륭한 경우다. 그저 전화로 카톡으로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짧게도 끝나지 않고, 한 통화로 끝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료라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고민이나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수십 년 전에 몇 과목 시험을 보고, 사법연수원에서 판결문, 결정문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해서 세상일 모두를 알 수 있겠는가. 당연히 알 수 없다. 법령과 판례는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니 다시 찾아봐야 한다. 그들은 내가 뚝딱 알아내거나, 자신의 일처럼 몇 시간 매달려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시간이 모자라 야근을 하고,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들은 나의 시간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수시로 전화하고, 가정의 가정적 판단까지 계속 질문한다. 스스로 고민하기 싫으니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나열한 후에 자기가 듣기를 원하는 답을 기다린다. 그들은 생각을 주문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창조적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법령은 그저 있고, 판례는 존재하기 때문에 변호사는 이를 찾기만 하면 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나의 창조적 사고는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법적 구성이야 말로 가장 창조적인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법이 있고 여기에 논리를 붙이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다. 논리가 있고 거기에 법과 사실을 가져다 붙이는 것이다. 법적 조언을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사안에 대한 통찰력과 역학관계를 분석한 후 논리를 구성해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작은 부분에서만 열심히 싸우고 ‘어쩔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안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조언을 받는다기 보다는 나의 조언을 검증하려 한다.


변호사를 선임한 생태인데도 그들은 전화해서 묻는다. 이른바 크로스체크한다. 선임한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지불했음에도 자세히 물어보지 못한다. 조언을 받는 그들은 스스로를 심판자로 임명하고 선임한 변호사와 나의 견해를 저울질하고 품평한다. ‘우리 변호사가 틀렸네', '거봐 내 말이 맞지',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우리 변호사는 아니라던데.’ 스스로 중계석에 앉는다. 거기에 그들의 의견은 없다. 자신에게 불리한 조언이 나오면 극구 부인하며 서운해한다. 그들은 나의 조언이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저 불안한 마음을 달랠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조언을 구하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이나 자신의 치부는 말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나쁜 행동은 추측을 더해 과장하여 얘기하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축소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조건하나가 바뀌면 모든 조언이 무의미해지는데도 그들은 불리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것때문에 전체적인 구도가 바뀌고 난 후에야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 몰랐다고 말한다.


그들과 성공적인 상담을 마치면, 어색한 관계가 되는 경우가 있다.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 대한 상담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성범죄 피해자와 같은 민감한 상담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의 힘들었던 기억이 모두에게서 잊혀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때의 사람을 만나 아픔을 다시 떠올리기 싫을 것이다. 아무리 다짐해도 예전처럼 밝은 얼굴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해는 되지만, 성심껏 상담 후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어색한 관계 뿐이다.


그들은 상담한 사건의 결과를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묻기 전에 알려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전화를 많이하고, 오래하고, 의견서를 써주고 해도, 나의 의견과 문장은 그저 참고자료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무료였으니까. 그저 어려운 파도를 헤쳐나가는데 참고용 나침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나를 스쳐 떠나간다. 당연히 사건이 모두 끝나고 고맙다고 전화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법률상담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비슷한 생각이 든다. '다시 하지말자'


그런데 세상살이에서 그렇게 매몰차게 사는 게 또 쉽지 않다. 최소한 찾아오는 정도의 수고를 지불하는 사람과 상담하고 싶다.


https://blog.naver.com/pyowa/222095686102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에게는 거짓을 말할 법적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