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은 돌고돌아 결국 나에게 온다.

(감사에서 살아남기)(51)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3094255905




<민원은 돌고돌아 결국 나에게 온다.>



공공기관에 도착한 전화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담당자를 찾아다닌다. 이 사무실에서 저 사무실로 어슬렁거리고, 여기 담당자에서 저기 담당자로 기웃거린다. 그렇게 전화는 돌고 돈다. 돌아다니는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민원인은 부서가 바뀔 때마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민원내용을 말한다.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전화는 해저2만리의 잠수함처럼 여기저기를 미끄러져 다닌다.



자영업자의 세계에선 전화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자영업자는 제발 전화해달라고 광고하고, 핸드폰 번호를 큰 글씨로 띄우고, 어떤 업무건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전화는 공공의 세계에서 자주 갈길을 잃고 배회한다. 왜 그런가. 자영업자에게 전화는 수입이만, 공공의 세계에선 민원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는 부서별로 업무가 나뉘어 있고 책임도 분장되어 있다. 공공기관의 업무라면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민원이 소관부처 업무임이 명백한데도 어떻게 배회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누구의 업무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원인의 민원에 딱 맞는 부서는 애시당초 없다. 부서별로 조금씩 업무가 걸쳐져 있을 수 있고, 다른 기관의 업무인 경우도 있다. 업무가 겹쳐 있다거나, 다른 기관 업무라고 알려주면 될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업무가 겹쳐 있다거나 업무를 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 답변마저도 답변자에게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깊이 생각할 시간도 그다지 많지 않다. 담당자들은 의외로 바쁘다. 출근하면 그날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 상사는 기다리고 독촉한다. 우리부서 업무인지 아닌지도 모를 그런 민원전화를 갑자기 받고 깊이 고민하며 처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결단도 만만치 않다.



업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한다. 누구의 업무도 아닌 민원이나, 걸쳐진 업무를 처리하겠다는 결단이 서도 상급자나 동료의 공감을 얻기는 쉬운 것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업무란 한번 처리했던 관례를 쌓으면 길이 트이고 업무의 관성으로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서로 미룬 업무란 것은 대부분 성과는 적고 책임은 큰 경우가 많다. 나의 후임자에게도 원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화를 돌리는 것은 민원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공무원도 다른 부서나 다른 기관에 전화를 걸면 거의 대부분 전화는 돌려진다. 내가 담당자를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누구의 업무도 아닌 경우가 있고, 무엇보다 누구의 업무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전화가 돌려지는 것은 변수가 아니다.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기라 했던가. 업무담당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기는 어렵더라도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짜증을 낼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자포자기로 끝낼 수는 없는 법. 업무담당자를 좀 더 빨리 찾는 비법을 써 본다. 법령을 알고 있다면, 법령위에 있는 담당자 전화번호에 전화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 사람이 담당자가 아닐 가능성도 많지만, 법안을 입안한 자리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므로 어느부서의 업무인지는 알고 있다. 구체적인 업무담당자를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법령이 있으면 담당부서와 담당자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론 행정기관 홈페이지에서 조직도를 보는 것이다. 행정기관 홈페이지에는 조직도와 부서업무, 담당자 이름, 직책, 전화번호, 담당업무가 모두 써 있다.(국방부, 방위사업청, 금융위원회처럼 담당자 이름과 전화번호가 비공개인 부처도 있다.) 전화번호 누르고 전화하면 된다. 민원을 친절하게 듣다가 자신의 업무가 아니면 얼른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려줄 것이다. 조직도에서도 찾기 어려우면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 사람이나 업무분장에 ‘총괄’, 또는 ‘서무’라고 기재된 사람에게 전화하면 된다. 아니면 뒷자리가 1로 끝나는 사람이 총괄인 경우도 있으니 뒷자리 1번으로 전화하면 된다. 총괄담당은 담당자 알려주거나, 누구에게도 돌리지 못하면 스스로 답변할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민원실이나 대표번호로 전화하면 된다. 공공기관 민원실은 민원을 해결하기보다는 민원을 접수해서 배분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원이 어느 과에 해당하는지는 누구보다도 전문가다. 업무분장을 정확히 알진 못해도 최소한 이전에 누가 답변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장 정확한 것은 국민신문고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 국민신문고 민원은 치열한 업무분장의 논의를 거쳐 결단코 담당자를 찾아간다.



전화를 더이상 돌리지 않거나, 인터넷으로 접수된 민원이 바로 답변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업무분장은 가장 고도의 업무능력이며 그것을 구분해 내는 능력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원은 돌고돌아 결국 나에게 온다. 투덜거린다고 누가 대신해주진 않는다. 사건화가 되지 않았다고 방심하지 말자. 민원은 어떻게 얼마만큼 자랄지 모른다. 예리하게 판단하자. 내 업무가 아니라면 감사받는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다 떠안진 말자. 겨우 한 다리 걸쳐져 있는 업무인데, 전체를 떠안고 민원대응하다 감사받는 일은 피하자.




2449BF3F55E5570937.jpg


이전 21화행정의 ‘보이지 않는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