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서 살아남기)(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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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를 멜 수밖에 없다면, 나눠 매자.>
아무리 생각해도 내 민원이 아닌데도 배정되는 경우가 있다. 바빠 죽겠는데, 내 일도 아닌데, 민원은 드셀 것이 뻔한데, 전화만 한 시간은 받아야할 터인데 맡아서 하라고 한다. ‘아-’ 하고 탄식이 난다.
업무분장표를 꺼내어보지만, 업무분장표야 사실상 기준을 제시하는 것뿐이니 윗분들이 정리하면 업무분장은 그걸로 끝난다. 민원담당자 재지정은 사실상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분장은 딱딱하게 굳어져 담당자는 고정된다.
‘민원인이 담당과를 제대로 지목했다면, 과장님이 잘 싸워줬더라면, 전임자가 쓸데없는 오지랖만 부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라고 투덜거려봤자 달라질 건 없다. 울고 있다고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다. 정신 차리고 담당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민원이 빙글빙글 돌다 배정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업무가 걸쳐져 있다는 얘기다. 걸쳐져 있지 않으면 애시당초 민원배정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쉬운 업무가 아니라는 얘기다. 쉬운 업무라면 굳이 얼굴 붉혀가며 업무분장 토의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성과가 나는 업무가 아니라는 얘기다. 성과가 나는, 생색이 나는 업무라면 어려워도, 얼른 나서서 민원을 처리할 것이다. 어렵고, 성과가 나지 않는 업무는 민원인이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민원은 더 강한 민원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한 번 좌표로 찍힌 담당자는 유사 민원이 있을 때 반복해서 배당될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디테일만으로도 상당부분 되치기 할 수 있다. 업무분장의 승리자들이 안도하고 있을 때가 오히려 기회다. 총대를 멜 수밖에 없다면, 총대를 나눠 메자.
하나의 문장이지만 여러 가지를 질문하는 경우 여러 문장으로 나누어 답변하자. 나눠진 질문마나 담당부서를 정해서 배분한 후 취합하자. 간단한 것이더라도 직접 쓰지 말자. 회신서에 답변별로 담당부서와 담당자를 특정하자. 담당자가 특정되고, 이름이 선명히 드러나면 회신하는 사람도 조금 더 신중히 작성하고, 상급자의 검토도 받아서 제출하려 할 것이다. 민원인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기재된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할 것이다. 업무담당자 기재 순서도 신경써가며 작성하자. 민원인은 제일 먼저 써 있는 사람에게 전화할테니까. 총대를 조금이라도 나눠 메자.
총대를 나눠 멨지만, 여전히 회신해야할 부분은 남는다. 다른 부처 담당자를 찾자. 담당자가 없으면 소관부처 업무 매뉴얼이라도 찾자. 먼저 해당부처 조직도를 열어 담당자를 찾아보자. 찾기가 어려우면, 해당부처 업무 매뉴얼을 찾자. 홈페이지에도 있고, 구글 검색으로도 금방 찾을 수 있다. 매뉴얼에 적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자. 가까우면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의 의견은 부서장을 설득할 때도 유용하고, 민원인에게 근거를 제시할 때도 든든하다. 그렇게 총대를 나눠 메자. 공문으로 회신이 오면 좋고, 전화로 들은 내용이라면 들은 내용을 내부결재 공문으로 만들어 놓아도 좋다. 그들과 총대를 나눠 메자.
지원부서와도 나눠 멜 수 있는 부분은 나눠 메자. 개별 훈령에 규정된 위원회가 있으면 자문위원회이건, 심의위원회이건, 자문 변호사이건 안건으로 올려보자. 법무검토 의뢰를 할 수도 있고, 적극행정심의위원회, 사전컨설팅도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궁금한 건 아니지만, 그들의 회신은 큰 힘이 된다.
민원담당자의 의견은 더 이상 그의 판단이 아니다. 민원담당자의 의견은 다른 부서, 다른 부처, 다른 유권해석, 다른 매뉴얼, 다른 위원회의 의견을 종합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총대를 나눠 메지 않았는가.
누가 물어보면 모두 대답하지 말자. 이미 총대는 나눠 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