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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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복음 6:20)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오 복음 5:3)
15년 전 거여동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가난'에 대한 강론을 들었었다. 귀에 익숙한 마태오 복음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루카 복음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하셨다. 마태오 복음은 뒤에 쓰였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부자들에게 강론하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윽고 '마음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었을 것이다.
모두 굶던 시대에 부를 꼭 쥐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부자들을 축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이다.
부자들도 불안하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자신의 부가 언제 사그러질 지 모른다. 꼭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흐름을 쫓아야 한다. 투자하고, 헷지해야한다. 하루가 모자란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행복하지만, 그들도 가난한 사람들만큼이나 바쁘다.
광고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살면서 항상 욕망속에 살았는데, 돌아보니 무슨 욕망이었는지 생각조차 안 난다. 욕망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 때문에 언제나 여유가 없었다는 것만이 기억이다. 게으른 시간은 있었지만, 여유와 휴식은 없었다.
여유와 휴식은 지금 필요하다. 부를 쌓기위해, 살아남기 위해 많은 걸 뒤로 미뤄두었었다. 미뤄두었던 그것들은 사라져버렸거나, 쓸모없게 되었다. 무언가 포기해야 여유와 휴식이 생긴다. 여유와 휴식이 없었다. 그저 게을렀을 뿐이다.
게으름은 휴식과는 상관없는, 오히려 휴식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선행 조건이다. 게으르게 행동하지 말 것이며, 조리 없이 대화하지 말 것이며, 그대의 삶이 여가 시간 없이 너무 바쁘지 않도록 하라.
(자발적 가난, 에른스트 슈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