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의 청렴 메세지, 청렴문자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2692212369


어쩌다 청렴메세지를 쓰게 되었다. 한 달 한 달 쓰다보니 벌써 21개를 썼다.

쓸때마다 어떤 메세지를 쓸까 머리속을 뒤적거렸다.


마감이 가까워지면 펜을 들었고, 문자메세지라는 틀에 맞게 써냈다. 부담스러우면서 재밌는 일이다.

내용이 미리 있지 않은데도 틀을 맞추다보면 내용이 둥실 떠오른다. 그 순간이 신기하다.


메세지를 추가로 썼다. 잊혀지기전에 써 놓는다. 언젠가 다시 읽으면 이때의 신기한 순간과 기쁨이 떠오를 것이다. 메세지가 쌓일때마다 이 글에 덧대가며 기록할 것이다.


쓰다보면 쌓일 것이고, 어떻게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 묶어보고 싶다.



<22.3월>

스스로 부패라고 생각되는 행동은 항상 불공정입니다.

스스로만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보통은 불공정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도 공정해야 비로소 공정입니다.


공정은 불확정개념이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공정의 개념은 계속 변화한다.

공정은 오히려 누가 정의하느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공정은 누가 정의해야 마땅한가. 진정 무엇이 공정인가. 공정에 대한 연역적 정의가 가능한가.


공정의 연역적 정의는 불가능하다. 공정은 귀납적으로 찾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공정한 것보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공정한지 여부가 더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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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월>


지상에 천국을 만들려는 자들은 자신의 천국과 다른 천국을 말하는 사람을 악마라고 말합니다.


나만의 공정을 말하는 자들은 다른 공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만의 공정을 관철하며 불공정을 쌓아갑니다.

나만의 공정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

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공직생활을 하다보면 확신범에 가까운 비위자들을 자주 본다.

확신범에 가까운 상관을 만나 업무를 수행하다 문책받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확신이 열린 사회의 가장 큰 적이다.

확신은 닫힌 사회를 만들고, 닫힌 사회는 절대권력을 만든다.

모두 알다시피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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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월>


새해 첫 날은 왠지 설레입니다.

달라질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지요.


업무에 큰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평범한 곳에서, 반복되는 곳에서, 작은 변화는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는 하나하나 모이고 쌓여 발전이 됩니다.


그만큼 업무에 설레일 것입니다.

그만큼 더 공정하고, 더 청렴한 행정이 될 것입니다.


어릴 때 한 살을 더 먹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다.

아홉 살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열 살이 할 수 있는 게 달랐다.

고3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게 달랐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그때가 되면 설레임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완연한 중년이 된 지금에도 새해가 되면 나는 약간 설레인다.

나에게 아직까지 달라질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언가를 경험하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중년의 새해는 어릴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짝살짝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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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2월>


12월입니다.

2021년 청렴하셨나요?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셨나요?


여러분 모두 청렴하셨고, 공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청렴하고 공정한 ○○부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완벽한 청렴과 티끌없는 공정이 쉽겠는가. 당연히 어렵다.

완벽한 청렴과 티끌없는 공정이 있겠는가. 현실에서 그런 건 없다.

쉽게 만지고 이룰 수 있으면 소중하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청렴과 공정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루기 어려워 소중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청렴하려고, 공정하려고 노력했다.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처럼 조금씩, 가끔씩 흔들리면서 방향을 잡아왔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지금에 돌아보니, 마침내 우리는 청렴과 공정에 도착했다.


모두 축하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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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1월>


부패는 겁주며 갑자기 다가오지 않습니다.

다들 그렇다며, 아무일 아니라며 달콤하게 곁에 옵니다.


감사, 징계, 수사, 재판 업무를 오래했다. 사실 이것이 직업이었으니, 직장경험은 이게 다다.


부패한 사람은 처벌의 위험을 무릎쓴 용감한 사람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부패한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부패에 젖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부패를 자신의 기준으로 합리화시켜 공정으로 둔갑시킨다.

다들 그렇다며, 나는 그보다 낫다며 자신의 비위를 일반회시킨다.

완벽히 젖으면 젖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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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월>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유장경의 시 ‘별엄사원’에 나오는 말입니다.

細雨濕衣看不見(세우습의간불견)


시인은 젊은 시절 진사가 되어 백성을 위한 강직한 삶을 살고자 다짐했지만,

돌아보니, 관행에 젖어든 늙은 관료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눈을 번쩍 뜨고 있었지만, 어느새 젖어버린 축축한 소매를 느끼게 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누구나 아는 속담이다. 출처인 '별엄사원'을 읽으면 속담이 완전히 달리 다가온다.


'세우습의간불견細雨濕衣看不見'이란 말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을 통해 들었다.

유장경의 별엄사원을 찾아보았다. '看不見'이 보였다. 정신이 번쩍났다.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노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보지 못하고 젖어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다짐한다고 한들 아차하면 나도 젖어들 것이다.

이미 젖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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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월>


어렵고, 번드르르한 문장을 봅니다.

내용을 가만히 보면 스스로 판단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문장을 정리해보면 간단합니다.

'모르겠고, 난 중립이야'

'난 판단 안 해, 난 취합이거든'


우리는 이걸 '소극행정'이라 부릅니다.



주어가 없는 문장들이 많다. 공무원의 보고서에는 더 많다.


소통이라고 하면서 의견을 주워모을 뿐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으니 책임질 일은 없다.


의견을 낸 사람은 의견을 낸 사람대로 의견을 냈을 뿐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국가가 잘못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공무원은 알고 있다.

공은 조직의 몫이지만, 책임은 개인에게 떨어진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품평만 한다. 소극행정을 번드르르한 문장으로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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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월>


춘장과 면만 있으면 짜장면이 될까요?

그렇다면 요리사는 필요 없겠죠.


누구 편도 들지 않고 중간에 서 있으면 공정일까요?

그렇다면 공무원이 필요 없겠죠.


국가, 행정, 조직 모두 관념의 산물이다.

행정을 시스템화해야한다고 말하지만 다 헛말이다.


행정은 결국 공무원의 움직임이다. 움직임은 방향성이다.

방향성 없는 움직임은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갈피가 없는 것이다.


중간에서 공정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다 헛말이다.

그건 방향성이 없는 행정, 갈피가 없는 행정이다.

가장 불공정한 말이란 중간에서 공정을 유지하겠다는 말이다.


그건 나는 빠지겠다는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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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월>


뜨거운 여름입니다. 기다리면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겠지요.


청렴과 공정은 어떨까요.

가만히만 있어서는 절대 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한다고 방향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변하는 것이 방향성을 가지려면 힘이 가해져야 한다. 의지가 반영되어야 한다.


계절도 그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이 반복되는 것도 힘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그저 우리가 당연히 여겨 절로 변한다고 느낄 뿐이다.


청렴과 공정도 변한다. 끊임없이 변한다.

심지어 끊임없이 요구되고, 강제되어 힘이 작용한다. 그래서 방향성이 생긴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하는 청렴과 공정은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의 청렴과 공정은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만, 쏟아져 내려오는 물살로 뒤로 밀려가기 일쑤다.


우리가 원하는 청렴과 공정은, 다가가면 저만치, 아니 그보다 더 멀어진다. 무지개다.

무지개처럼 만질 순 없지만, 등대처럼 방향을 보여준다. 해류에 이리저리 밀릴때에 내가 있어야만 하는 자리를 정확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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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월>


색도, 향기도, 공정도 감각입니다.

예민한 만큼, 딱 그만큼만 느낄 수 있습니다.


색은 보고, 향기는 맡고, 소리는 듣는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여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림, 향수, 음악은 모두 거기서 거기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안다. 그렇지 않다.


자주 접하고, 공부하고, 직접 해볼수록 우리의 감각은 민감해진다.

같은 그림을 보고, 같은 음악을 들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각이 다르다. 딱 그만큼만 느낄 수 있다.


왜 그럴까?

대상을 사람마다 달리 느끼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존재를 갖는다.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색이며,

향기를 맡는 것이 아니라, 맡는 것이 향기이고,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려보고, 음악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작은 감각의 차가 얼마나 큰 성취와 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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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월>


끊임없이 훈련합니다.

훈련된 선수는 자신도 모르게 반응합니다.

몸에 베어 있는 것만큼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공무원의 몸에 베어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가요?


공정입니다.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생각이 포기해도 몸이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몸에 베어야 한다. 무엇이건 훈련하면 습관이 된다.

생각이 포기하는 그 순간, 무의식의 순간에도, 몸에 벤 대로 반응하게 된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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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월>


벚꽃이 가득 피고, 목련이 크게 매달렸습니다.

출근길에 시선이 잠깐 멈춥니다.

'아! 봄이구나'


항상 그 자리인데 꽃 필 때만 잠깐 보게 됩니다.

괜히 미안해집니다.


부패뉴스가 크게 날 때에야 청렴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언제나 같은 길로 출근한다.


길 옆에는 언제나 같은 나무가 서 있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은 푸르르며, 가을에 낙엽이 지고, 앙상하게 겨울을 난다.


매년 봄. 그 나무의 꽃을 본다. 벚꽃나무구나. 벚꽃이 흩날리니 봄이 가는구나. 그렇게 감상에 젖는다.

꽃이 날리면 그 뿐. 내년에 꽃필 때까지 벚꽃나무인지 잊는다. 그때부턴 그저 나무일 뿐이다.


읽고, 생각하고, 쓰지 않으면, 모든 것은 너무 쉽사리 잊혀진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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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월>


출근길에 아차 하는 순간 봄이 되었습니다.

바람의 냄새도, 나뭇가지 색감도 순간 바뀌었습니다.

익숙했던 외투, 장갑도 순간 어색한 차림이 되었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선은

어느 순간 관례와 부조리를 낯설게 만듭니다.

든든한 보훈이 우리 곁에 와 있는 순간입니다.


어릴 때 무궁화가 피고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어둑어둑해지면 무궁화는 꽃을 오므린다. 천천히 그리고 순식간에 오므린다. 나는 몇 번이고 마당에 앉아서 꽃이 오므려드는 순간을 보려고 했다. 번번히 실패했다. 무궁화가 나와 신경전을 하듯이, 잠깐 다른 생각하는 그 순간에 꽃잎을 오므렸다.


변화를 인식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알아채는 그 순간, 번개같은 아차하는 순간으로 느껴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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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월>


새해 첫날 계획이 기억나세요?

저는 실패한 계획, 시작도 못한 목표가 생각납니다.

무엇보다 금세 게을러진 일상이 민망합니다.

제 자리에서 한 발짝도 못나갔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누가나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추스르고, 또 다시 결심하고, 출발하면 됩니다.


그런데 기본이 무너지면 다시 출발 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의 기본이 무너지면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실패는 나의 힘.


돌아보니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삶의 기단이자 동력이었다. 중년의 단단함은 실패의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넘어졌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그렇듯, 일어나면 된다. 누구나 실패하고 주저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희망이다.


그렇더라도 너무 크게 실패하진 말자.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극빈은 죄이듯이,

실패가 과정이지만, 커다란 실패는 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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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월>


출발선 뒤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충성이 울리자 뛰어 나갑니다.

다짐은 모두 같습니다. 스포츠 정신, 페어플레이죠.


같은 출발이지만, 모두가 결승선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기권, 반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퇴장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불이익에 더하여 경기 자체를 흐트립니다.


1월입니다.

2021년이라는 경기를 향해 달려나가는 달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인생은 그저 달릴 뿐이다.


출발선도 다르고, 도착하는 곳도 다르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불평한 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시간에 달려야 한다. 먼저 출발해도 뒤쳐질 수 있고, 역전해도 다시 역전당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나에게 희망이되고, 긴장감을 준다.


넘어져도 얼른 일어나 다시 달려야 한다. 돌아보며 안타까워할뿐 누구도 일으켜 세워주진 않는다. 서운해하지도, 투덜거리지도 말자. 너도 그럴 것이니까. 삶은 그저 달릴 뿐이다.


달리면 무엇을 얻을 수 있냐고 묻지 말자.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허망함보다, 순간순간의 삶을 느끼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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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시간은 흘러갈뿐 경계가 없습니다.

12월은 시간의 경계를 만들고 그 덕에 한 해를 돌아봅니다.


올 한 해 선물이나 접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렴하고 공정했다고 스스로 안위합니다.


질문을 바꿔,

한 해 동안 ‘부조리’는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책임을 피하려고,

민원을 안 만들려고,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부조리’ 한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 묻습니다.


시간은 경계가 없이 흐를 뿐인데,

12월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1월이 되면 한 해를 계획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는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자신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합리화한다.


나는 한 해동안 부조리한 적은 없는가. 부조리를 알면서도 그저 합리화에 급급하지 않았나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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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빛깔은 여러 색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음악은 여러 소리가 조화를 이룹니다.


빛깔과 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고,

열심히 하여도 소음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청렴, 부패, 공정, 부조리를 구분해내지 못하면, 열심히 하여도, 의미있는 행정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하나고, 한 점이겠지만,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여러 각도를 대상을 인식해야 비로서 온전히 인식할 수 있다.


그저 한 때를 살았을 뿐인데도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모든 걸을 아는 척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저 한 면을 보았을 뿐인데도 내가 직접 봐서 다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살지 않았던 시절, 내가 살지 않을 시절, 내가 보지 못한 옆, 뒤, 위, 아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열심히만 하는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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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못된 사람이 갑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잘 돼라’는 조언이라고 생각하는 중에 발생합니다.

문제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사람이 청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청탁을 들어주는 순간 부패한 사람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부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풍선에 바람을 불고 또 불면 결국 터지듯이,

부서원은 참고 참다가 결국 한계에 다다르고,

부패는 쌓이고 쌓이다 곪게 되고, 곪으면 결국 터지게 됩니다.


모든 것에는 임계점이 있다.

물은 100도가 되기 전에 끊지 않는다.

풍선은 터질때까지, 그때까지만 버텨가며 커진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조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한다. 그때 우리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안위한다. 악마는 뿔이 달려 있지 않다. 악마는 평범하다. 무엇보다 악마는 스스로 천사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생각하고, 세심하게 바라보면 알 수 있다. 물도 끊기 전이지만 기포가 올라와 김이 나온다. 풍선은 점점 커지며 압력이 높아진다.


천사도 생각이 없으면, 악마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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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청소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지기 전에 틈틈이 해야 하는 것이죠.

청소를 하게되면 필요한 것만 남게됩니다.


청렴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관행에 젖기 전에 수시로 돌아봐야 하는 것이죠.


청렴하면, 불필요한, 부조리한 일이 사라지고,

국민과 국가를 위한 공무만 남게 됩니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제 자리에 남겨 놓는 것이다.


스님들이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도

번민을 없애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다.


청소도, 수행도 한 번에 끝낼 수 없다.

살다보면 불필요한 것이 계속 쌓여나가고,

본질적이었던 것도 필요없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번민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새롭게 계속되고,

진리도 깨달았으면 버려야 한다.


필요 없는데 부여 잡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필요 없는데 필요하다고 합리화시키는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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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짝거리지 않습니다.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우리 곁에 있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상쾌한 공기, 맑은 물, 따뜻한 가족이 그렇습니다.

청렴이 그렇습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은 인식하기 어렵다.

기본적인 것은 사라졌을 때 비로서 뼈저리게 알 수 있다.


무엇이 기본적인 것인가.

사라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생각해보면 된다.

생각해보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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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어둠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는 상태입이다.

부패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청렴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둠은 어둠으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부패는 처벌만으로 없앨 수 없습니다.


공무원의 '청렴과 공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무언가를 지적하기는 쉽다.

능동태보다 수동태 문장이 더 쓰기 쉽다.

적극적인 결정보다 소극적인 판단이 더 쉽다.

해야될 이유보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 더 쉽다.


왜 그런가?


긍정적, 적극적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확신 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결단을 해야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얘기다.


중심이 맞지 않는 양팔저울처럼,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로 부정적, 소극적으로 생각하기 쉽다.

생각과 고민의 추를 긍정과 적극쪽에 추가로 달아놓아야 한다.


이제 스스로 실험 하나를 하자. 아내와 남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바뀌었으면 하는 열 가지와 좋은 점 열 가지를 말해보자.

어떤 것이 더 쉬운가. 결과는 스스로 알 것이다.


부정적, 소극적인 생각, 태도, 행동보다는 긍정적, 적극적인 생각, 태도, 행동으로 살자.

아내에게건, 회사에서건, 투자의 세계에서건 긍정적,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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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청렴의 기준은, 청렴의 물살은 언제나 높아져만 왔습니다.

공직자의 청렴은 상류로 올라가는 연어와 같아서

헤엄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고 나아가지 않으면 떠내려가게 됩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안위해서는 안 됩니다.


학문은 물을 거슬러 가는 배와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떠내려간다.

(學問 如逆水行舟 不進則退)

출처가 '논어'인줄 알았는데, 논어에는 없는 말이라고 한다.

청나라 '좌종당'의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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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작은 부패에는 젖어들기 쉽습니다. 쌓이면 스스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청렴하지 않으면 출중한 능력을 허튼 곳에 사용하게 됩니다.

공직자가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 신조 중의 하나가 있다.

Hard working is nothing.

천하에 쓸 데 없는게, 열심히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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