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하늘을 제일 먼저 그린다.

(인상주의,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by 고길동

나는 대학때부터 도판 보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하다 잡생각이 나면 도판을 보러갔다. 3층 열람실로 올라가 커다란 도판을 한 장씩 넘겨가며 봤다. 서양화보다는 한국화를 주로봤다. 최순우 전집을 한 권씩 읽어나가며 감탄했었다.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무작정 화방에 가서 스케치북과 스케치용 연필들은 잔뜩샀다. 공부하다 잡생각이 나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지난 기억을 주로 그렸는데 다시 한 번 그 순간을 살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게 좋았다.


서양 그림은 서른이 넘어서부터 도판을 보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잘은 모른다. 그렇더라도, 작가의 시선처리를 따라가다보면 2차원의 화면이지만 시간의 순서가 있고, 기승전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곳곳에 숨겨 있는 재치를 보일때 저절로 웃음이 난다.


알프레드 시슬레는 '나는 언제나 하늘을 제일 먼저 그린다'고 했다. 살면서 하늘을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하늘 앞에 있는 것만 보이고 기억할 뿐 정작 하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물은 결국 빛이고, 빛은 하늘에서 나오건만, 하늘을 조연도 아닌, 그저 무대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늘의 깊이와 움직임을 보아야겠다. 하늘끼리 교환 하는 빛을 보아야겠다. 하늘이 빛을 어떻게 떨어뜨리고 사물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아야겠다. 놀라운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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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 Langland Bay, Storr s Rock, Morning, Alfred Sisley, 1897, 65 x 81 cm

============<이하 발췌>


모네의 경계선 없는 붓질을 비웃었으며 드가가 바라본 진실을 외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아냥 섞인 경멸이 사조의 이름이 되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잡지 '샤리바리'에 비난조의 평론을 실었다. '인상, 해돋이'에 관해 "인상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인상적이었으니까 인상이 담겼겠지..."라고 적었다.


나는 언제나 하늘을 제일 먼저 그린다.(알프레드 시슬레)


사물들은 본래의 질감으로 보여줘야 하고, 무엇보다 자연에서 그러하듯 빛으로 감싸야 한다. 이 부분에서 더 노력해야 한다. 하늘은 수단이어야 한다.(하늘이 배경이 될 수는 없다.) 하늘은 전경과 후경을 구분하며 깊이감을 보여주고(하늘도 땅과 마찬가지로 입체감이 있기 때문이다) 형태로서 움직임을 표현한다.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고, 어떤 고통 이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기쁨에 가려진 슬픔을 드러내고, 우리 내면에 감춰진 사악함이 때로는 어떤 위선적인 방식으로 거칠게 표출되는지 확인하고 싶다.(장루이 포랭) 그런 점에서 그는 호사스럽고 과하면서 결점도 품고 있는 파리의 근대적인 밤 문화를 좋아했다.


예술은 조화다. 조화란 반대되는 것들 사이에서 보이는 비슷한 점,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더 비슷한 점, 더 나아가 색조와 색감, 선형 사이의 비슷한 점이다. (쇠라) 쇠라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즉흥성을 포기하고 원색(노랑, 빨강, 파랑)과 2차색(초록, 주황, 보라)만을 다수의 점으로 찍어서 섬세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주어진 순간의 전사가 아니라 영원한 순간의 재현이다.


쾌청한 아침의 어슴푸레한 추억, 덧없는 인상을 남기고 싶은 것처럼 모든 화면은 어렴풋이 스케치되고 다소 흐릿하게 표현되었다. 화가는 감동적인 풍경 앞에 섰을 때 드는 감정을 공유하길 바랐다. 캔버스에서 하늘과 강물은 섞여 하나가 되고, 핵심 주제는 언제나, 그리고 여전히 빛이다.


튜브 물감이 발명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 작업을 즐기고 넉넉해진 근대사회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느 날 아침, 누군가가 검은색 대신에 파란색을 썼습니다. 인상주의가 탄생한 순간이지요.(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관점을 개발했고, 그 시선은 당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사진이 포착한 완벽한 순간의 모습과는 상반된 빛과 순간의 덧없음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해변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다. 그렇지만 바닷물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드물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꼭 가리는 예복에 파묻혀 있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편을 즐겼다. 바닷가는 걱정을 내려놓는 순간이라기보다는 사교적인 모임의 공간이었다.


초록 옆에 놓인 노랑은 약간 붉은기가 돌고, 마찬가지로 빨강 옆의 노랑은 약간 초록기가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진실은 그녀가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드러나는 걸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은 이 장면을 좀 더 매혹적으로 만든다. 멋부리는 여성의 교태를 관찰하고 있어서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해가 지고 밤의 침묵이 찾아오기 전 짧은 순간, 쉽게 털어놓지 않던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임을 관객들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화폭을 압도하면서도 점령하지 않는다.


바르비종 화파는 풍경뿐만 아니라 풍경이 야기하는 감정을 포착하려고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관조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했다.


빛은 온화하고 고요하면서도 언제나 발랄한 화면을 만들었다.


1280px-Edouard_Manet_-_Luncheon_on_the_Grass_-_Google_Art_Project.jpg Luncheon on the Grass, Edouard Manet, 1863, 208 x 264.5 cm
unnamed.jpg Crinolines sur la plage, Eugène Boudin, 1863, 26X47
1200px-Monet_-_Impression%2C_Sunrise.jpg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oleil levant, 클로드 모네, 1872, 63 x 48 cm
1200px-Gustave_Caillebotte_-_The_Floor_Planers_-_Google_Art_Project.jpg 마루깍는 사람들, 귀스타브 카유보트, 1875, 102x146
1200px-Georges_Seurat_-_A_Sunday_on_La_Grande_Jatte_--_1884_-_Google_Art_Project.jpg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1884~1886, 207x308cm
2880px-Bemberg_Fondation_Toulouse_-_Le_Pont_Neuf_et_la_Seine_-_Albert_Lebourg_1905_Inv.2063.jpg Paris, le pont Neuf (1905), Albert Lebo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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