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아빠가... 개장수에게 팔았단다."

스물 여섯 집에 관한 기록, 6

by 고길동

어느 날 아버지가 무언가 승진했다며 종이를 하나 꺼냈다. 내가 읽은 건지, 아버지가 읽어 준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은 명령지였다.



'준사원 홍길동, 사원에 임함'

나는 내심 실망했다. '아버지가 사원이 아니었구나.'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표정에 나는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집은 사택으로 이사를 갔다. '리'에 있는 사택이지만, 그 지역에선 신도시 같은 세련이 흐르는 곳이었다. 스무 가구 정도의 계획된 마을이어서 모든 것이 반듯반듯했다. 마을은 버스길 옆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모든 길, 도랑, 벽, 나무도 모두 계획하여 만들고 심은 것이었다. 주민들은 모두 사원이었으므로 월급을 받았다. 추수할 때가 아니어도 현금이 있는 유일한 동네였다. 미역 아주머니도, 인삼 아주머니도 반드시 들르는 동네였다. 예쁘게 화장한 화장품 아주머니도 우리집에 틈틈이 들렀다. 사원들의 사택 뒤쪽에는 양반댁 고택을 뜯어와 지은 지점장 사택이 있었다. 입구에는 기사가 모는 까만 짚차가 세워져 있었다. 사택회랑은 짧은 마루가 길게 이어졌는데 당시에 보기 어려웠던 유리문과 유리창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꽃나무와 잘 관리된 조경수가 우리동네가 아닌 듯 했다.



마을의 사택은 모든 같았다. 함석판 대문을 지나면 작은 밭이 있었고, 밭을 지나면 수도가 설치된 작은 마당이 있었다. 마루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탱자나무가 집을 둘러쳐 아늑했다. 마당에 있는 개 한마리가 나른하게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이름은 '멍멍이'였는데, 내가 자라는 동안 여러 번 바뀌었던 우리 집 개 이름은 언제나 '멍멍이'였다.



방은 3개였다. 너무도 큰 방이었고, 부엌바닥도 콘크리트로 반듯하게 마감되었다. 땔감도 사서 썼기 때문에 겨울 내내 땔 땔감은 집 한켠에 처마밑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부엌에 수도가 있어 물을 틀면 자동으로 콸콸 나왔다. 이전 집이 수동 전기펌프여서 물을 쓸때마다 전기를 꼽고 펌프에 물을 넣어준 후에 스위치를 올린 거에 비하면 수도의 완전자동화라 할만하다.



다른 시골집처럼, 우리집에도 책이 없었다. 선생님이 선물해준 그리스로마신화 한 권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고학년이 되었다면서 책꽂이를 마련해 주셨다. 술 한잔 사시고 부탁하신 것 같은데, 회사 제재소에서 만든 꺼칠한 나무 책꽂이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앉은뱅이 나무책상도 사 주셨다. 책상에 앉아 공부한 적은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책상에 앉아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아이가 아니라, 학생 대접을 받는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앞집이 벌통을 키웠는데, 꿀따는 날에는 벌이 조금 무섭지만 벌통 앞에 알짱거렸다. 간절한 눈빛을 하고 있으면 아저씨는 꿀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입속으로 빨려들어간 꿀은 어린 나의 상상을 초월한 맛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밭에서 단수수, 수수, 고추, 토마도 같은 것을 키웠다. 두 동생들은 마당에서 비누를 비벼 비눗방울을 만들며 놀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헬멧을 쓴 아저씨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에게 뭐라뭐라 말을 했다. 어머니는 멍하니 있다가 주저 앉았다. 아저씨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우리 멍멍이를 벌쩍 들어안더니 데리고 나가버렸다. 밖은 조용했다. 오토바이 시동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멀어져갔다.



나는 어머니에게 멍멍이 왜 데려가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나를 돌아봤다. 눈이 빨개있었다. 어머니는 잠시 주저하더니 말씀하셨다.



'니 아빠가... 개장수에게 팔았단다'

동생들은 어머니와 함께 울었고, 나는 주변을 서성거리며 울었다.



버스가 천천히 지나가며 먼지를 날렸다. 황토먼지가 빨간 안개 같았다. 개들은 그제서야 짖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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