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서양미술사, 곰브리치)(1/6)

by 고길동

보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며 고민할 방법은 없다.

(서양미술사, 곰브리치)(1/6)


당연한 것은 분석할 것도 관찰할 것도 없다. 그건 그저 당연한 것이니까. 천재, 거장, 성인을 우러러 보면 고민할 것도 없다. 그들은 나와 태생이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인류의 발전이란, 당연한 것을 의심해 왔던 과정이며, 당연한 것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당연함은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만들어졌다. 당연하게 된 '과정' 역시 당연한 것은 아니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라야 호기심이 생기고, 호기심이 생겨야 관찰하고 생각하게 된다.


성인이 성스러움 때문에, 신의 축복 때문에 성인이 되었다고 하면 그를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천재와 거장을 태생으로 치부하면 우리는 그를 공감할 수 없다. 모두 처음 태어난 인생이었다. 자신이 성인이 될 지 알 수 없었던 인간이었다. 작품의 성공과 세상의 인정을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불안함과 당황스럼움을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다. 시간이 지나도 인간이라는 사실은 같다. 그들도 나도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미래를 알 수 없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사는 인생이므로 어색하고, 안절부절한 일들이 많았으리라.


1세기에 그렸다는 폼페이의 벽화를 보면 살아있는 젊음과 설레임이 느껴진다.

세금 징수자였던 마태오의 그림은 당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보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며 고민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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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꺽고 있는 소녀> 1세기. 스타비아이에서 발굴된 벽화의 부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 카라바조, <성 마태오>, 1602, 223x183(납품이 거부됨)



https://blog.naver.com/pyowa/222616149273



==========<이하 발췌>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말이 질주하는 것을 보아왔고 경마와 사냥을 했으며, 말들이 싸움터로 질주하거나 사냥개의 뒤를 쫓는 그림을 보아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말이 다릴 때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 지'를 눈여겹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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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엡솜의 경마> 1821, 92x122.5 / 에드워어드 머이브리지, <달리는 말의 동작> 1872.


어떤 선입견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단 거기에 성공한 미술가들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때가 많다. 이러한 화가들은 우리들에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아름다움의 존재를 자연에서 찾으라고 가르쳐준다. 우리가 그들을 따라 그들로부터 배우고 우리 자신의 창에서 벗어나 그들의 세계를 한 번 힐끗 내다보기라도 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감동적인 모험이 될 것이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제일 큰 장애물은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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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성 마태오>, 1602, 223x183(납품이 거부됨) / 카라바조, <성 마태오>, 1602, 296.5x195


늙고 가난한 노동자이며 단순한 세리였던 마태오가 갑자기 앉아서 책을 쓰게 되었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내느라 고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머리에 먼지 묻은 맨발로 커다란 책을 어색하게 거머쥐고, 익숙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긴장감에 걱정스럽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성마태오>를 그렸다. 카라바조가 제단 위에 걸게 되어 있는 이 그림을 성당에 납품하자 사람들은 이 작품이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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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시 미술을 논할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원시'라는 단어가 이들 미술가들의 재능이 미개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것과 다른 것은 그들의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착상인 것이다.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인 숙련에 관한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명들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생소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관념 때문일 것이다.


이집트 화가에게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전함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어떤 우연한 각도에서 보이는 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도록 보장해주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 사실 그들의 방법은 화가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지도를 제작하는 사람의 방법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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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들은 오늘날의 운동 경기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리스 인들의 운동 경기는 그들의 신앙과 의식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운동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나 직업 운동 선수가 아니라 그리스 명문가의 자제들로서 경기에 이긴 승자는 신들로부터 무적의 마술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어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복제품 조상의 눈이 공허하고 무표정하거나 또 청동 두상의 눈이 텅 비어 있는데 비해서 이 두상의 눈은 당시의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채색된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affresco-flora-primavera-stabiae-archaelogical-museum-napoli-170851111.jpg?type=w1 <꽃을 꺽고 있는 소녀> 1세기. 스타비아이에서 발굴된 벽화의 부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폼페이는 부유한 전원도시 였는데 기원 후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 밑에 매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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