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나, 강기화 동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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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읽으면, 기억속에 가라앉아 있던 감각이 떠오른다.
동시집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동시를 읽으며 어린시절 내가 그대로 그려졌다. 내가 반가웠다.
아이를 키우면, 저절로 어릴 때 나의 마음과 행동이 보인다. 그때의 내가 반갑다.
아이를 키우면, 나를 키웠을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느껴진다. 갈팡질팡하는 젊은 부부가 그려진다.
어릴 때 난 끊임없이 그리고 진지하게 상상했었다. 세상은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상상했다. 진지하게 상상했다.
구름을 보면서 구름이 변하는 모양을 그려보았고, 변해갈 모양을 예측했다. 그러다 구름이 나에게 어떤 신호를 전하려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을 구석구석 보면서 구름의 신호를 잡으려 했다. 있는 것도 같았고, 없는 것도 같았다.
만나는 사람에게 달에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며 물어봤다. 우리 나라가 어떻게 토끼모양이냐고 물어봤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그림을 여러 그림을 그렸다. 달에도 그려보고, 한반도에도 그려봤다. 달은 어찌그렸는데, 한반도는 도저히 그릴 수 없었다. 그래서 바다에 그렸다. 발해만은 토끼모양이었다.
별자리는 무수히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50개 정도다. 어릴 적 하늘은 별이 더 이상 뜰 수 없을 정도로 가득했고, 은하수는 하늘의 강처럼 보였다. 그렇게 많은 별에 선을 그어 별자리라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멀고도 먼 우주에서 보면 태양이나, 지구나, 나나 그게 그거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세상의 구석에 박혀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삶의 디폴트는 랜덤이니까.
콩나물 시루를 처음 보았을 때 놀랐다. 더럽다고 생각했던 까만 재가 시루에 가득 담겨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더러운 재에서 자라난 콩나물인데 먼지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미끄러운 탱탱함이 가득했다. 감히 한 올의 먼지도 붙어 있지 못했다.
나에게 봄의 색깔은 연분홍이다. 진달래다. 연두 잎사귀도 귀한 초봄에 산 속은 갈색이다. 갈색배경에 연분홍 점이 흩어 있었다. 매일 산에 누벼다녔는데도 어느날 갑자기 연분홍이 생겼다. 정말 놀랐었다.
얼룩말은 이국적이고 인위적이다. 아무리 외국의 일이라지만, 얼룩말은 거짓말로 보였다. 마당의 점박이 바둑이도 신기했는데, 얼룩말의 무늬라니. 그건 어린 나를 속이려고 세상이 짜고 조작한 것이라 생각했다.
사막여우를 이라크 군용텐트에서 처음봤다. 먹을 것을 찾으며 기웃거렸다. 그 눈빛은 도둑고양이보다 더 긴장하고 겁먹은 소심했다.
어릴 때 동물의 꼬리를 보며 많이 궁금했었다. 아무 쓸모가 없어보이는 데 모든 동물이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게 신기했다.
파리는 왜 그렇게 떠난 곳을 고집할까. 손으로 휘 쫓으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쫓겨난 자리에 돌아온다. 파리의 똥고집.
우리 동네엔 온통 신후대였다. 조릿대가 조금 있긴 했지만, 나는 왕대를 좋아했다. 힘있고, 나무처럼 가지를 쭉쭉 뻣어있는 당당한 왕대를 좋아했다. 고귀한 도회적 느낌을 좋아했다.
어릴 때 우리 학교엔 그네가 없었다. 어느 날 쇠로 만들어진 그네가 운동장에 만들어졌다. 그래선지 나의 기억에 그네는 도시의 물건이다. 나는 그네를 탈 때마 세련된 첨단 기기를 탄다는 느낌이 지금도 든다.
어릴 적 침을 연필에 발라서 섰다. 연필심에 침을 바르면 진하게 써졌다. 연필심이 혀에 닿는 게 더러워보였다. 나는 책상에 침을 뱉어놓고 찍어가며 썼다. 나는 참 깔끔한 놈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성적은 좋았다. 그래선지 시험보는 것도 좋았다. 책상에 잘 앉아 있었다. 공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그저 공부하기 싫은 핑계라 여겼다. 물론 공부하다 가끔 딴 생각이 났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공부하다 딴 생각나는게 공부되지 않는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랬다면 나는 언제나 늘 공부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초등학교 때 쉬는 시간 10분도 무한의 시간이었다. 이것저것, 별거별거 다하고도 시간이 남아 무료함까지 느낄 수 있는 엄청난 시간이었다.
공기도 매질이다. 공기도 본질은 액체와 같다. 밀도가 다르고 그래서 흐른다. 그 흐름을 타고 생명이 살아간다.
모두 보이는 것만 본다. 그래서 모두들 보여지는 것만 느낀다.
피에로는 가짜라고 생각되었다. 저게 뭔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삶이 이야기라면 재밌어야지 않겠는가.
날마다 성공하고, 날마다 착하고, 날마다 행복하다면 거이 어디에 재미와 성취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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