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2016~2022 결산 리뷰
블랙핑크 커리어의 14곡을 되돌아보다
에스파(aespa)의 두 번째 미니앨범 [Girls]가 초동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하며 기념비적인 판매고를 올리고, 신인 걸그룹 뉴진스(NewJeans)가 데뷔곡 'Attention'으로 각종 음원차트 1위를 거머쥐는 등 2020년대에 접어들어 케이팝 걸그룹 시장은 유례 없는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바로 그 '걸그룹 전성시대'를 이끄는 대표적인 팀 블랙핑크(BLACKPINK)는, 음악 활동이 결코 잦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며 아이코닉한 지위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본 기획에서는 2016년 데뷔 이후 어제 공개된 'Pink Venom (핑크 베놈)'까지, 블랙핑크가 발매한 모든 앨범의 타이틀곡과 멤버들의 솔로곡을 묶어 리뷰하며 그들의 커리어를 돌아보고자 한다.
BLACKPINK, [How You Like That], YG엔터테인먼트, 202014위, How You Like That
이 시대 가장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걸그룹 블랙핑크는 말 그대로 어떤 곡을 내놓아도 박수받을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는 YG엔터테인먼트의 전략은 팬덤에게 수많은 질타를 받았지만 대중들로 하여금 블랙핑크의 음악에 갈증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고, 프로듀서 테디(TEDDY)는 '휘파람'과 '불장난'을 비롯한 수작들을 균일하게 제공하며 그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특히 2018년 6월 발매된 첫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뚜두뚜두 (DDU-DU DDU-DU)' 는 블랙핑크뿐만 아니라 테디의 긴 프로듀싱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최고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감각적인 뱅어 트랙이었다.
그러나 1년 6개월여의 긴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블랙핑크의 새로운 싱글 'How You Like That' 은 그들의 이름이 지닌 무게감에 전혀 걸맞지 않는 조악한 완성도로 큰 실망만을 안긴다. 아무 인상도 남기지 못하는 헐겁고 밋밋한 벌스와 프리코러스를 지나 등장하는 키치한 질감의 드랍은 쌓아올린 긴장감을 허무하게 무너뜨리며, 맥빠지는 사운드 디자인이 몰입을 방해한다. 부분적으로 eb 프리지안(Phrygian) 모드를 차용한 독특한 코드 진행 역시 신선함보다는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뭄바톤 리듬으로 변주하며 속도감을 더욱 끌어올리는 후반부의 전개는 엉성한 프레이즈와 맞물리며 한없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사다. 일차원적 스웨거에 머무르는 중심 주제는 부분적으로 사용되는 비장한 시어들과 불협화음을 내며 혼란을 야기한다. 또한 'Karma come and get some / 딱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처럼 단순히 파열음과 파찰음으로 청각적 쾌감을 주는 데만 집중해 내용 자체는 텅 비어버린 무의미한 라인들은 휘발성으로 소비되어버린 채 조각나 흩어진다.
자신있게 우리들이 어떠냐고 묻는 'How You Like That'은 그 저조한 완성도 때문에 공허한 자만으로 보일 뿐이다. 나름 대한민국 3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YG엔터테인먼트가 이런 트랙을 선공개곡으로 채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어려운 블랙핑크의 모욕적인 선공개 싱글은 그들의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가장 실망스러운 트랙으로 남을 것이다.
BLACKPINK, [SQUARE ONE], YG엔터테인먼트, 201613위, 붐바야
파티 튠에서 가사는 어느 정도까지 무의미할 수 있을까? '붐바야'는 그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트랙이다. '모든 남자들은 코피가 팡팡팡', '따라다라단딴 뚜두룹바우' 와 같이 이 곡의 거의 모든 라인들은 대부분 완전히 무의미하며, 의성어와 의태어, 추임새가 가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사가 꼭 엄청난 철학을 담은 채 유려하게 쓰여져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붐바야'는 과도하게 유아적인 가사와 세련되지 못한 사운드 디자인이 부정적인 시너지를 내며 트랙의 총체적인 감흥을 망쳐 버린다. 함께 발매된 '휘파람'과 비교해 보아도 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실망스러운 트랙.
제니, [SOLO], YG엔터테인먼트, 201812위, SOLO
블랙핑크 솔로 프로젝트의 첫 주자로 나선 제니는 '빛이 나는 솔로'를 표방하며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나 데모곡이나 다를 바 없는 부족한 완성도 탓에 그 자신감은 공허한 오만으로 보일 뿐이다. 최소한의 악기만으로 구성된 경직된 비트는 사운드의 부족한 공간감으로 인해 트랙의 지루함을 배가시키며, 조잡한 질감의 드럼 라인과 맥빠지는 드랍의 리드 사운드는 기술적인 의문마저 품게 한다. '멀리 가고 싶어 / 밝게 빛나고 싶어' 처럼 지극히 일차원적인 표현들로 솔로 라이프를 예찬하는 조악한 가사 역시 단점.
BLACKPINK, [Ice Cream], YG엔터테인먼트, 202011위, Ice Cream
레이디 가가(Lady Gaga), 두아 리파(Dua Lipa) 등 다양한 팝 스타들과 협업해 온 바 있는 블랙핑크지만, 그 결과물은 대부분 평이한 수준에 머물렀다. 그에 버금가는 거물급 스타인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콜라보한 싱글 'Ice Cream'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키치한 질감의 비트 자체는 나름대로 매력적이나, 부자연스러운 멜로디가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미약한 후렴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프리코러스를 과감히 생략하고 벌스-코러스-벌스-코러스의 단순한 구조를 취한 선택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득해내지 못하는 관성적인 프로듀싱 역시 아쉽다. 리사는 탄탄한 톤의 래핑으로 트랙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단순히 발음이 유사한 단어들을 맥락 없이 늘어놓는 수준에 불과한 랩 파트의 가사 탓에 빛이 바랜다. 애써 초빙한 셀레나 고메즈 역시 전혀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
앞서 공개된 싱글 'How You Like That'과 마찬가지로, 곡의 완성도가 다소 아쉬운 정도를 넘어 미완성작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다. 향후 발매될 블랙핑크의 첫 번째 정규 앨범에 기대보다는 불안을 품게 하는 실망스러운 트랙.
리사, [LALISA], YG엔터테인먼트, 202110위, LALISA
블랙핑크의 메인래퍼 리사(LISA)는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 아이돌 래퍼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여자)아이들의 전소연 정도가 비견될 수 있을 뿐, 개성적인 톤, 탄탄한 발성, 차진 발음 등 기본기 면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리사의 래퍼로서의 잠재력은 케이팝 씬을 통틀어서도 손꼽힐 정도였다.
따라서 리사의 솔로 데뷔는 이러한 강점을 살려 그녀의 탁월한 랩 스킬을 각인시킬 수 있는 힙합 트랙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지점을 시원하게 짚어주는 트랩 넘버 'MONEY'는 수록곡에 머물고, 블랙핑크 음악의 진부한 답습에 불과한 'LALISA'가 타이틀로 선정된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단조로운 질감의 브라스 리프와 808 베이스를 엮어 넣은 식상한 비트 위에 단순한 훅을 반복하는 매력 없는 구성은 청자를 설득해내지 못한다. 2절 벌스에서 잠깐 타이트한 랩을 선보이지만 그 비중이 너무 적어 감질맛만 날 뿐. 결과적으로 'LALISA'는 리사라는 고품질의 원석을 밋밋하게 세공한 아쉬운 데뷔 싱글로 남았다.
BLACKPINK, [SQUARE TWO], YG엔터테인먼트, 20169위, STAY
긴말할 필요도 없이, 'STAY'는 굳이 타이틀로 선정되지 않았어도 될 트랙이다. 블랙핑크의 세련되고 트렌디한 감각은 본작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난데없는 컨트리풍 편곡은 로제를 제외한 다른 모든 멤버들의 매력을 납작하게 눌러 놓는다. 그저 의무적으로 끼워넣은 듯 곡에 전혀 묻어나지 않는 2절의 랩 벌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어색한 부분. 하모니카가 등장하는 노스탤지어틱한 후렴은 너무나도 정직해 웃음이 나올 정도다. 수록곡이면 그런 대로 괜찮았겠지만 '불장난'과 같은 턴업 넘버와 나란히 더블 타이틀로 내세우기에는 너무나도 식상한 트랙.
BLACKPINK, [THE ALBUM], YG엔터테인먼트, 20208위, Lovesick Girls
영미권 메인스트림 팝을 닮은 질감의 기타 리프가 곡을 이끌어 가다 후렴에서는 화려한 비트의 EDM 사운드로 전환되는 'Lovesick Girls'는 주로 비트 중심의 음악을 해 왔던 블랙핑크가 '마지막처럼' 이후 정말 오랜만에 내놓은 선율 중심의 트랙이라는 점만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인상적인 점은 어디까지나 그것뿐. 유니즌 코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특기할 만한 지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본작은 블랙핑크의 유니크한 이미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진부한 트랙이다. 프로듀싱에 참여한 유명 DJ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의 영향이 묻어나는 사운드 디자인은 2010년대 초중반 유행하던 EDM 팝의 흔한 복제다.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 케샤(Kesha) 등 고릿적 팝스타들의 잔상만을 남기는 'Lovesick Girls'에 블랙핑크의 존재감은 없다. 진부하고 따분하다. 팬덤은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도 음악은 여전히 우물 안에 머문다.
BLACKPINK, [Pink Venom], YG엔터테인먼트, 20227위, Pink Venom
다른 걸그룹과 블랙핑크가 확실히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들이 압도적인 기량의 래퍼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사와 제니는 발성과 발음에서부터 여타 걸그룹 래퍼들과 명백히 차이가 나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 멤버이고, 블랙핑크 음악의 완성도는 이 둘의 래핑을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로 판가름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프로듀서 테디는 본작에서 래퍼 라인의 비중을 극대화시켜 차별화를 꾀한다.
확실히, 그 말대로 'Pink Venom'은 제니와 리사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트랙이다. 거문고와 유니즌 코러스로 시선을 집중시킨 후 제니의 단단한 래핑으로 인상적인 출발을 만들어내는 인트로나, 지펑크(G-funk) 풍의 신디사이저와 둔탁한 붐뱁 비트 위로 촘촘하게 라임을 박아넣는 두 번째 벌스는 확실히 지금껏 모든 블랙핑크의 음악을 통틀어서도 가장 인상적인 랩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일한 프로덕션의 민낯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벌스의 팽팽함을 무색하게 하는 헐거운 프리코러스와 단조로운 후렴은 매너리즘 그 이하의 실망감을 안겨 준다. 어김없이 전작들과 같은 패턴으로 후렴에 변주를 주며 건조한 훅을 반복하는 후반부 역시 식상하기는 마찬가지. 래퍼 라인을 중심으로 내세운 탓에 보컬 라인인 로제와 지수의 존재감이 과하게 흐릿해진 것 역시 아쉽다. 특히 미숙한 가창으로 몰입을 저해하는 지수의 프리코러스 파트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인상적일 정도.
결과적으로 'Pink Venom'은 팀이 가진 장점을 영민히 파악하고 전면적으로 활용하며 인상적인 구간을 만들어내긴 했으나, 정작 중심 뼈대의 짜임새는 여전히 헐거워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약 2년여간의 긴 공백기 동안 블랙핑크가 과연 매너리즘을 돌파할 답을 찾았을지, 혹은 명성이 만들어낸 허황된 음악적 성과에 안주하기를 택했을지. 다가올 그들의 정규 2집 앨범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트랙이다.
BLACKPINK, [마지막처럼], YG엔터테인먼트, 20176위, 마지막처럼
데뷔 이후로 블랙핑크는 선배 그룹 2NE1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늘 함께해 왔다. '마지막처럼'은 그러한 우려의 시선에 정확히 일치하는 곡이다. '휘파람'과 '불장난'에서 비트 중심의 세련된 음악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했던 그들이 느닷없이 방향을 틀어 2NE1을 연상시키는 선율 중심의 음악을 가져온 것이다.
디스코그래피의 일관성을 해치는 아쉬움을 뒤로 하더라도, 곡 자체의 완성도에도 의문이 남는다. 긴박한 뭄바톤으로 진행되는 후덥지근한 벌스와 반짝이는 레트로풍 신스가 이끄는 정직한 코러스는 서로 다른 노래를 어색하게 오려 붙인 듯 그 이음매가 매끈하지 않아 산만한 느낌을 준다. 캐치한 탑라인의 매력은 부정할 수 없지만, 블랙핑크의 일관된 음악적 노선을 이탈하면서까지 이 곡을 발표할 필요가 굳이 있었나 싶은 애매한 완성도의 트랙.
BLACKPINK, [KILL THIS LOVE], YG엔터테인먼트, 20195위, Kill This Love
웅장한 브라스로 포문을 여는 'Kill This Love'는 2010년대 초반의 일렉트로닉 뮤직 기조를 뒤늦게 재현한 낡은 사운드 디자인으로 텁텁한 실망을 안긴다. 후반부에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며 에너지를 분출하는 뻔한 패턴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어 따분하게 다가온다. 파워풀하게 밀어붙이는 과장된 브라스 사운드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는 하나 세련된 맛은 아니다. 보란 듯이 매너리즘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오만이 드러난 작품.
BLACKPINK, [SQUARE TWO], YG엔터테인먼트, 20164위, 불장난
'불장난'을 기점으로, 블랙핑크는 선배 그룹 2NE1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내고 온전히 음악적인 독립을 이룬다. 2010년대 중후반 케이팝 씬을 강타한 트로피컬 하우스/뭄바톤 열풍이 낳은 가장 매력적인 성과 중 하나인 '불장난'은 블랙핑크의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가장 세련된 트랙이다. 스타일리쉬한 건반과 날카로운 질감의 신스가 묵직한 킥과 어우러지는 댄서블한 비트는 '불장난'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격적인 어감을 세련된 하우스 뮤직의 문법으로 풀어낸다. 뛰어난 절제미로 신인답지 않은 성숙함을 보여주었던 전작 '휘파람'의 기세를 이어받아 선명한 장르성을 앞세운 정공법으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영리하게 풀어낸 본작은 다시 한 번 블랙핑크의 잠재력을 각인시킨다.
BLACKPINK, [SQUARE ONE], YG엔터테인먼트, 20163위, 휘파람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는 바람처럼 살랑이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케이팝 씬 안으로 순조롭게 연착륙했다. 데뷔곡으로서는 흔치 않게도 '휘파람'은 훗날 그들이 음악 내적으로 겪게 될 문제들에 대한 거의 모든 해답을 앞서 내놓은 우수한 트랙이었는데,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고 노련한 완급 조절을 선보이는 프로덕션이 바로 그렇다.
'휘파람'은 상쾌한 휘슬 소리를 기반으로 재미있는 사운드 소스들을 적절하게 더해 가며 차분하게 트랙을 구성해 나간다. 벌스 역시 아주 느릿느릿하고 여유롭게 전개되어 비트의 흐름을 즐길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 놓는다. 청량한 어쿠스틱 풍으로 전환되는 브릿지는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환기해 청자를 붙잡고, 텐션을 끌어올리는 후반부 역시 결코 여유를 잃지 않고 절제의 미학을 지킨다. 휘파람이라는 단어의 독특한 어감을 살린 '휘 파라파라 파라 밤' 훅은 재치 있는 워드 플레이로 다가온다.
이처럼 블랙핑크 음악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동시에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과잉된 프로덕션은 본작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치밀한 완급 조절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통제된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핑크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는 오히려 가장 이질적인 트랙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데뷔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성숙한 만듦새가 돋보이는 본작은 동시에 그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 중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로제, [R], YG엔터테인먼트, 20212위, On The Ground
2016년 데뷔한 블랙핑크(BLACKPINK)는 짧은 시간 내에 국제적인 인기를 얻으며 K-POP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걸그룹 중 하나로 도약했다. 그들은 제니, 로제, 지수, 리사 4인의 멤버 중 누구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고른 밸런스를 갖춘 팀이지만 음악 내에서만큼은 역시 로제(ROSE)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인다. R&B,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에 녹아드는 그녀의 유니크한 보컬이 블랙핑크라는 팀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제니(JENNIE)의 뒤를 이어 블랙핑크 솔로 프로젝트의 두 번째 타자로 출격한다는 소식은 팬덤 블링크(BLINK)뿐만 아니라 타 장르 리스너들까지도 반길 만한 뉴스였다.
앞서 2019년 발매된 제니의 솔로곡인 'SOLO'는 대중적 흥행을 기록하긴 했지만, 음악 자체는 블랙핑크의 단순한 연장선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아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로제는 달랐다. 그녀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영어로 작사된 'On The Ground'는 인위적으로 꾸며낸 스웨거를 벗은 로제 자신의 꾸밈 없는 진심을 털어놓는다. 항상 위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달려왔고 결국 원하던 모든 것을 얻어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어도 마음 속의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가치는 다름아닌 그녀의 안('On The Ground')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철학적인 사유 과정은 엘리 굴딩(Ellie Goulding) 풍의 뭉툭한 신디사이저 비트가 점점 고조되며 절정에 치닫는 곡의 구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묘사된다. 그 안에서 능숙하게 곡을 이끄는 로제의 솜씨는 그녀의 보컬이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범주에 가두기 어려울 정도로 무르익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처럼 'On The Ground'는 인간으로서의 로제와 보컬리스트로서의 로제 모두의 성숙을 성공적으로 증명해 낸 우수한 싱글이다. 경쟁력 있는 솔로 아티스트로 우뚝 자리잡은 그녀의 향후 행보에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
BLACKPINK, [SQUARE UP], YG엔터테인먼트, 20181위, 뚜두뚜두
자동차, 총, 폭발로 대표되는 액션 장르의 클리셰들을 그러모아 조금씩 변주를 주며 매년 다른 제목으로 개봉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처럼, 블랙핑크의 음악 역시 세세한 요소만 다를 뿐 항상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비슷한 패턴으로 구성되어 왔다. 한영혼용으로 가득한 리사와 제니의 랩 벌스, 비장하게 등장하는 로제와 지수의 프리코러스, 노래 제목을 외치며 진입하는 EDM 드랍, 리듬에 변화를 주며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는 후반부의 변주까지. 대부분의 곡에서 안일하게 반복되는 이러한 패턴은 블랙핑크의 음악을 비평적으로 고평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도 뛰어난 흡인력을 자랑하는 액션 시퀀스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평단의 호평까지 이끌어내는 블록버스터 영화(이를테면, <탑건: 매버릭>)가 종종 등장하듯 블랙핑크 역시 기존의 패턴을 바탕으로 최고의 기술적 성취를 이뤄낸 트랙을 배출했으니, 그것이 바로 '뚜두뚜두'다. 본작은 앞서 언급한 블랙핑크 음악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반복한다. 제니와 리사의 랩에서 로제와 지수의 프리코러스로, 그리고 곡 제목을 외치며 EDM 드랍까지. 그러나 치밀하게 세공된 사운드의 짜임새는 다른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고혹적으로 출렁이며 후렴과 한몸처럼 차지게 달라붙는 리드미컬한 신디사이저 드랍은 비교를 불허하는 확실한 파괴력으로 귀를 붙잡는다. 테마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사운드 소스들을 적재적소에 채워 넣은 호화로운 비트는 지루할 틈 없이 청자를 강력한 드랍으로 견인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부분은 현란하게 변주를 주며 강렬하게 쇄도해 오는 후반부로, 프로듀서 테디의 역량과 노하우가 모두 집약되어 황홀한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Hit you with that ddu-du-ddu-du-ddu' 라는 차진 훅을 멋지게 소화해 내는 제니의 스타일리쉬한 래핑과 로제의 매혹적인 보컬을 비롯, 멤버들의 특색 있는 보이스 역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더욱 빛난다.
블랙핑크는 스스로의 클리셰를 포기하지 않고 더욱 날카롭게 세공해 기어코 '뚜두뚜두'라는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때문에 본작은 블랙핑크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케이팝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렬한 폭발력을 지닌 뱅어 트랙(Banger Track)으로 기억될 것이며, 한 케이팝 그룹이 자신들의 클리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영리하게 다루는 방법에 대한 최고의 모범 답안을 제시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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