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2015년, 훗날 그녀들이 '살짝 설렜어'와 'Dolphin'이라는 홈런 두 방을 날리며 올해의 아티스트에 거론될 정도로 성장할 거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었을까? 외부에서 팬덤을 끌어올 만한 대형 기획사나 대형 멤버도 없이 꾸준하게 성장곡선을 그려온 오마이걸의 서사는 K-POP 내에서도 전례가 없다.
그녀들의 성장 동력은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이게도'음악' 하나에 굳건하게 기반해 왔다. 다른 팀들과는 분명 어딘가 다른 확실한 음악적 노선과 뚝심있는 지향, 그리고 뛰어난 완성도까지 더해지니 대중 역시 끝끝내는 그녀들의 음악에 설득되고 말았다. 그만큼, 오마이걸의 성장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녀들의 음악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본 글에서는 오마이걸이 걸어 온 6년 간의 디스코그래피를 돌아보며 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되짚어 본다.
Mnet <퀸덤> 파이널 무대가 낳은 가장 빛나는 발견은 'LION'의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경연에서 'Destiny (나의 지구)' 등을 통해 한껏 주가를 올린 오마이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임에 분명하다. '게릴라'는 지금껏 그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어둡고 공격적인 분위기의 트랙인데, 숨죽인 사운드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벌스에 이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프리코러스부터는 '오마이걸다운' 스트링이 다시 등장하며 반가움을 안긴다. 역동적인 탑라인의 후렴 역시 드라마틱한 사운드와 어우러지며 극적인 맛을 자아낸다. '이런 것도 이 정도로 할 수 있다'는 오마이걸의 당당한 출사표, '게릴라'는 그녀들의 잠재력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앨범 커버부터 음악까지 'LIAR LIAR'의 명맥을 잇는, 브라스를 비롯해 온갖 악기가 버무려진 맥시멀리즘적 사운드로 3분 내내 꽉꽉 채운 '컬러링북'에 대해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정신없고 난잡하다는 평과 신나고 풍족하다는 평이 대립되는 가운데, 이 글에서는 후자의 손을 들어 주고자 한다.
곡의 포인트를 과하게 많이 집어넣은데다 특별한 완급 조절 없이 3분을 내내 내달리기 때문에 다소 귀가 피로하다는 비판의 여지는 존재하지만, 풍부한 악기 구성과 변화무쌍한 벌스 진행은 지루할 틈이 없이 청자를 잡아끈다. 브라스가 쉴새없이 에너지를 펌핑하는 비트 위에 쉬운 멜로디를 전개하며 '열 손가락' 훅을 뇌리에 꽂아넣는 후렴 역시 나름 매력적이다. 'Closer'나 'WINDY DAY' 때처럼 과한 실험으로 곡의 테마를 망쳐버리지 않고 끝까지 무드를 일관되게 이끌어 나가는 프로듀싱도 특기할 만하다.
비록 미니멀리즘이 전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았다지만, 맥시멀한 음악도 가끔씩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딱 맞게 담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모자란 것보단 넘치는 게 낫다. 오마이걸의 '컬러링북'은 그것을 증명한다.
오마이걸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Closer'는 오마이걸답게 평범한 노래는 아니다. 유아의 애절한 보컬로 시작해 웅웅대는 신스가 신비로운 무드를 조성하고 몽환적인 멜로디의 후렴이 등장하는 깔끔한 구성은 상당한 완결성을 보인다.
프로듀싱은 속된 말로 '급발진'해 무드를 망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시종일관 노련하고 기민하게 텐션을 쌓아 올리며, 환상적인 화성이 절정으로 치닫는 브릿지까지 흠잡을 점이 없는 정교한 템포 조절을 해낸다. 곡을 마무리하는 미미의 래핑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으나, 곡의 훌륭한 완결성을 폄훼할 만큼의 실수는 아니다.
잘 짜여진 멜로디와 사운드, 깔끔한 구성, 차고 넘치는 독창성까지. 곡의 장르적 특성상 다소 파괴력이 약해 인상이 흐릿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Closer'에서 눈에 띄는 흠결을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오마이걸은 언제나 K-POP 뮤직의 클리셰를 회피하고 부수어 오며 발전해 온 팀이었고, 프로듀싱 팀은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더더욱 독창적인 시도를 단행해 왔다. 그리고 그 시도는 'CUPID', 'Closer', 'LIAR LIAR'로 이어지는 데뷔 이후 3연작에서 모두 대성공을 거두는 뛰어난 음악적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니 그 자부심에 더욱 불이 붙는 건 이해하지만, 'WINDY DAY'는 명백한 자만이었다.
대체 느닷없는 인도풍 기타 투입은 누가 제안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백이면 백 누가 들으나 완전한 대실수인 이 간주는 어색함을 넘어 아연실색이다. 간주를 제외하면 2016년을 통틀어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훌륭한 곡이기에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클리셰 비틀기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반면교사.
그러나 가벼운 질감의 기타와 피아노가 선명하게 무드를 형성하고 노련하게 템포를 조절하다 코러스에서 화성이 한 순간 화사하게 터져 나오며 K-POP 곡으로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 'WINDY DAY'의 성취를 간주 하나로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정라리의 케이팝읽기>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거친 텍스처의 전자음을 빽빽하게 배치한 트랙 위에 높은 피치의 상큼한 멜로디가 얹히니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묘하게 끌린다. 아이즈원의 '환상동화'를 리뷰하며 걸그룹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무겁고 두꺼운 전자음을 활용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 바 있는데, 오마이걸은 그것을 이미 4년 전에 시도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머릿속에 어질러진 섬들을 맞춰도' 로 시작하는 프리코러스는 유니즌 코러스로 입체감을 더하며 곡의 몰입을 성공적으로 유도해 내는데, 이 솜씨가 범상치 않다. 적어도 2016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프리코러스였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건만, 브릿지처럼 느껴지는 멜로디로 텐션을 마지막으로 최고조까지 올려낼 듯 하다가 미련 없다는 듯 돌연 곡을 끝내 버리는 실험적인 아우트로 역시 난감하기보단 기분 좋은 반전 결말로 다가온다. K-POP 음악의 클리셰를 차례차례 부수는 오마이걸의 노련한 솜씨는 여전했다.
마칭 밴드 사운드를 타고 흐르는 화성의 마법. 오마이걸은 데뷔곡에서부터 충만한 음악적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박자를 변칙적으로 요리조리 갖고 놀며 맥동하는 독특한 질감의 마칭 밴드 드럼부터 범상치 않다. 근 10년 간의 모든 K-POP을 통틀어 가장 퍼커션이 돋보이는 트랙이 아닐까 싶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말랑한 화성감의 백그라운드 보컬과 다채로운 악기 구성 역시 곡의 완성도를 더한다. 이토록 풍부한 사운드에 얹히는 멜로디라인은 더할 나위 없이 캐치하며 직관적이다. 훅을 유니즌 코러스로 때워 버리는 과감한 시도 역시 오마이걸답다.
언제나 오마이걸은 K-POP의 클리셰를 순진한 얼굴로 비틀어 개성적인 음악을 내놓는 팀이었고, 그 시발점인 'CUPID'는 앞으로 오마이걸이 좇을 독자적인 음악적 세계관을 예고하는 완벽한 프롤로그였다.
'CUPID', 'LIAR LIAR', '컬러링북'이 에너제틱하게 맥동하는 사운드로 버블검 팝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여준다면, 'Closer'와 'WINDY DAY'는 그와는 반대로 애절한 보컬과 몽환적인 무드가 돋보이는 곡들이었다. 그리고 '비밀정원'은 후자에 속하는데, 그 완성도나 곡의 작법 면에서 같은 분류로 묶기보다는 일종의 '진화형'으로 일컫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국형 발라드에 가까운 느리고 대중적인 선율을 역동적이고 애절한 스트링 사운드가 감싸는 '비밀정원'의 프로듀싱은 오마이걸의 음악적 곤조와 대중성이 맞닿을 수 있는 최상의 지점을 찾는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타 그룹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개성적인 사운드, 이견 없이 훌륭한 멜로디라인, 드라마틱한 구성이 만나 드디어 오마이걸은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대중까지도 매혹시킬 수 있는 곡을 완성했다. 억지로 클리셰를 비틀다 삐끗해버린 전작들의 오답노트로부터 확실한 성장을 이룬, 설득력 넘치는 웰메이드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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