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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Jan 02. 2023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로: RM [Indigo]


케이팝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은 지난 6월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당분간 그룹 단위의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을 뿐 개인 활동은 여전히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속담처럼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의 역량이 이후에도 온전 발휘될 수 있을지는 물음표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오히려 그룹의 무게에 가려져 있었던 개개인의 재능을 전방위로 뽐내며 하반기를 다시금 화려하게 장식했다. 모든 것을 불태우며 두 번째 페이즈의 뜨거운 서막을 올렸던 제이홉의 '방화'로 시작해, 군입대 소식과 함께 콜드플레이와의 놀라운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의 'The Astronaut',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의 포문을 연 정국의 'Dreamers'에 이어 출격한 알엠(RM)은 4번 타자의 품격에 걸맞는 뛰어난 완성도의 정규 앨범으로 그의 음악적 기량을 완벽히 각인시킨다.



예상과는 달리, RM의 첫 솔로 정규작 [Indigo]반적인 의미의 힙합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대부분의 트랙들은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어쿠스틱 악기 구성으로 멜로우한 무드를 형성한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처럼 새로운 장르로 앨범을 가득 채웠음에도 RM 전혀 어색함 없이 모든 트랙의 흐름을 능숙하게 제어하고, 그 개별 트랙의 완성도 역시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미니멀한 프로덕션을 바탕으로 네오 소울의 여왕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보컬과 윤형근 화백의 나레이션을 얹은 첫 트랙 'Yun', 펑키한 비트에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캐치한 후렴이 덧입혀지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맥동하는 'Still Life', 댄서블한 킥을 타고 타블로(Tablo)와 합을 맞추는 'All Day'로 이어지는 초반부의 흡인력은 그 중에서도 가히 압권이다. 자칫 루즈해질 수 있는 중반부에도 김사월이 힘을 보탠 섬세한 포크 송 '건망증', 포스트모던 아티스트 이이언의 인더스트리얼한 편곡이 돋보이는 실험적인 일렉트로니카 인터루드 'Change pt.2' 등의 변칙적인 넘버로 청자의 집중을 꽉 잡고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진 것과 잃은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RM의 감정선이 치밀한 트랙 배치를 통해 점진적으로 묘사되는 흐름이 인상적인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타이틀 곡 '들꽃놀이'는 그야말로 화룡점정과 같다. 둔탁한 드럼과 드라마틱한 록 사운드가 어우러진 비트는 RM의 거칠고 낮은 톤의 싱잉 랩과 뛰어난 궁합을 보이며 감정선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밴드 체리필터의 보컬 조유진 울부짖는 듯 역동적인 가창으로 차오른 감정을 터뜨리며 트랙의 울림을 한층 증폭시킨다. 담담한 RM의 랩과 폭발적인 조유진의 보컬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들꽃놀이'의 감정적 호소력은 방탄소년단의 대표곡 '봄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올해 이보다 흡인력 있는 케이팝 작품은 없었다.



진한 진정성이 담긴 스토리텔링과 세련된 프로덕션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RM의 원숙한 기량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Indigo]는 더 이상 케이팝의 영역 내에서 논의될 수 없는 장르적 확장성과 완성도를 성취한 빼어난 작품이다. 케이팝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서사의 무게, 다채로운 장르를 정갈하게 진열하는 섬세한 큐레이팅, 에리카 바두부터 김사월까지 국내외의 다채로운 게스트들을 적재적소에 운용하는 정상급의 디렉팅까지. 무르익은 RM의 음악적 역량과 하이브의 노련한 앨범 제작 노하우가 만이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웰메이드 앨범이 탄생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방탄소년단의 것은 방탄소년단에게 남겨두고 RM은 이제 인간 김남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섬세한 헌사를 바치며 새롭게 출발한다. 10년간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그의 손에서 찬란한 인디고색의 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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