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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Jan 14. 2023

[결산] 2022년 최고의 케이팝 트랙 11위~20위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온 기나긴 터널도 점차 끝을 향해 달려가며 포스트코로나의 뉴 노멀을 앞두고 있는 2022년. 이미 하나의 문화 영역이자 종합예술로 자리잡은 K-POP 음악은 새 시대를 맞이하는 세계인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선사해 주고 있다. '정라리의 케이팝읽기' 본 결산에서는 2022년 한 해, 즉 2022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 사이에 발매된 모든 K-POP 트랙 중 '베스트 트랙' 20선을 선정하였다.


* 본 글의 순위 및 칼럼은 정라리 개인이 선정하고 집필한 것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앨범의 타이틀곡 또는 싱글된 곡만을 선정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록곡들은 선정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정라리의 케이팝읽기'는 음악과는 별개로 리뷰 대상 아티스트의 논란과 범죄 행위를 일체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비난이 아니라 케이팝 씬에 대한 깊고 넓은 관심을 촉구하고 풍부한 논의를 생산하는 것임을 유념하여 읽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HONORABLE MENTIONS (순위외 후보)


이 글에서는 아쉽게도 순위권 안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2022년의 K-POP을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우수한 트랙들을 다룹니다.


보이그룹

보이그룹 순위외 후보에는 다채롭고 재기발랄한 프로덕션을 통해 커리어 최고의 음악적 성취에 도달한 몬스타엑스의 'LOVE', 속도감 있게 달리는 비트가 감각적인 멜로디와 결합하며 하이브리드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크래비티의 'Adrenaline', 깔끔한 구성 안에서 틀에 맞게 변주되며 케이팝 음악에서 만나기 어려운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인 CIX의 '458', 울렁이는 글리치 베이스의 울퉁불퉁하고 퍼지한 질감이 신선한 감상을 안기는 온리원오브의 'skinz', 불길한 절단의 모티프를 끈적이는 밴드 사운드로 구현하고 보컬을 연극적으로 운용해 콘셉츄얼하게 트랙을 구성하는 감각이 돋보이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Hair Cut',  긴박한 드럼과 다채로운 신스를 세련되게 조립해내는 치밀한 사운드 디자인이 인상적인 미래소년의 'Drip N' Drop'이 선정되었다.




걸그룹

걸그룹 순위외 후보에는 단단한 짜임새의 사운드와 보컬 디렉팅으로 팀의 무르익은 역량을 확실히 각인시킨 프로미스나인의 'DM', 멤버 개개인의 존재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치밀한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스테이씨의 'RUN2U', 그들이 음악의 완성도와 대중적 테이스트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웰메이드 팝을 선보이는 팀으로 성장했음을 증명해 보인 우아의 'Rollercoaster', 둔탁한 베이스와 함께 큰 낙차로 떨어지며 유니즌 코러스의 강렬함을 극대화시키는 드랍을 비롯해 전 구간에서 절제된 멋을 뽐내는 이달의 소녀의 'POSE', 신비롭고도 서글픈 무드의 스트링과 가야금이 유주의 로우톤 보컬과 최고의 합을 자랑하는 유주의 '놀이', 수준 높은 일렉트로닉 팝 프로덕션으로 짜릿한 청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우아의 '단거'가 선정되었다.





2022 최고의 케이팝 트랙 11~20위



20위

최예나, 'SMILEY (Feat. BIBI)'


'SMILEY'의 에너제틱한 프로덕션은 오밀조밀한 짜임새의 사운드나 캐치한 멜로디뿐만 아니라 최예나의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까지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비웃을 때 빼고 내 입꼬리는 chillin'과 같이 재치 넘치는 가사와 보컬 운용으로 최예나와 대비되는 안티 히어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씬스틸러 비비(BIBI)는 올해 최고의 피처링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퍼포먼스로 최예나의 캐릭터성 구축에 점을 찍는다. 솔로 데뷔작으로서 전략적 허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수작.


19위

TAN, 'Walking on the moon'


사실, 탄(TAN)은 음악적으로 그리 주목받는 그룹은 아니었다. 데뷔작 'DU DU DU'와 후속곡 'Louder'는 분명 신인의 작품치고는 나쁘지 않은 곡이었지만 쟁쟁한 케이팝 씬에서 차별성을 만들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Walking on the moon'은 다르다.


브라이트 피아노와 유니즌 코러스가 어우러지는 프리코러스는 세련된 상승곡선을 만들어내며, 멤버들의 유려한 음색 사이로 반짝이는 신스가 치고 빠지 코러스는 빼어난 완급 조절로 청각적 쾌감을 안겨 준다. 탄탄한 보컬 디렉팅과 스타일리쉬한 편곡이 만나 달빛 가득한 밤하늘을 유영하는 듯 환상적인 트랙이 탄생했다. 음악적으로 이렇다할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던 4세대 보이그룹 계보에 주목해볼 만한 팀이 오랜만에 새로 등장한 듯하다.


18위

에스파, '도깨비불'


SM엔터테인먼트는 'Next Level'과 'Savage' 두 개의 걸작을 연달아 내놓으며 2021년을 부정할 수 없는 '에스파의 해'로 각인시켰다. 현재 케이팝 씬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에스파가 장장 반 년만에 발매하는 컴백 미니앨범의 선공개 싱글 '도깨비불'은 위협적인 사이렌 소리로 새로운 활극의 시작을 호기롭게 알린다.


디스토션을 휘감은 채 지면을 강타하는 거친 808 베이스가 이끄는 프로덕션은 'Savage'의 기억을 불러내 강렬한 카리스마를 구현한다. 뇌쇄적인 훅으로 청자를 사로잡고 주술적인 보컬 샘플 꿈틀대며 등장하는 전개에 마치 도깨비불에 홀린 듯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도깨비불'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SM엔터테인먼트가 에스파 멤버들의 음색을 운용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른 듯 보인다는 점이다. 카리나의 낮고 나른한 보컬은 '몽롱한 기분이 좋은 tonight' 프리코러스 파트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하며, 간질간질한 윈터하이톤 전반에서 적극 활용되면서 가장 뛰어난 흡인력을 가진 장치로서 작용다. 쿨하고 허스키한 보이스로 도입부와 훅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지젤의 존재감 역시 상당하다.


연이은 흥행으로 체급을 키우며 기대 또한 높아졌지만, 에스파는 이에 걸맞는 치밀한 기획과 빼어난 프로듀싱이 돋보이는 수작 '도깨비불'로 성공의 자격을 증명해다. 또 한 번의 비상은 이미 시작되었다.


17위

케플러, 'We Fresh'


단연코 현재까지 케플러 커리어를 통틀어 최고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 에너제틱한 기타 드라이브가 이끄는 벌스를 지나 촘촘한 전자음이 속도감 넘치게 질주하는 강력한 후렴까지의 초반 전개가 상당한 흡인력을 자랑한다. 묵직한 베이스와 킥은 시종일관 선명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리스너를 사로잡는다.


본작의 거의 모든 섹션들은 놀랄 만큼의 균형감을 유지하며 저마다의 매력을 앞다투어 뽐낸다. 그 중에서도 김다연이 'We Fresh'를 외침과 동시에 로킹한 기타가 낙하하는 브릿지는 가장 강렬한 청각적 쾌감을 안겨 주는 최고의 하이라이트 구간.


3분 15초 내내 단 한 번도 숨 돌릴 새 없이 끝없이 가속해 달리는데도 전혀 과거나 벅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강렬하게 응집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맥동하며 신인의 꿈틀대는 패기를 구현한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완급 조절을 바탕으로 오프닝부터 엔딩까지의 모든 시퀀스가 탄탄하게 짜여진 웰메이드 액션 활극.


케플러가 현 시점에서 선보일 수 있는 최대의 음악적 역량이 집약된 'We Fresh'는 지금까지의 걸그룹 음악에서 기타 가장 과적으로 활용한 사례 중 하나이자, 가히 춘추전국시대와도 같은 4세대 걸그룹들의 치열한 뉴웨이브 대전 사이에서 케플러의 존재감을 명확히 새기는 멋진 한 방이다.


16위

에스파, 'Girls'


단연코, 에스파(aespa)는 현재 케이팝 씬에서 가장 압도적인 음악적 성과를 올리고 있는 팀이라 할 수 있다. 'Next Level'의 메가히트에 이어서 'Savage', 'Dream Comes True', '도깨비불'까지. 대중적 흥행과 작품성 양쪽을 모두 잡은 기념비적인 4연속 성공 신화다. SM엔터테인먼트의 노련한 A&R은 십수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집대성하여 가히 비대칭전력과도 같은 에스파라는 무기를 탄생시켰고, 그 가공할 만한 화력으로 2021년의 가요계를 초토화했다. 케이팝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흥미로운 사례로 남을 법한 에스파의 거침없는 활강은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던 선공개곡 '도깨비불'로 2022년의 포문을 열며 그 기세를 다시금 지속시킬 듯 보였다. 그리고 'Girls'는 멋지게 그 기대에 부응해 보이며 화려한 성공가도를 잇는다.


에스파 세계관 내의 빌런 블랙 맘바(Black Mamba)를 무찌르고 평화를 되찾으며 일련의 블랙 맘바 사가(Saga)를 마무리짓는 'Girls'는 뱀이 울부짖는 듯 강렬한 워블 베이스로 서막을 올린다. 호기로운 브라스와 함께 네 멤버들의 보컬이 차례로 교차하며 전의를 뽐내는 벌스에 이어 거친 디스토션 위로 지젤이 트리플렛 플로우(triplet flow) 래핑을 때려박는 초반 시퀀스는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 준다. 그러나 비장한 프리코러스를 지나 등장하는 코러스의 매력은 그에 비해 다소 덜하다. 세 음절의 가사를 반복해서 부르는 후렴 구조가 전작 '도깨비불'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의 늪을 영리하게 피해 오던 에스파의 첫 실수다.


그러나 다소 헐거운 코러스의 아쉬움은 'Girls'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브릿지에 이르러 거의 완벽히 해소된다. 닝닝윈터의 긴박한 보컬 솔로 이후 전투적인 신스가 치고 들어오며 난동을 부리는 브릿지가 선사하는 청각적 쾌감은 가히 놀랍다. 사이버펑크 풍의 전장에서 블랙 맘바와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에스파의 액션 활극이 고스란히 사운드로 구현된 이 구간은 어딘가 한끗이 아쉬웠던 본작의 완성도를 단번에 한껏 드높인다. 이어 물오른 기량으로 빼어난 보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윈터를 앞세운 위풍당당한 마무리까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전개다.


상대적으로 덜 캐치한 후렴과 어두운 텍스처의 사운드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첫인상은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으나, 오히려 더욱 치밀해진 기획과 정교한 프로덕션으로 기어코 다시 한 번 청자를 설득시키고야 마는'Girls'는 이야기의 최종장이라는 무게감에 걸맞는 화려한 맥시멀리즘으로 SM엔터테인먼트가 선사하는 최고의 액션 블록버스터다. 에스파라는 브랜드가 가진 폭발력은 본작을 통해 타 그룹들과의 비교를 불허하는 지점으로 솟아 올랐다.


15위

비비지, 'BOP BOP!'


걸그룹 여자친구의 해체 이후 멤버 신비, 은하, 엄지가 새로이 결성한 비비지(VIVIZ)의 데뷔곡 'BOP BOP!'의 프로덕션은 탄탄한 완성도로 무장한 채 '경력직 신입'의 노련미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환적인 재생 보컬을 시작으로 펑키한 무드의 악기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도입부는 가히 올해의 인트로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몰입도를 자랑한다. 천천히 텐션을 쌓아올리다 일순 뮤트시킨 뒤 중독적인 후렴을 펼쳐놓는 효과적인 곡 진행 청자는 저항할 수 없이 빠져든다.


세심하게 다듬은 악기들을 적재적소에 운용해 빚어낸 세련되기 그지없는 사운드와 멤버들의 탄탄한 보컬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탄생한 'BOP BOP!'은 디스코 및 레트로를 표방하며 등장한 근래의 모든 K-POP 작품들을 통틀어서도 손꼽을 만큼 정교한 짜임새와 매력적인 세련미를 갖춘 우수한 결과물이다. 때는 무모해 보였던 비비지로서의 두 번째 도전에 성공이라는 확신을 주는 최고의 출발.


14위

최강창민, 'Devil'


무겁게 내려앉는 신비로운 아카펠라 코러스가 귓가에 파고드는 순간, 어딘가 범상치 않은 작품이 등장했음을 예감한다. 천천히 텐션을 쌓아 올리다가 모든 에너지를 응집시켜 쏟아붓는 후렴에 이르러 그 예감은 확신이 된다. 탁월한 완급 조절을 선보이며 청자를 매혹시키는 압도적인 프로덕션을 등에 업고 최강창민은 때로는 관능적으로, 때로는 마초적으로 변신하며 하나의 곡 내에서 여러 톤의 보컬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노련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데뷔 18년차 아이돌의 원숙한 역량을 더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진한 무게감을 가진 빼어난 트랙.


13위

픽시, 'Villain'


다크 판타지풍의 콘셉트와 탄탄한 음악으로 중소 기획사의 걸그룹 중에서는 유달리 눈에 띄는 디스코그래피를 이어오고 있었던 픽시의 신곡 'Villain'은 속삭이는 보컬 도입부부터 귀를 사로잡는다.


독특한 보컬 디렉팅은 기묘하고 끈적한 분위기를 주는 비트와 맞물려 강력한 흡인력을 자아내며, 환상적인 화음을 두른 나른한 보컬이 글리치한 사운드에 휘감기는 코러스는 가히 놀랍도록 스타일리쉬하다. 'Don't give a F what you say / 네가 뭐라 지껄여도 난 날 완성해'라며 일반적인 걸그룹보다 더욱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다가서는 가사 역시 특기할 만하다.


본작에 이르러 픽시는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쌓아 올린 음악 세계를 비로소 완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형 걸그룹의 행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음악적 성취다. 사운드 프로덕션, 디렉팅, 콘셉트 삼박자가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Villain'은 픽시의 커리어 최고작일 뿐만 아니라, 올해 전체 케이팝 씬을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완성도를 지닌 트랙이다.


12위

레드벨벳, 'Birthday'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전작 'Feel My Rhythm'으로 대중적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잡았던 레드벨벳. 이번에는 조지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을 가져왔다. 전작과 같은 샘플링 기법이 용되었지만  방식은 상이하다. 'Feel My Rhythm'이 샘플을 그대로 메인 테마 채택하여 전면에 내세웠다면, 'Birthday'는 샘플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소리의 질감을 키치하게 변형시킨 뒤 벌스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활용한다. 루핑된 샘플과 트랩 리듬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 비비드한 톤의 사운드는 카툰풍의 앨범 커버처럼 유쾌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허나 진짜 하이라이트는 분위기가 반전되는 코러스 구간. 차진 'I can make the beat go' 콜과 함께 두꺼운 질감의 신스가 찬란하게 쏟아지며 역동적으로 출렁인다. 반음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몽환적인 코드 진행이 돋보이는 탑라인은 얼핏 둔탁한 비트에 잘 묻어나지 않는 듯한데, SM엔터테인먼트의 영리한 A&R은 그 이질감을 키치한 콘셉트의 일부분으로 승화시켜 청자를 설득해낸다. 덧붙여 쨍한 하이톤의 음색으로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조이의 존재감은 역대 최고 수준.


레드벨벳은 'Feel My Rhythm'과 'Birthday'를 통해 오케스트라 샘플을 케이팝의 컨텍스트 속에서 다루는 두 가지의 상이한 방법론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리스너들에게 구조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레드벨벳의 이 연작은 케이팝 음악의 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던 샘플링 기법의 집대성이자 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11위

RM, '들꽃놀이 (with 조유진)'


케이팝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그룹이 된 방탄소년단은 지난 6월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당분간 그룹 단위의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을 뿐 개인 활동은 여전히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속담처럼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의 역량이 이후에도 온전 발휘될 수 있을지는 물음표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오히려 그룹의 무게에 가려져 있었던 개개인의 재능을 전방위로 뽐내며 하반기를 다시금 화려하게 장식했다. 모든 것을 불태우며 두 번째 페이즈의 뜨거운 서막을 올렸던 제이홉의 '방화'로 시작해, 군입대 소식과 함께 콜드플레이와의 놀라운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의 'The Astronaut',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의 포문을 연 정국의 'Dreamers'에 이어 출격한 알엠(RM)은 4번 타자의 품격에 걸맞는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으로 그의 음악적 기량을 완벽히 각인시킨다.


가진 것과 잃은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RM의 감정선이 치밀한 트랙 배치를 통해 점진적으로 묘사되는 앨범의 흐름은 대단히 인상적인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타이틀 곡 '들꽃놀이'는 그야말로 화룡점정과 같다. 둔탁한 드럼과 드라마틱한 록 사운드가 어우러진 비트는 RM의 거칠고 낮은 톤의 싱잉 랩과 뛰어난 궁합을 보이며 감정선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밴드 체리필터의 보컬 조유진 울부짖는 듯 역동적인 가창으로 차오른 감정을 터뜨리며 트랙의 울림을 한층 증폭시킨다. 담담한 RM의 랩과 폭발적인 조유진의 보컬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들꽃놀이'의 감정적 호소력은 방탄소년단의 대표곡 '봄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다. 올해 이보다 흡인력 있는 케이팝 작품은 없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방탄소년단의 것은 방탄소년단에게 남겨두고 RM은 이제 인간 김남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섬세한 헌사를 바치며 새롭게 출발한다. 10년간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그의 손에서 찬란한 인디고색의 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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