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무대와 기행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악동뮤지션의 이찬혁. 허나 퍼포먼스의 파격성에 가려 정작 그의 첫 정규 앨범 [Error]에 대한 음악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모양새다. 이 글에서는 죽음이라는 과감한 주제를 바탕으로 담담히 써내려간 이찬혁의 이야기를 트랙리스트 순서대로 짚어 가며 해설하고 앨범 전반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앨범의 인트로인 <목격담>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쓰러진 이찬혁에게 몰려들어 웅성대는 군중들이 사고 현장에 대한 증언을 구연하는 트랙이다. 게사펠슈타인(Gesaffelstein)이나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Yeezus]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거친 신스가 둔탁한 드럼을 타고 맹렬히 출렁이는 사이버펑크 사운드는 리버브를 잔뜩 먹인 이찬혁의 몽환적인 보컬과 맞물려 강렬한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가히 놀라울 정도의 흡인력과 폭발력을 지닌 최고의 오프닝 시퀀스다. 청자는 단번에 아비규환과도 같은 교통사고의 현장으로 떨어진다.
이어 다음 트랙 <Siren>에서 이찬혁은 긴급히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호송된다. 더 위켄드(The Weeknd)의 메가히트곡 <Blinding Lights>를 닮은 레트로 신스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처럼 위태롭게 울려퍼지며, 수술실로 달려가는 긴박한 속도감은 묵직하고 촘촘한 드럼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조금 속도를 이완시키는 타이틀곡 <파노라마>에 이르러서는 끝내 내려진 사망 선고에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라며 절규하고, 신에게 단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울부짖으며 시간이 멈추기(<Time! Stop!>)를 기도하는 이찬혁의 감정선은 역설적이게도 절제된 보컬과 댄서블한 신스웨이브 비트 위에서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어찌 된 일인지 그 바람대로 마법처럼 하루가 더 주어지자, 이찬혁은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이라 되뇌이며 가죽 재킷을 차려입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긴박한 신스웨이브 트랙들이 이어지다 더 위켄드의 <I Feel It Coming>을 연상시키는 멜로우한 무드의 알앤비로 반전되며 분위기를 환기하는 노련한 전개가 청자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유지한다.
그런 면에서 청하가 연인 역의 피처링으로 힘을 보탠 여섯 번째 트랙 <마지막 인사>는 오히려 타이틀곡보다도 더욱 극의 하이라이트처럼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 비로소 진솔해진 이찬혁은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하지 못했던 고맙다는 말을 연인에게 건넨다. 내내 그를 경계하던 청하 역시 곡의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련했나 봐 / 내 잘못이야 / 그리울 거야 / 사랑' 이라며 진심을 털어놓는다. <Out Of Time>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정호연과 살가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함께 노래 부르던 더 위켄드의 노스탤지어틱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이찬혁은 이제 후회로 가득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다(<뭐가>), 그 외로운 일생 동안 곁을 묵묵히 지켜주었던 가족의 소중함(<부재중 전화>)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이 결코 외롭지 않았음을 자각한 그는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정말 원해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마주할 용기를 얻고. 겸손이라는 액자에 갇혀 억눌려왔던 개인적인 성취와 소유의 욕망을 <내 꿈의 성>에 비유해 솔직하게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죽음 앞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갈무리하여 교훈적 메세지를 전한 이후(<A DAY>) 길고도 짧았던 하루는 드디어 끝이 나고 카메라는 이찬혁의 장례식을 비춘다.
본 이베어(Bon Iver)나 칸예 웨스트의 [Jesus Is King]을 떠오르게 하는 가스펠 풍의 엔딩 트랙 <장례희망>에서 이찬혁은 영혼의 모습으로 자신의 장례식을 내려다본다. 천국에 이르러 비로소 유순해진 사자와 같은 기독교적 모티프들을 바탕으로 경건하게 진행되는 장례식 속에서 그는 유머러스한 톤을 잃지 않고 죽음을 영원한 이별이 아닌 박수와 축하로 맞는 축복으로 받아들인다('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라는 가사에서 '아쉽네'를 발음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콰이어의 찬양과 함께 이찬혁은 기쁨 속에 떠올라 그가 꿈꾸던 천국으로 떠난다.
노골적인 더 위켄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칸예 웨스트의 색채를 앞뒤로 더한 [Error]는 분명 음악적으로 크게 신선한 앨범은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서사는 더 위켄드의 [Dawn FM]을 빌려왔으며, <낙하>에서 보여주었던 창의적인 멜로디 진행도 찾아보기 어렵다. 관념적인 내용들을 건조하게 서술해 비교적 힘이 빠지는 중후반부 역시 단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은 극의 흐름에 따라 여러 장르의 문법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일정 수준 이상의 몰입력을 만들어내는데, 악기들의 질감 하나하나가 트랙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초반부의 완성도는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다.
이뿐만 아니라 이찬혁의 보컬 퍼포먼스 역시 특기할 만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데뷔 초창기의 이찬혁은 주로 이수현의 보컬 사이사이에 가벼운 랩과 코러스를 얹는 감초 역할이었지만, 본작에서는 자이언티(Zion. T)를 연상시키는 얇은 하이톤의 보컬을 안정적으로 확립하고 능숙하게 운용하며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이 한층 무르익은 모습을 보인다. 절제된 보컬로 감정선을 노련하게 전달하는 <장례희망>, <뭐가>와 같은 트랙들이 그 예시. 결론적으로 [Error]는 이찬혁 특유의 창의성이 기대만큼 충분히 드러나는 앨범은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서사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홀로 이끌어 나가는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증명해 보인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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