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에스파와 스테이씨가 열어젖힌 4세대 걸그룹 르네상스는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등이 등장한 2022년경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이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하이키나 피프티 피프티와 같은 중소형 기획사의 걸그룹조차도 음악의 완성도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대중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들처럼 아직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지만 재능과 잠재력을 이미 갖춘 채 때를 기다리는 4세대 걸그룹의 '차세대 스타' 5인을 소개해 본다.
우아 나나
씨스타, 비스트, 포미닛 등을 담당했던 안무가 김규상이 런칭한 걸그룹 ‘우아!(woo!ah!)’의 리더 나나는 이 리스트 가운데 가장 익숙할 이름이다. 아이돌 활동에 더불어 다양한 웹드라마에도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나는 그룹 내에서 리더와 메인 댄서를 맡고 있는데, 유니크한 중저음의 음색으로 음악 내적으로도 뛰어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처럼 4세대 아이돌 중에서도 손꼽히는 비주얼과 빼어난 실력을 겸비한 그녀는 한 세대에 한두 번 나온다는 '중소의 기적'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인재다. 소속그룹 우아가 인지도가 매우 낮은 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케이팝 팬들에게 서서히 그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매우 고무적이다. 최근 방영된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 퍼즐>에서 최종 준우승을 기록하며 프로젝트 그룹 엘즈업(EL7Z U+P)으로 데뷔하게 된 나나의 행보를 주목하라.
키스오브라이프 나띠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며 걸그룹 트와이스의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SIXTEEN)>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알리고, Mnet 서바이벌 <아이돌학교>에 출연하기도 한 나띠(NATTY)는 아마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케이팝 스타’의 자질을 지닌 가장 유력한 인물일 것이다. 긴 방황을 거쳐 S2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KISS OF LIFE)로 데뷔한 나띠는 우리의 기억 속 앳된 모습을 벗어던지고 실력과 비주얼 모두 한층 성숙해져 돌아왔다.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 추이를 보이고 있는 그녀의 솔로곡 “Sugarcoat”는 나띠의 음악적 역량이 집약된 작품이다. 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짚어내는 노련한 가창과 세련된 음색, 탁월한 무대 장악력, 여유로운 퍼포먼스는 감히 보아(BoA)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기술적인 면에서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채로 등장한 나띠는 오랜 시간 동안 명맥이 끊겨 있던 여성 솔로 댄스 아티스트의 계보를 이을 적장자로 보인다. 그녀는 명백히 2023년 당신이 가장 주목해야 할 케이팝 아티스트 중 하나다.
퍼플키스 수안
현대 팝 음악에서 보컬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가창력이 아닌 음색이다. 대중이 원하는 새 시대의 팝스타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나 셀린 디온(Celine Dion)이 아닌 핑크팬더레스(Pinkpantheress)다. 그러나 가끔씩 음색과 가창력 모두를 지닌 빛나는 재능이 매우 드물게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퍼플키스의 수안이다. 마마무가 소속된 RBW가 2021년 새롭게 선보인 걸그룹 퍼플키스의 메인보컬 수안은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lish)를 연상시키는 허스키한 보이스를 지녔는데, R&B 소울에 가까운 독특한 창법과 맞물려 일반적인 아이돌 보컬과는 전혀 다른 결의 인상을 준다.
현재 4세대 걸그룹 중 가장 유니크한 보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의 진가는 유튜브에서 백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Dance Monkey” 커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등 다양한 외부 프로그램에도 솔로로 출연하며 점차 더 넓은 세상으로 그 역량을 펼쳐 보이고 있는 수안의 향후 행보를 주목해 본다.
라잇썸 나영 / 빌리 하람
케이팝 산업은 아이돌에게 다양한 능력을 요구한다. 기본이 되는 비주얼과 노래/댄스 실력, 예능감, 인성에 이르기까지. 특히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가장 큰 비주얼과 노래 실력을 동시에 갖춘 인재를 찾기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주얼 메보(비주얼+메인보컬)‘는 일반적으로 가장 희귀한 유형인데,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비주얼 메보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다. 대표적으로는 소녀시대의 태연과 (여자)아이들의 미연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인데, 그를 이어 등장한 라잇썸의 나영과 빌리의 하람은 4세대 걸그룹이 배출한 몇 안 되는 ‘비주얼 메보’ 중 하나다.
비비드하고 걸리쉬한 음색을 지닌 라잇썸의 나영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걸그룹 보컬이다. 같은 소속사(큐브엔터테인먼트)의 선배 그룹 (여자)아이들의 메인보컬 미연과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디렉팅의 흔적이 엿보인다. 데뷔곡 "Vanilla"나 후속곡 "VIVACE"는 일렉트로니카 비트의 비중이 커 그녀의 기량이 조명받을 여지가 부족했으나, 상대적으로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ALIVE"에서는 존재감이 한층 살아나는 모습이다. 발성과 호흡이 좋아 업비트의 댄스곡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라이브를 소화하는 나영의 잠재력은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간판 멤버로 손색이 없다.
반면 빌리의 메인보컬 하람은 성숙한 음색과 탄탄한 발성이 돋보이는 멤버로, 일반적인 걸그룹의 문법보다는 발라드나 뮤지컬에 가까운 보컬이다. 데뷔곡 “RING X RING”처럼 무겁고 긴박한 분위기의 트랙에서 그녀의 보컬은 가장 밝은 빛을 발하며, ”RING my bell”이나 “Nevertheless”와 같은 곡에서는 폭발적인 고음 애드리브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람의 유니크한 보컬은 호러 미스터리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장르의 곡들을 수록하는 빌리의 디스코그래피를 굳건히 지탱하는 일등 공신이다.
이외에도 탁월한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바탕으로 <퀸덤 퍼즐>에서 우승을 차지한 하이키의 휘서, 작사/작곡과 안무 창작 능력까지 겸비한 트리플에스의 박소현 역시 4세대 걸그룹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어내는 건 제작자의 역량에 달려 있는 만큼, 이 글에서 거론된 재능들이 적절한 음악과 콘셉트를 만나 언젠가 비로소 그 날개를 펼칠 수 있기를 소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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