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순위권에 선정되지 못한 K-POP 7곡
지난 2019년은 훌륭한 K-POP 곡들이 쏟아져 나왔던 한 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20곡의 노래들을 소개한 지난 기획의 끝마무리로, 아쉽게 순위 내에 선정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꼭 거론될 만한 가치가 있는 7곡의 노래들을 소개해 본다.
오마이걸의 '다섯 번째 계절'은 2019년 K-POP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트랙이다. 대중적으로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K-POP 마니아들과 비평가들이 이 싱글을 높은 순위에 올려놓는 등 비평적으로도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디블루는 '다섯 번째 계절'을 2019년 결산 순위권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트랙이 가진 뛰어난 매력은 무시할 수 없어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순위외 후보를 소개하는 본 글을 통해서라도 이 곡을 언급하고자 한다.
마이너 펜타토닉 음계를 하강하는 멜로디를 가진 '다섯 번째 계절'의 후렴은 일본 가요의 전형적인 패턴을 똑 닮은 코드 진행으로 선명한 동양풍의 색채를 획득한다. 이에 더해 서정적이지만 박력 넘치는 신스 스트링을 적극적으로 채용함으로써 '비밀정원' 부터 내려온 오마이걸의 시그니처인 일본풍의 음향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내는데, 이 곡을 K-POP의 바운더리 내에 머물게 하기 위해 작곡팀은 하이햇을 잘게 쪼개 빠르게 채워 넣는 등 EDM의 리듬을 차용하고 다양한 변주를 주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큰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기는커녕 튠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선율 자체도 '비밀정원' 때보다 미약해져 흐릿한 인상으로 남고 만다.
'다섯 번째 계절'은 분명 독특한 매력을 지닌 개성적인 곡이고, K-POP 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노래도 아니다. 오마이걸의 음악적 색채를 어떻게 확립하고 효과적으로 구현해낼 지에 대해 프로듀서진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화성학적 요소와 리듬 설계를 통해 나름 정교하게 배치했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보컬과 랩은 미숙함을 감출 수 없으며 멜로디와 사운드, 리듬의 설계와 위력에서는 미흡한 점이 드러난다. 오마이걸이 뚜렷한 음악적 노선으로 지금껏 항상 균일하게 높은 퀄리티의 곡을 내놓아 왔던 팀인 만큼,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언젠가는 분명 대단한 완성도의 싱글을 가져오리라 믿어 본다.
지드래곤 이후 명목이 끊긴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의 계보는 누가 이을 것인가? 수많은 이들이 어설픈 작곡 능력을 어필하며 후계자를 자처했지만 대부분이 역량 미달에 그친 현 시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단연코 (여자)아이들의 소연과 펜타곤의 후이다. 후이가 작곡한 '빛나리'와 '청개구리' 연작은 펜타곤에게 2018년 가장 돋보이는 음악적 성취를 안겨 주었다. 이미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히트곡 'Never'와 워너원의 데뷔곡 '에너제틱'으로 프로듀싱 능력을 입증해 보인 바 있는 후이는 펜타곤을 음악적으로 지켜볼 만한 잠재력이 있는 그룹으로 단번에 바꾸어 놓았고, 이어 발표한 '신토불이' 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선보였다.
펜타곤 특유의 유머러스한 언어가 퓨처 하우스 기반의 사운드에 얹힌 '신토불이'의 말끔한 만듦새는 흠을 잡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후이의 전작 '에너제틱'과 흡사한 사운드와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기타를 사용하는 래퍼 한요한과 최근 힙합과 퓨처 베이스를 접목시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는 프로듀서 Minit이 참여하여 사운드의 맛을 더했는데, 음향 자체는 더욱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빚어졌지만 펜타곤의 강점이었던 캐치하고 직선적인 멜로디는 찾아볼 수 없어 '에너제틱'의 열화판처럼 느껴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힙합 프로듀서 기리보이와 협업한 후속작 '접근금지'에서는 캐치한 멜로디는 복구시켰지만 사운드 디자인 면에서 다시 퇴보한 모습을 보여 멜로디와 사운드 두 가지 요소를 균형감 있게 조화시키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과도기를 이겨내고 더욱 성숙한 프로듀서로 성장할 후이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 본다.
선명한 퓨처 베이스 곡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의 멜로디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앳된 목소리로 'Who You?'를 부르짖는 브릿지는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만 브릿지로 집중을 끌고 터뜨려주어야 하는 코러스는 정작 각기 다른 파트를 얼기설기 이어붙인 듯한 난잡한 구성으로 정돈되지 못한 감상을 안긴다. 이래서야 노래가 끝나고 난 뒤 뚜렷한 인상이 남기 어렵다. 그럼에도 세련된 사운드와 곳곳에 배치된 캐치한 멜로디의 존재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여정을 주목하게 한다.
K-POP에서 가장 캐치한 곡을 만드는 그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위키미키의 이름을 거론해야 한다.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인 'Picky Picky'는 다소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벌스에서도 드럼을 빽빽하게 배치하거나 장난기 넘치는 킬링 포인트를 배치함으로써 지루함 없이 곡을 이끌어가고, 코러스에서는 선명한 멜로디와 함께 'Picky'라는 어절을 반복하며 귀를 사로잡는다. 다만 어김없이 파괴력 넘치는 멜로디에 비해 사운드는 크게 인상적인 지점 없이 멜로디를 받쳐주는 데 머무른다. 풍부한 베이스와 보컬 찹을 조금 더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Love Poem'이 시라면 'Blueming'은 에세이다. 재치 넘치는 가사로 꾹꾹 눌러 담은 아이유의 성장은 로킹한 리듬을 타고 흐른다. 여유로운 기타 리프로 진행되는 벌스를 건너 코러스에서는 잔뜩 디스토션을 먹인 강렬한 기타 드라이브에 귀를 때리는 퍼커션으로 청자를 집중시키는 'Blueming'은 이후 '에잇'과 'Into The I-LAND'로 이어지는 '로커 아이유'의 서막인 만큼 신선하고 청량하지만 사운드에 비해 멜로디가 다소 미약하고 인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노랫말이나 'Love poem' 앨범의 서사에서 이 곡이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Blueming'의 완성도는 무시할 수 없이 탄탄하다. 2019년의 K-POP을 논할 때 흥미롭게 거론되어야 할 트랙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에이티즈(ATEEZ)는 EDM 뮤직에 대한 일관된 지향을 보여온 몇 안 되는 K-POP 그룹 중 하나이다. 힙합 리듬 위에 밝고 가벼운 피아노로 벌스를 이끌어 나가다가 코러스에서 무겁고 두꺼운 브라스를 떨구는 'ILLUSION'은 그들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가장 캐치한 싱글이다. 그루비하게 철썩이는 드랍과 함께 흥겨운 코러스 멜로디가 등장하면 도저히 트랙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서야 배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