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은 훌륭한 K-POP 곡들이 쏟아져 나왔던 한 해였다. 본 기획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20곡의 노래들을 소개한다. 순위와 점수는 비례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참고 용으로만 활용하기를 권한다.
20위
태민,'WANT'
'무브병'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내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MOVE'나 빼어난 완성도를 선보였던 정규 데뷔작 'Press Your Number'의 연장선상에 있는 'WANT'는 전작들에 비해 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디스코풍의 킥과 베이스, 날카롭게 긁어주는 신디사이저가 리드미컬하게 그루브를 형성하고 관능적인 태민의 보컬이 감각적인 무드를 점차 쌓아올리다 마침내 폭발시키는 곡 후반부의 흡입력은 어쩔 수 없이 태민을 '더 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태민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택했고, 이번에도 그 전략은 마찬가지로 유효했다.
19위
(여자)아이들,'Senorita'
'LATATA'와 '한(一)'으로 프로듀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소연의 역량을 다시금 입증하는 훌륭한 싱글. 멜로디메이킹에 있어서는 기성 프로듀서들을 포함해도 국내 최고 수준이다. 남미풍의 멜로디를 맛 좋게 소화하는 (여자)아이들의 보컬이 캐스터네츠처럼 스페니쉬 뮤직의 요소들을 차용한 언플러그드 비트와 매끄럽게 어우러진다. 쿨한 피아노와 도도한 프리코러스는 흥겨운 리듬감을 형성하며 코러스에 이어 간주에 등장하는 힘찬 브라스는 화룡점정. 이로써 'Senorita'는 개성적인 매력을 지닌 웰메이드 라틴 팝 넘버이자, (여자)아이들이라는 팀의 잠재력에 주목해야 함을 증명하는 뚜렷한 증거가 되었다.
18위
IZ*ONE, '비올레타'
이국적인 스트링 사운드를 내세웠던 '라비앙로즈'에 비해 후속작 '비올레타'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운드를 운용하는 싱글이다. 도박수를 던지며 당당하게 출사표를 내밀었던 아이즈원은 두 번째 싱글을 통해 더 많은 대중에게 친숙히 다가갈 수 있는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사운드로 외연을 넓히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딥 하우스 스타일의 베이스를 조화롭게 배치하며 청각적 쾌감을 선사하고, 한편으로는 속도감 있게 박자를 쪼개는 드럼 위에 공간감 넘치는 스트링이 웅장하게 터지는 프리코러스에서는 '라비앙로즈'의 기억을 불러낸다. 이를 통해 소포모어 징크스를 영리하게 빗겨나간 아이즈원의 두 번째 싱글 '비올레타'는 신인 그룹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노련한 프로듀싱으로 완성된 웰메이드 EDM 넘버가 되었다.
17위
CL, '+ONE AND ONLY180228+'
2NE1의 CL이 여성 솔로로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실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아티스트임을 부정하는 시선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개성적이고 강렬한 멤버들이 모인 2NE1에서도 CL은 가장 뛰어난 존재감을 보이는 인물이었으며, 그 G-DRAGON과 어느 정도 비슷한 포지션에 위치해 있을 정도였으니 더한 설명은 필요치 않다. 그러나 그룹의 해체 이후 그녀는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고, 점차 씬에서의 입지와 존재감을 잃어가는 듯 했다. 그런 상황에서 2019년 12월경 조용히 발매된 그녀의 미니앨범이 바로 '사랑의 이름으로' 였다. 큰 대중적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앨범의 싱글들은 준수하고 고른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곡은 '+ONE AND ONLY180228+'였다. '나 같은 여자는 없어' 라고 선언하며 저돌적인 드랍에 몸을 맡기는 CL의 모습은 자만보다는 매력적인 당당함으로 와닿는다. CL이라는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와 카리스마를 고스란히 담아낸 이 싱글은 오랜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향후 그녀의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16위
청하, '벌써 12시'
2019년 1월에 발매된 곡이지만 연말까지 그 존재감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직선적이고 정직하게 뻗어 나가는 청하의 보컬과 투박한 플루트 사운드의 합이 꽤나 잘 맞아떨어지는 '벌써 12시'는 매혹적인 싱글이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모자람 없이 적당한 만큼만 채워 넣은 사운드에 직관적이고 뚜렷한 가사와 깔끔한 보컬 디렉팅이 만나 준수한 EDM 넘버를 완성했다.
15위
마마무, 'HIP'
마마무에게 2019년은 누구보다 바쁜 한 해였다. 멤버들의 솔로 싱글부터 완전체 컴백, 그리고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던 Mnet <퀸덤>에서의 우승까지. 그러나 이처럼 잦은 활동으로 초래된 과한 이미지 소비 탓에 마마무라는 팀에 대한 대중들의 흥미가 어느 정도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고, 음악적으로도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마마무는 'HIP'이라는 싱글 하나로 그러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킨다. 박자를 잘게 쪼개는 현란한 드럼과 도도한 피아노 비트 위에 여유롭게 보컬과 랩을 얹는 이 싱글은 부정할 수 없이 스타일리시하고 노련하다. 마마무는 자신들이 K-POP 걸그룹 중 가장 높은 곡 이해도와 소화력을 가진 팀임을 'HIP'을 통해 다시금 입증했다.
14위
Red Velvet, '음파음파'
실험성에 천착하다 하나의 밈이 되어버린 '짐살라빔'의 실패를 의식했는지 레드벨벳은 거의 진부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석적인 곡을 들고 왔는데, 그것이 바로 웰메이드 팝 곡 '음파음파'이다. 선명하고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재치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데,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매끈하다. 독창성은 부족하지만, 깔끔한 프로듀싱 덕분에 굉장히 듣기 좋은 서머송이 되었다.
13위
ITZY, 'ICY'
결코 '다르지 않은' 사운드로 '달라달라'를 외쳤던 공허한 전작과 달리 'ICY'는 버라이어티가 넘치는 즐거운 곡이다. 박력 있게 출발하는 인트로에 이어 텐션을 놓치지 않고 끌어올리는 벌스, 역동적인 드럼과 함께 하이노트를 찌르며 에너지를 불어넣는 프리코러스, 그리고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낙차가 크게 떨어지는 코러스는 모두 수려하고 스타일리시하다. 이에 더해 곡의 긴장감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브릿지 파트는 프로듀싱이 가장 인상적인 지점 중 하나다. 힘찬 유니즌 코러스로 사운드의 빈틈까지 꽉꽉 채운 'ICY'는 현 시점에서 ITZY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싱글이다.
12위
EVERGLOW, '봉봉쇼콜라'
신인 걸그룹 에버글로우는 데뷔곡인 '봉봉쇼콜라' 하나만으로 다른 팀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높은 지점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웅웅대는 베이스와 함께 힙합풍의 비트로 진행되는 벌스와 박진감 넘치는 클랩으로 텐션을 고조시키는 프리코러스 이후 메인 코러스가 등장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파트다. 펜타토닉 스케일의 세련된 멜로디를 납작하게 찍어 눌러 주조한 이 코러스는 놀랍도록 캐치하고 스타일리시하다. 흡입력 있는 구성 끝에 이 매혹적인 코러스에 도달하고 나면 '봉봉쇼콜라'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2019년의 K-POP 싱글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사라진다.
11위
세븐틴, 'Home'
'자체 프로듀싱' 아이돌임을 표방하는 세븐틴은 그 프로모션에 비해 부족한 음악적 완성도를 보였다. 그나마 평이한 수준에 미치는 곡은 '만세'나 '붐붐' 정도였으며, '아주 NICE' 같은 곡들은 수준 이하의 퀄리티로 실망을 안겼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며 원숙해진 역량을 증명해 보이듯 2019년에 이르러 세븐틴은 드디어 뛰어난 완성도의 곡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는데, 그것이 바로 노련한 완급 조절과 깔끔한 사운드 디자인이 돋보이는 'Home'이다.
미니멀한 구성이 돋보이는 퓨처 베이스 'Home'은 호소력 짙은 멜로디와 멤버들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구조적으로극대화한다. 보코더로 변형을 가해 오히려 따뜻한 인상을 주는 프리코러스가 점차 텐션을 고조시키다 코러스에 이르러 두 마디 동안 갑작스레 사운드를 비우는데, 이 낙차 큰 코러스 덕에 곡이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획득한다. 이어 등장하는 드랍은 매우 캐치한 멜로디를 대중적인 신스 사운드로 풀어내며 곡의 매력을 더한다. 세븐틴은 'Home'으로 드디어 '자체 프로듀싱 아이돌' 이라는 슬로건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근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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