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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Feb 19. 2021

[결산] 2020 K-POP 올해의 노래: 1~10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흔든 2020년에도 여전히 K-POP은 다채로운 양질의 음악을 배출했다. 본 결산에서는 2020년 1월 1일부터 2020년 12월 31일 사이에 발매된 모든 K-POP 아이돌의 노래 중 '올해의 노래' 20선을 선정하였다. 


* 앨범의 타이틀곡 또는 싱글컷된 곡만을 선정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록곡들은 선정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정라리의 케이팝읽기'는 음악과는 별개로 리뷰 대상 아티스트의 논란과 범죄 행위를 일체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글의 'K-POP'은 한국의 대중가요 모두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K-POP 아이돌 가수의 음악만을 칭하는 좁은 의미에서의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아이유, 지코 등 이제는 보편적으로 '아이돌'로부터 다소 멀어졌다고 판단되는 아티스트는 선정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본 글의 순위는 정라리 개인이 선정하고 집필한 것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점수는 발매 당시에, 순위는 2021년에 매겨졌기 때문에 순위와 점수는 비례하지 않으며 그저 가시성과 편의성을 위해 병기하였습니다.

본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비난이 아니라 케이팝 씬에 대한 깊고 넓은 관심을 촉구하고 풍부한 논의를 생산하는 것임을 유념하여 읽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DAY6, [The Book of Us : The Demon], JYP엔터테인먼트, 2020

10위

데이식스, 'Zombie'


언제부터인가 록(Rock)은 메인스트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200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대중가요 시장을 독식하기 시작한 K-POP 음악이 주로 전자음악의 작법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FT아일랜드나 씨엔블루와 같은 이른바 '밴드형 아이돌'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소수에 그쳤고, AOA나 원더걸스처럼 일시적인 콘셉트로 끝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엔플라잉, 원위 등 '밴드형 아이돌'의 명맥은 희미하게나마 계속해서 이어져 왔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팀이 바로 JYP엔터테인먼트의 데이식스(DAY6)였다. 매달 신곡을 발매하는 'Every DAY6' 프로젝트나 다양한 커버곡 영상 등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점점 탄탄한 팬덤을 구축해 나간 그들은 2020년 미니앨범 [The Book Of Us : The Demon]을 발매하게 되는데, 그 타이틀곡 'Zombie'는 지난 5년간 쌓아 온 음악적 성숙을 증명하듯 가히 커리어의 최고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인상적인 트랙이었다.


'Zombie'는 전형적인 밴드 음악의 문법에 무채색의 가사를 얹은 트랙이다. 록을 기반으로 알앤비나 EDM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하여 생생한 역동성을 주조해 내는 구조를 취하던 지난 디스코그래피와 대비되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흡인력이 배가 되어 다가온다. 촉촉한 신디사이저와 드럼 비트로 차근차근 텐션을 쌓아 올리다가 1절이 끝나는 순간 강렬한 기타가 치고 들어오며 분위기가 180도 전환되는 드라마틱한 구성은 청자를 곡에 완전히 몰입하게끔 하는 신의 한 수. 이에 더해 진솔한 노랫말을 개성적으로 소화해 내는 원필과 Jae, 성진, Young K 네 명의 보컬은 가지각색의 매력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뽐낸다. 크로스오버 시대에 도리어 록 음악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을 택한 데이식스는 결국 올해 가장 설득력 넘치는 트랙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K-POP의 미래는 어쩌면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형태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자친구, [回:Song of the Sirens], 쏘스뮤직, 2020

9위

여자친구, 'Apple'


직관적인 팀의 이름처럼, 여자친구는 정직한 그룹이다. 데뷔 이후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 학교 3부작은 자극적인 콘셉트와 현학적인 가사 없이 기본에 충실한 음악으로 승부를 보았고, 그 바탕에는 빗 속에서 몇 번이고 넘어지면서도 꿋꿋이 무대를 계속하던 열정과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여자친구는 쉽사리 대체자를 찾기 어려운 유니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정공법으로 밀고 나갈 수만은 없는 법, 커리어의 중반에 이른 그들은 소속사 쏘스뮤직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합병과 함께 기존의 청순한 이미지를 버리고 무려 '마녀'라는 무시무시한 콘셉트를 들고 나타났다. 파격이라기에는 무리수에 가까운 변화로 다소의 실망을 안겼던 'FINGERTIP'이 연상되는 듯하지만 실수는 두 번 반복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자친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력 - 즉 높은 완성도의 음악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Apple'은 그간 여자친구가 보여주었던 음악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곡이다. 8분의 6박자로 흐르는 스타일리쉬한 셔플 그루브의 슬랩 베이스는 오히려 f(x)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몽환적인 기타 아르페지오가 만들어내는 공간감 넘치는 음향이 이윽고 처음의 이질감을 기분 좋은 신선함으로 바꾸어 낸다. 또한 화음을 한껏 투입해 운용한 레트로 질감의 PCM 신디사이저는 매끈하게 빚어낸 멜로디라인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사운드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한다. 마녀들의 노랫소리를 형상화한 보컬 찹 사이로 드럼이 떨어질 때 동시에 조용히 단어를 읊조림으로써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코러스는 곡의 백미. 여자친구라는 팀의 콘셉트 변화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Apple'이 그 파격적인 변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설득력을 지닌 완성도 높은 트랙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에이프릴, [Da Capo], DSP미디어, 2020

8위

에이프릴, 'LALALILALA'


'LALALILALA'가 이 리스트에서 가장 새로울 게 없는 트랙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시작해야겠다. 전자음을 기반으로 한 사운드에는 장르적으로 그다지 신선하게 느껴질 요소가 없으며, 독특한 악기 활용으로 개성을 부여하려 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가사는 별, 빛, 꿈 등 K-POP 음악에서 너무나도 흔히 사용되는 시어들을 활용했고 콘셉트 역시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LALALILALA'가 2020년의 K-POP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인 이유는 그동안 에이프릴이 보여 왔던 음악적 기조에 기인하고 있다.


데뷔곡 '꿈사탕'에서부터 전작 '예쁜 게 죄'에 이르기까지 에이프릴의 디스코그래피는 한결같이 이지-리스닝(Easy-listening) 음악을 지향하고 있었다. 독특한 장르를 택하는 실험적인 시도보다는 밝고 대중적인 사운드 위에 직관적인 멜로디를 얹는 에이프릴 특유의 작법은 어찌 보면 가장 정석적인 접근법이라 볼 수 있겠으나, 여자친구를 연상시키는 스트링을 활용한 '봄의 나라 이야기'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멜로디의 힘이 미약하고 곡의 만듦새 역시 치밀하지 못했던 탓에 오히려 진부하다는 인상만을 낳고 말았다.


그러나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에이프릴은 자신들의 음악적 기조를 버리지 않았고, 확연히 파워업된 짜임새를 가진 'LALALILALA'로 비로소 모두를 설득시켰다. 다채로운 음향을 엮어 넣어 화려하게 꾸며낸 사운드는 매 섹션마다 극적으로 변주되며 청자를 환상적인 꿈과 별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에 더해 전작들과 달리 확실한 파괴력을 지닌 후렴구 멜로디는 그 어느 때보다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별들의 숫자만큼만 나를 떠올려줄래'와 같이 뻔한 단어들로 뻔하지 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시적인 노랫말은 화룡점정.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차별화를 꾀하는 경향이 있는 최근의 음악계에서 '새롭지 않아도 이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끝내 증명해 보인 에이프릴의 행보가 시사하는 의미는 그리 가볍지 않을 것이다.



유키카, [서울여자], ESTIMATE, 2020

7위

유키카, '서울여자'


70~80년대 일본 버블경제 시기 나타난 시티 팝(City Pop)은 사실 독자적인 음악 장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AOR(Adult-Oriented Rock)의 영향을 받아 스무드 재즈, 펑크, 디스코 등 여러 장르를 섞어 만든 음악 사조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티팝이 가지고 있는 '쿨'하고 '힙'한 감성-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머릿속에 펼쳐지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반짝이는 도시의 야경처럼-은 분명히 다른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티팝만의 매력이었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탄 끝에 2017년 무렵부터 한국에서도 다시금 시티팝 매니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백예린이 시티팝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미니앨범 [Our love is great]의 타이틀곡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로 멜론 차트 최상단을 정복한 2019년에 이르러서는 시티팝은 '비주류 음악 중에 가장 주류인 음악' 정도의 포지션으로까지 올라오게 된 듯 보인다.


그 흐름을 타고 K-POP 씬에도 본격적인 '시티팝 가수'가 등장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프로젝트 걸그룹 '리얼걸 프로젝트'와 JTBC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믹스나인> 출신의 일본인 솔로 아티스트 유키카다. 유키카는 K-POP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시티팝 장르를 메인으로 내세우며 등장했고, 일관된 음악 노선과 우수한 퀄리티에 힘입어 데뷔 이후 발매한 두 싱글 '네온'과 '좋아하고 있어요'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다양한 웹 예능에서의 활약으로 인지도를 본격적으로 끌어올린 다음 유키카는 2020년 첫 번째 정규앨범 [서울여자]를 발매하게 된다.


동명의 타이틀곡 '서울여자'는 우리가 그녀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구현하는 훌륭한 트랙이다. 시작하자마자 꽉꽉 채운 시티팝 사운드가 내달리고, 적절히 배치된 악기와 백그라운드 보컬이 벌스의 빈틈을 촘촘하게 메꾸며 트랙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리버브를 잔뜩 먹여 '서울여자'를 외치는 후렴 사이로 아련한 신디사이저가 치고 들어오는 정석적인 구성에 더해 다양한 변주를 동원하여 드라마틱하게 곡을 전개하는 세련된 프로듀싱이 돋보인다. 유키카라는 이름을 또렷이 각인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웰메이드 트랙이다. K-POP의 영역에서 시티팝을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 낸 어엿한 서울여자 유키카의 활약으로 2020년의 K-POP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다.



Stray Kids, [GO生], JYP엔터테인먼트, 2020

6위

스트레이키즈, '神메뉴'


최근 K-POP의 트렌드 중 하나가 된 자체 프로듀싱 아이돌 중에서도 돋보이는 성과를 올리고 있는 그룹 스트레이키즈. 대망의 첫 번째 정규앨범 타이틀곡의 제목은 '神메뉴'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새로울 신'이 아니라 'God'을 뜻하는 '신'이다. 요리사 복장을 차려입고 '뭘 시켜도 오감을 만족시키는' 메뉴를 가져왔다며 자부하는 스트레이키즈의 스웨거는 얼핏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노래를 듣고 나면 그들의 자신감이 탄탄한 음악의 완성도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新메뉴'의 전개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묵직한 비트로 강렬하게 귀를 사로잡다가도 돌연 사운드를 비워 내며 몰입을 유도하는 탁월한 완급 조절 덕에 트랙의 긴장감이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된다. '뚜뚜뚜뚜'나 '이게 우리 탕 탕 탕'과 같은 직관적인 훅으로 텐션을 더욱 달아오르게 하는 솜씨도 일품. 사운드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퍼포먼스 역시 특기할 만한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래퍼 라인이다. 창빈은 저돌적인 래핑으로 인트로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필릭스는 강렬한 로우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을 만들어낸다.


요리사 콘셉트를 전면적으로 차용한 가사는 지나치게 컨셉츄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사운드 자체만으로는 마땅한 개성을 찾기 어려운 본 트랙에 확고한 인상이 깃들 수 있었다. 자체 프로듀싱 아이돌이라는 간판만 내걸고 수준 이하의 결과물을 내놓는 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음악적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스트레이키즈의 커리어 최고작 '神메뉴'. 제목의 '신'이 '새로울 신' 자가 아닌 것처럼 트랙 자체에 새로운 맛은 없지만, '신메뉴'라는 제목을 자신 있게 내걸 수 있을 정도의 우수한 트랙임은 분명하다. 그 '신' 자가 '귀신 신' 이든 '매울 신'이든 말이다.



(여자)아이들, [I trust], 큐브엔터테인먼트, 2020

5위

(여자)아이들, 'Oh my god'


Mnet의 걸그룹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퀸덤>은 오마이걸과 (여자)아이들이라는 두 개의 팀을 본격적으로 대중의 시야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미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 온 두 팀에게 드디어 체급을 한 단계 스텝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주로 악기와 구성 면에서 개성적인 프로덕션을 보여 주었던 오마이걸과, 걸그룹의 음악에는 낯선 장르인 붐뱁 힙합을 차용한 'Uh-Oh', '암사자(Lioness)'가 아닌 '사자' 자체가 되기를 택한 'LION' 등에서 신선한 접근법을 제시했던 (여자)아이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K-POP 음악의 클리셰를 비트는 것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퀸덤> 이후 오마이걸과 (여자)아이들, 두 팀의 행보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전자는 '살짝 설렜어'를 통해 오히려 클리셰로 회귀함으로써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 반면 후자, (여자)아이들은 달랐다. 모든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발매된 'Oh my god'은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클리셰를 부수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들이 행해 왔던 것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일지 모를 방식으로.


음산한 종소리로 포문을 여는 'Oh my god'의 인트로에서는 민니의 몽환적인 보이스가 신비로운 무드를 형성한다. 이윽고 전소연은 이 무드를 우아한 보사노바풍의 리듬으로 단번에 깨 버리고는 'LION'을 닮은 프리코러스로 텐션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텐션이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무거운 808 베이스와 함께 청자는 급격한 하강을 경험한다. 후렴이 끝난 뒤 2절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리듬을 회복한다. 이처럼 여러 개의 이질적인 테마는 곡 안에서 번갈아 나타나다 후반부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로 봉합되어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데, 이 실험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성은 청각적인 쾌감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노랫말과 어우러지며 서사적인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Oh my god'의 가사는 독특하다. 얼핏 사랑 노래인 듯 보이기는 하지만, 이성(남성)에 대한 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걸그룹의 음악에서는 이례적으로 동성을 가리키는 '그녀'와 'She'라는 어휘가 집중적으로 활용된다. 이 의문은 슈화가 동성애를 상징하는 메타포-'짙은 보라색' 향기-를 온몸에 물들이는 브릿지에 이르러 해소된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려하면, 어째서 사랑에 대해 노래하면서 'Oh god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줬나요'처럼 화자가 비탄에 빠져 있는지 이제야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화자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절망에서 벗어나 '이게 죄라면 벌이라도 아주 달게 받지', '그 누가 뭐라 해도 fall in love' 등의 라인을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각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였음을 선언한다. 이는 사운드 면에서 이질적인 두 가지의 섹션(벌스/후렴)이 비로소 하나로 맞물리는 후반부를 통해 음악적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K-POP 음악에서 금기시되어 온 동성애의 서사를 예술적으로 그려낸 'Oh my god'은 (여자)아이들의 역량에 다시 한 번 감탄케 하는 2020년 최고의 실험이다.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 7], 빅히트엔터테인먼트, 2020

4위

방탄소년단, 'Black Swan'


방탄소년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K-POP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높아진 위치에는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르듯, 그들의 어깨는 그 성공의 무게만큼의 부담감을 감당해야만 하게 되었다. 데뷔 때부터 '꽃길'을 걸었던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이 아니었던 그들이기에 그 괴리감은 더욱 크게 다가왔고, 수많은 곡들의 가사를 통해 그 버티기 어려운 고충을 토로했다. 방탄소년단은 이제 단순한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그들은 젊은 세대의 상징이고, 글로벌 문화의 현존이다. 이제 그들에게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서의 한 차원 더 높은 성찰과 고뇌가 요구된다. 이제 그들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말 그대로 전세계가 방탄소년단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 변화에 응답하듯 방탄소년단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동양풍으로 어레인지된 기타 소리와 트랩 힙합의 킥 스네어가 조화롭게 맞물리는 'Black Swan'은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만듦새를 자랑한다. 같은 이모 힙합 장르의 전작 'FAKE LOVE'에서 과한 점은 덜어내고, 부족한 점은 채워 넣고, 우수한 점은 그대로 유지한 훌륭한 후속작이다. 또한 프로덕션의 압도적인 퀄리티만큼 주목해야 할 것은 노랫말이다.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죽음은 무용수가 춤을 그만둘 때다. 그리고 이 죽음은 훨씬 고통스럽다." 라는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의 명언을 인용하며 포문을 여는 'Black Swan'의 첫 번째 벌스는 자신들이 더는 음악을 들을 때 심장이 뛰지 않게 되었음을 토로한다. 깊은 늪과도 같은 절망에 빠진 그들이 몸부림 끝에 깨어난 장소는 다름 아닌 작업실과 스튜디오였다. 고통스러운 첫 번째 죽음을 거쳐 방탄소년단은 비로소 '검은 백조'로 다시 태어난다. 


일반적인 백조는 아름답지만 얕은 물에서만 서식하며 잠수도 하지 않은 채 주변에 자라난 수생식물만을 먹고 산다. 음악인으로서의 자각과 열망 없이 명예와 인기만을 누리며 커리어를 관성적으로 이어 갈 뿐인 수많은 아이돌들은 백조에 해당한다. 그러나 깊고 어두운 물 속으로 잠수하며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을 통해 수면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찾아낸 백조는 어둡지만 성숙한 빛을 가진 'Black Swan'으로 거듭난다. 그래서 괴롭고 힘겨운 고뇌와 성찰을 통해 끝내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깨워 낸 방탄소년단의 깃털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검은색이다.



공원소녀, [the Keys], 키위미디어그룹-MILES, 2020

3위

공원소녀, 'BAZOOKA!'


f(x)가 모습을 감춘 이후 갈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이던 K-POP 세계의 힙스터들이여, 공원소녀(Girls in the Park)를 주목하라. 2018년 미니멀한 딥하우스를 전면에 내세운 'Puzzle Moon (퍼즐문)'으로 데뷔한 공원소녀는 EDM 장르에 대해 일관적이고 확고한 지향을 보이고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다. 세 개의 미니앨범으로 구성된 밤의 공원(THE PARK IN THE NIGHT) 3부작은 딥하우스, 퓨처 베이스, 트로피컬 하우스, 일렉트로 하우스 등 EDM의 다양한 하위 장르들을 조화롭게 배합해 선보인 인상적인 연작이었다. 허나 감각적인 사운드와 독특한 센스의 가사는 힙하고 세련된 무드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접근을 다소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말하자면 트랙이 'K-POP화(化)'가 덜 된 채로 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약 9개월간의 공백기를 거쳐 돌아온 공원소녀는 기존의 음악 기조를 이어 가면서도 그것이 가진 약점을 철저히 보완하여 대중성에 대한 오랜 갈증을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짙은 장르성을 덜어 내고 청량한 전자음을 기반으로 속도감 있게 내달리는 웰메이드 팝 트랙 'BAZOOK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작과는 달리 섹션별로 선명하게 구분된 사운드 위에 재치 있는 가창이 돋보이는 멤버들의 보컬을 얹는 프로덕션은 K-POP의 작법을 닮아 그 어느 때보다 에너제틱하며, 정교하게 텐션을 쌓아 올리다 'My Bazooka!'라는 직관적인 훅으로 방점을 찍는 구성은 정석적이지만 즐겁기 그지없다. 생택쥐페리의 동화 속 어린 왕자의 고향인 소행성 B-612를 연상시키는 'I got the G-021' 라인 등 아기자기하고 추상적인 노랫말 역시 재미있는 요소. 일렉트로 팝을 표방하며 등장한 수많은 K-POP 트랙 중 올해 이보다 즐거운 작품은 없었다.


한 해에도 셀 수 없이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K-POP 시장이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음악의 경쟁력이 받쳐 주는 팀은 진흙 속에서도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극적인 콘셉트 대신 개성적인 음악으로 뚝심 있게 커리어를 구성해 온 공원소녀는 분명히 그 몇 안 되는 보석들 중 하나다. 신인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싱글 단위가 아니라 매번 긴 볼륨의 앨범 단위로 활동해왔다는 점 역시 그들이 음악적 성취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아티스트로서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팀임을 증명해 준다. 머지않아 기분 좋은 파도가 몰려와 모래 속에 감춰져 있는 진주를 꺼내 주기를.



태민,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1 - The 3rd Album]. SM엔터테인먼트, 2020

2위

태민, 'Criminal'


2008년 고작 만 15세의 나이로 연예계에 발을 내디딘 태민은 샤이니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멤버는 아니었다. 변성기도 채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나이가 어려도 너무 어린데다, 종현이나 민호처럼 음악적으로나 비주얼적으로나 존재감이 압도적인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곡 내에서 파트를 10초 분배받기도 어려웠던 그 소년은 5년 후 'Dream Girl'과 'Everybody'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샤이니의 음악적 성장을 견인하게 될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팀 내 최초로 솔로 데뷔를 이루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 낸다. 


데뷔 이후 발매된 두 장의 앨범 [PRESS IT]과 [MOVE]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태민은 어느덧 2020년 올해의 남성 솔로 아티스트로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그 말대로, [Never Gonna Dance Again] 연작은 대서사시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압도적인 볼륨과 퀄리티를 갖춘 앨범이었다. 싱글컷되어 선공개된 트랙 '2 KIDS'는 현란한 퍼포먼스 실력 뒤에 가려진 태민의 매력적인 보컬을 성공적으로 조명했으며, 다채로운 테마와 장르를 동원한 앨범의 수록곡 역시 빼어난 리드 싱글들을 받쳐 주며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그리고 대망의 타이틀 곡 'Criminal'은 그의 재능을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집대성해 낸 완벽한 마침표였다.


태민의 나긋한 보컬로 시작되는 'Criminal'은 중심 멜로디를 알뜰하게 활용하며 태민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세련된 베이스를 펼쳐 놓는데, 전작 'WANT'와는 달리 명확한 멜로디 덕분에 곡의 인상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뉴트로풍의 신스가 자글대며 뿌려지고 고혹적인 태민의 가성이 리드미컬하게 치고 들어오는 후렴의 파괴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더해 브릿지에서 보컬 애드립을 터뜨리며 마지막으로 텐션을 폭발시키는 전개를 통해 곡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이끌어 간다. 이렇게 밀도 높은 신스 웨이브 곡을 이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현재 태민 이외엔 누가 있을까 싶다. 'MOVE'의 묵직한 맥동으로부터 'Criminal'의 역동적인 관능까지, 가파르게 성장하는 그는 다시 한 번 확신을 주었다. 그것은, 단연코 현재 K-POP 씬에서 태민을 대체할 수 있는 솔로 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IZ*ONE, [BLOOM*IZ], 오프더레코드엔터테인먼트-스윙엔터테인먼트, 2020

1위

아이즈원, 'FIESTA'


무엇이 아이즈원 특별하게 하는가? 바로 음악이다. 일약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Mnet의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출범시킨 그룹 아이오아이(I.O.I)는 전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뜨거운 데뷔를 치렀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음악적 성과로 인해 그 빛이 다소 바래고 말았다.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워너원은 압도적인 팬덤을 구축했지만 역시 데뷔곡인 '에너제틱' 이외에는 인상적인 곡을 내놓지 못하며 음악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하지만 앞서 언급된 두 개의 프로그램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파급력을 가지고 출발했던 <프로듀스 48>이 출범시킨 걸그룹 아이즈원의 데뷔곡 '라비앙로즈'는 그들이 선배 그룹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예감케 했다. 


이국적인 스트링 사운드를 내세웠던 데뷔곡은 아이즈원이라는 브랜드의 유니크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영민한 첫걸음이었고, 두 번째 싱글 '비올레타'에서는 더 많은 대중에게 친숙히 다가갈 수 있는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사운드로 외연을 넓히는 전략을 취했다. 데뷔작이라는 부담과 소포모어 징크스 모두를 영리하게 빗겨나가는 노련한 프로덕션을 선보인 '라비앙로즈'와 '비올레타'의 연이은 성공 이후 어깨는 무거워졌다. 안타를 두 번 친 상황에서, 홈런을 날려야 하는 타이밍이 온 것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이겨내고 아이즈원은 멋진 장외홈런을 기록했다. 바로 2020년 K-POP 최고의 트랙, 'FIESTA'다.


'때가 왔어, 오랜 기다림을 끝내'라는 가사의 첫마디가 그대로 현실이 된다. 두꺼운 베이스와 신스로 장식된 업템포 비트를 타고 속도감 넘치게 내달리는 벌스가 초장부터 세차게 진격한다. 후렴을 EDM 드랍으로 대체하였던 지난 두 곡과 달리, 이번에는 캐치한 후렴 멜로디까지 가세했다. 이어 간주에서는 육중한 베이스 드럼과 함께 날카로운 브라스 사운드가 송곳처럼 파고들며 강렬한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후반부의 변주까지, 그야말로 축제처럼 현란하고 자극적이다. K-POP의 사운드가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기교가 집약된 압도적인 결과물 'FIESTA'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올해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뱅어 트랙(Banger Trac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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