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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빈 Jul 04. 2021

[결산] 2021년 상반기 K-POP 트랙 TOP10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먹구름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2021년에 K-POP은 여전히 세계인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정라리의 케이팝읽기' 본 결산에서는 2021년의 상반기, 즉 2021년 1월 1일부터 20216월 30일 사이에 발매된 모든 K-POP 트랙 중 '베스트 트랙' 10선을 선정하였다.


* 본 글의 순위 및 칼럼은 정라리 개인이 선정하고 집필한 것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앨범의 타이틀곡 또는 싱글된 곡만을 선정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록곡들은 선정 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정라리의 케이팝읽기'는 음악과는 별개로 리뷰 대상 아티스트의 논란과 범죄 행위를 일체 옹호하지 않습니다.

* 본 글의 궁극적인 목적은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 혹은 비난이 아니라 케이팝 씬에 대한 깊고 넓은 관심을 촉구하고 풍부한 논의를 생산하는 것임을 유념하여 읽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방탄소년단, [Butter], 빅히트뮤직, 2021

10위

방탄소년단, 'Butter'


명실상부 K-POP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아티스트가 된 방탄소년단.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더는 K-POP에 국한될 수 없는, 전 세계의 청춘을 상징하는 새로운 대변자임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 한국어를 버리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모든 가사를 채워 넣은 'Dynamite'의 발매는 그 새로운 여정의 서막이었고, 발매 이후 빌보드 차트 1위를 5주 연속으로 수성하며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 'Butter'로 이는 더욱 확실해졌다.


'Butter'가 경이로운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가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Got ARMY right behind us when we say so') 팬덤 아미(ARMY)의 충성스런 서포팅의 덕이 가장 크겠지만, 트랙 자체가 가진 압도적인 매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미니멀한 비트로 포문을 열고 펑키한 신디사이저를 적재적소에 운용하는 프로덕션은 전작 'Dynamite'보다도 훨씬 뛰어난 완급 조절을 보여 주며, 왕년의 팝 스타 어셔(Usher)나 ('Don't need no Usher / To remind me you got it bad') 1960년대의 미국 보드 게임 트러블(Trouble)을 언급하는 유머러스한 가사 ('Gon' pop like trouble')는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자연스럽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미국 음악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이 치밀한 전략으로 방탄소년단은 기어코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Butter'의 수많은 라인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바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다. 그의 대표곡 'Smooth Criminal'을 오마주한 첫 도입부('Smooth like butter / Like a criminal undercover') 'Rock With You'와 'Man In The Mirror'에 대한 레퍼런스('High like the moon, rock with me, baby' / 'Ooh, when I look in the mirror')는 인종 간의 갈등을 음악을 통해 허물고 화합과 문화의 시대를 연 위대한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데, UN에서의 연설이나 '#StopAsianHate' 운동 참여 포스트 등에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선한 영향력은 의심의 여지 없이 마이클 잭슨의 발자취와 닮아 있다. 'Let me show you 'cause talk is cheap' 라는 'Butter'의 노랫말처럼 이제 그들은 언어를 초월하는 범지구적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아티스트이며, 그것이 바로 그들의 노래가 무슨 언어로 쓰였는지가 더는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고, 'Butter'가 새 시대의 K-POP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트랙인 이유일 것이다.



로제, [R], YG엔터테인먼트, 2021

9

로제, 'On The Ground'


2016년 데뷔한 블랙핑크(BLACKPINK)는 짧은 시간 내에 국제적인 인기를 얻으며 K-POP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걸그룹 중 하나로 도약했다. 그들은 제니, 로제, 지수, 리사 4인의 멤버 중 누구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고른 밸런스를 갖춘 팀이지만 음악 내에서만큼은 역시 로제(ROSE)의 존재감이 가장 돋보인다. R&B, 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에 녹아드는 그녀의 유니크한 보컬이 블랙핑크라는 팀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제니(JENNIE)의 뒤를 이어 블랙핑크 솔로 프로젝트의 두 번째 타자로 출격한다는 소식은 팬덤 블링크(BLINK)뿐만 아니라 타 장르 리스너들까지도 반길 만 뉴스였다.


앞서 2019년 발매된 제니의 솔로곡인 'SOLO'는 대중적 흥행을 기록하긴 했지만, 음악 자체는 블랙핑크의 단순한 연장선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로제는 달랐다. 그녀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영어로 작사된 'On The Ground'는 인위적으로 꾸며낸 스웨거를 벗은 로제 자신의 꾸밈 없는 진심을 털어놓는다. 항상 위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달려왔고 결국 원하던 모든 것을 얻어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어도 마음 속의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가치는 다름아닌 그녀의 안('On The Ground')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철학적인 사유 과정은 엘리 굴딩(Ellie Goulding) 풍의 뭉툭한 신디사이저 비트가 점점 고조되며 절정에 치닫는 곡의 구조를 통해 묘사된다. 그 안에서 능숙하게 곡을 이끄는 로제의 솜씨는 그녀의 보컬이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범주에 가두기 어려울 정도로 무르익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처럼 'On The Ground'는 인간으로서의 로제와 보컬리스트로서의 로제 모두의 성숙을 성공적으로 증명해 낸 우수한 싱글이다. 멋진 솔로 아티스트가 된 그녀의 향후 행보에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



웬디, [Like Water - The 1st Mini Album], SM엔터테인먼트, 2021

8

웬디, 'When This Rain Stops'


2019년의 크리스마스, 모두가 신의 축복에 젖어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레드벨벳의 웬디(WENDY)는 고척돔에서 있을 SBS 가요대전 생방송을 위해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날 새벽 그녀가 리프트 오작동과 스태프들의 소통 미흡으로 인해 무려 3m를 상회하는 높이의 무대에서 추락하여 광대뼈, 골반, 손목이 골절되고 전신에 걸쳐 중상의 타박상을 입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들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디는 그 이후로 긴 시간 동안 무대에 서지 못하며 재활에 전념해야 했고, 사고를 발생시킨 장본인인 SBS 측은 모르쇠에 가까운 무책임한 태도의 사후대처로 일관하며 팬들의 분노를 샀다. 디가 심각한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가장 익숙한 자리인 마이크 앞에 설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무려 1년 4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웬디의 미니앨범은 'Like Water'와 'When This Rain Stops' 두 개의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 음악방송에서 주로 선보이는 메인 트랙은 웅장한 밴드 사운드가 돋보이는 'Like Water'이지만, 마음을 더 움직이는 쪽은 웬디의 꾸밈없는 보컬과 피아노 하나만으로 단촐하게 꾸려 나가는 후자다. 소박한 구성은 호소력 넘치는 가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그토록 끔찍한 사고를 당했음에도 여전히 '안아주고 싶어 / 어둠에 지친 모든 걸 내가 / 알아주고 싶어' 라며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진심은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속에 뜨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상처를 꿋꿋이 딛고 일어나 오히려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피아노 위를 타고 뻗어 나가는 웬디의 담백한 보컬이기에 더욱 빛나는 노랫말이다. 


반복되는 'When This Rain Stops'라는 가사가 'Wendy's Rain Stops'로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녀의 오랜 장마는 결국 그쳤고 무지갯빛 노래와 함께 웬디는 돌아왔다. 이제 그녀는 세상 가장 큰 우산이 되어 비에 젖은 이들을 다시 따스하게 감싸 려 한다.



(여자)아이들, [I burn], 큐브엔터테인먼트, 2021

7위

(여자)아이들, '화'


매 컴백 때마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선보이는 팔색조의 팀 (여자)아이들의 전작 '덤디덤디'는 대중적인 흥행 성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는 실망을 감출 수 없는 곡이었다. 언제나 번뜩이는 감각으로 클리셰를 부수며 성장해 온 그들이 오히려 클리셰로 회귀해 버린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세대 아이돌 중 프로듀서로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전소연답게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량한복을 입고 나타난 (여자)아이들은 다시금 예전처럼 빼어난 음악, ''로 브랜드 가치를 더욱 탄탄히 다지는 데에 성공했다.


영어 한 줄 없이 한국어로만 쓰인 가사는 한 편의 고전 시가를 읽는 듯 아름다운 시어들로 가득하다. 특히 소연은 운율을 맞추어 써내려간 시적인 노랫말을 수려한 플로우에 담아내는 치밀한 래핑을 구사하며 이번에도 다시금 자신의 독보적인 능력을 과시해 보인다. 콘셉트를 기획하고 소화하는 능력이 이처럼 탁월하니 아무리 갑작스런 노선 변화라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불꽃이 그려진 앨범 커버와 제목과는 달리 ''는 얼어버릴 듯 서늘하고 차가운 분위기의 곡인데, 이러한 반전 양상은 음악 내에서도 계속된다. 무거운 808 베이스는 도입부부터 청자의 귀를 강하게 잡아끌고, 여러 동양적 사운드 소스들은 뭄바톤 리듬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여지껏 없었던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소연은 양풍 콘셉트라는 이유로 전통 악기에 국한되지 않고 타 장르의 다양한 요소를 자유롭게 가져와 융합시킨다. 이 과감한 크로스오버는 오직 그녀만이 가진 유니크한 작곡 재능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여자)아이들이 여러 콘셉트를 시도하면서도 변화에 매몰되지 않고 성공가도를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다. ''를 통해 우리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특별한 팀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ENHYPEN, [BORDER : CARNIVAL], 빌리프랩, 2021

6위

엔하이픈, 'Drunk-Dazed'


새빨간 피가 벽에서 주르륵 흘러 내리는 텅 빈 방 안에 멍하니 서 있는 소년. 천장에는 핏물이 고여 뚝뚝 떨어지고 이윽고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소년은 그대로 쓰러지고 카메라는 붉은 피가 넘쳐흐르는 분수에 앉아 피로 가득한 와인잔을 들고 있는 한 남자를 비춘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 장면들이 그로테스크한 고어 영화가 아니라 K-POP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놀랍게도 2021년의 K-POP은 호러 영역까지 자신들의 포트폴리오에 차용하기에 이르렀고,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방탄소년단(BTS)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를 이은 하이브 레이블의 세 번째 보이그룹이자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랜드(I-LAND)를 통해 결성된 대형 신인- 하이픈(ENHYPEN)이다.


아이돌 음악의 영상이라기보단 차라리 호러 무비의 트레일러에 가까워 보이는 'Drunk-Dazed'의 뮤직비디오에서 범상치 않은 팀이 나타났음을 예감한다. 뷔작 'Given-Taken'의 가사 ('내 하얀 송곳니' / '그 빛은 날 불태웠지')에서부터 드러나듯 엔하이픈의 세계관은 뱀파이어(Vampire)의 서사를 표방한다. 앨범의 제목이 경계를 뜻하는 [BORDER] 시리즈임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상태인 이 일곱 명의 뱀파이어들은 'Given-Taken'에서의 정체성 혼란을 지나 'Drunk-Dazed'에서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란의 카니발에 빠져들기를 택한다.


이 카니발 속에서 취하고(Drunk) 몽롱해진(Dazed) 엔하이픈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완성도 있는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사이키델릭 록에 가까운 둔탁하고 강렬한 비트와 공격적인 베이스 위를 내달리며 거칠게 변조되는 멤버들의 보컬이 청각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프로덕션에서 뱀파이어들이 벌이는 환락의 파티를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이 압도적인 퀄리티의 사운드는 청자로 하여금 '붉은빛 송곳니', '심장을 태워' 등 과격하고 컨셉츄얼한 노랫말에 효과적으로 몰입하게끔 만든다. 식인(食人)을 뜻하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연상시키는 카니발(Carnival)을 벌이고 있는 일곱 명의 뱀파이어의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당신이 아이랜드(I-LAND)를 보지 않았더라도, 혹은 멤버들 개개인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탄탄한 음악 자체만으로 그들의 서사에 귀기울이게 되는 마력을 지닌, 말 그대로의 '괴물' 신인이 등장했다. 그 무시무시한 뱀파이어의 이름은 바로 엔하이픈(ENHYPEN)이다.




HONORABLE MENTION (순위외 후보)

아쉽게도 순위권 내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MZ세대의 10대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독특한 차별성을 획득한 위클리의 'After School', 유니크한 멜로디 진행과 수려한 화음이 어우러져 상쾌한 감상을 선사하는 NCT DREAM의 'Hello Future', 컨셉츄얼한 가사를 변화무쌍한 프로덕션 속에 매끈하게 엮어 넣은 공원소녀의 'Like It Hot', 정 에너지를 가득 품은 부드러운 선율이 찬 브라스를 타고 날아 오르는 트레저의 'MY TREASURE', 확실한 파괴력을 지닌 맛있는 멜로디로 중무장한 웰메이드 팝 트랙 프로미스나인의 'WE GO' 역시 2021년의 K-POP을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우수한 곡들이다.



아이유, [Celebrity], EDAM엔터테인먼트, 2021

5위

아이유, 'Celebrity'


아이유(IU) 명실상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가하고 있 솔로 아티스트다. 공전절후의 히트곡 '좋은 날'로 이름을 각인시킨 이후로 그녀가 공개한 거의 모든 작업물들은 차트 상단에 너무나도 손쉽게 안착해 왔고, 무려 11년이 지난 2021년에도 그 위력은 유효했다. 정규 5집 [LILAC]의 타이틀곡 '라일락'과 'Coin' 매 즉시 모든 음원 차트를 휩쓸며 어김없이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일반적인 K-POP 아이돌처럼 거대 규모의 조직적인 팬덤을 보유하지도 않은 그녀가 어떻게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변화무쌍한 대중가요계에서 왕좌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정규 5집의 선공개곡 'Celebrity'에서 찾을 수 있다. 세련된 신디사이저 비트를 타고 아이유는 '세상의 모서리 / 구부정하게 커버린 / 골칫거리 outsider'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그녀가 노래하는 '셀러브리티'의 정체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멋지고 화려한 인기인들이 아니라 다름아닌 걸음걸이, 옷차림, 음악 취향까지 전부 마이너한 이 세상의 소수자들이다. 사운드 자체만으로는 전형적인 퓨처 베이스 트랙에 불과한 이 곡이 특별해지는 것은 바로 이 따스한 주제의식 때문이다. 아이유의 노래를 통해 이 세상의 '별난 사람'들이 누구보다 빛나는 '별 같은 사람'들 되었듯 'Celebrity' 역시 그로 인해 그 무엇보다 반짝이는 노래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 가요사상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하나인 아이유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 있는 이 순간 오히려  속에 묻힌 별들에게 을 내밀기를 택했다.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 아름다운지 말야' 라는 시적인 노랫말은 그녀가 어째서 '대중가수 이상의 대중가수' 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유는 언제나 대중이라는 이름 하에 뭉뚱그려진 채 소외되어 있던 '별난 사람'들조차 끌어안고자 하는 유일한 아티스트였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다수에게도 소수에게도 고루 사랑받는 진정한 '셀러브리티'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태민, [Advice - The 3rd Mini Album], SM엔터테인먼트, 2021

4위

태민, 'Advice'


이미 과포화되어버린 K-POP 시장에서  지금 이 순간 태민이어야만 하는가? 그는 이 질문에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계속해서 제시해 왔다. 빼어난 퀄리티의 첫 정규 앨범 [Press It]을 시작으로 'MOVE', 'Criminal', '이데아'에 이르기까지 태민은 꾸준히 우수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자신의 서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 과정을 통해 절제의 관능, 세련된 베이스 사운드 등 태민이라는 두 글자 이름이 상기시키는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이미지들점차 늘어났지만 역시 그에게는 중성적인 멋이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남성 아티스트가 여성적인 요소를 취하는 게 아니라, 남성과 여성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성별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짐으로써 비로소 획득하는 설득력. 다른 남성 솔로 아티스트들에게는 없지만 태민에게만은 있는 것을 단 하나만 꼽자면 그 유니크한 중성미라 하겠다.


태민이 입대 전 마지막으로 선보이는 'Advice'는 그 중성적 속성에 본격적으로 접근하는 곡이다. 일반적으로 걸그룹이 입을 법한 짧은 크롭티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추는 태민의 무대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오랜 이분법이 허물어지고 단지 압도적인 카리스마의 퍼포먼스만이 오롯이 남을 뿐이다. 때문에 원곡의 여자 키를 그대로 가져와 앙칼진 가성으로 소화해 내는 파격적인 후렴 역시 자연스러운 내러티브의 연장선상에서 태민이라는 탈이분법적 아티스트의 증거로서 작용하게 된다. 광기어린 목소리로 진성과 가성, 랩과 보컬을 넘나들며 장엄한 콰이어와 피아노 아르페지오 위를 자유분방하게 뛰노는 감한 프로덕션은 그의 비전에 한층 힘을 싣는다.


'날 가둘 수록 보란 듯 엇나가 잘 봐' 라며 성별이라는 수갑을 뿌리친 태민은 '더 참신하게 상상력 좀 발휘해 봐' 라고 도발한다. 여성에게 맞춰진 옷을 입고 여성에게 맞춰진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혁명이요 누군가에게는 당혹감으로 다가올 것이고 어느 쪽이 되었든 그것은 급진적인 변화를 마주할 때 인간이 느낄 자연스러운 감정임이 분명하다. 허나 만약 당신이 K-POP을 지배하는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허물고자 하는 태민의 도전을 방해할 생각이라면, 충고 한 마디 덧붙이겠다. 부디 더 참신하게 상상력 좀 발휘해 보라.



STAYC, [STAYDOM], 하이업엔터테인먼트, 2021

3

스테이씨, 'ASAP'


2021년의 K-POP 씬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역시 '여성'일 것이다. 역주행의 신화를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시작으로 오마이걸, 트와이스, 에스파, 조이, 라붐, 로제, ITZY 등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차트 상단을 차지하며 대중적 흥행을 거두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소위 걸그룹의 황금기라 불리던 2010년대 초반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례 없는 여성의 약진이 돋보인 올해 상반기는 한편으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4세대 신인 걸그룹들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탄 시즌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침내 그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주인공은 다름아닌 스테이씨였다.


'CHEER UP'과 'TT'로 트와이스를 '국민 걸그룹'의 위치에 올려 놓은 히트메이커 작곡팀 블랙아이드필승이 야심차게 런칭한 걸그룹 스테이씨에게는 대형 기획사의 자본에서 나오는 물심양면의 서포트와 프로모션도, 팬덤의 내리사랑을 선물해줄 수 있는 선배 가수도 없었다. 그녀들을 가장 돋보이는 신인 중 하나로 만든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매력적인 음악이었. 그만큼 'ASAP'은 가히 파괴적인 트랙이다. 독특한 사운드로 흥미로운 감흥을 이끌어냈지만 다소 미약한 후렴 탓에 아쉬움을 남겼던 전작 'SO BAD'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캐치한 멜로디에 대한 갈증을 깔끔하게 해소시키는 노련한 프로덕션은 역시라는 말밖엔.


걸그룹의 음악치고 매우 파워풀한 드럼과 신스 베이스로 시원시원하게 벌스를 이끌어 나가다 스테이씨의 트레이드마크인 단조 멜로디를 후렴으로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구성은 고전적이지만 흡입력 넘치며, 키치한 톤의 우드윈드 신스(Woodwind Synth)가 등장하는 간주 파트는 감히 '올해의 10초'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에 더해 메인 리듬악기와 우드윈드 신스가 결합하는 브릿지의 속도감은 가히 압권. 섹션별로 다채로운 악기를 변화무쌍하게 운용하며 색다른 무드를 만들어내는 프로듀싱의 내공은 이미 일종의 경지에 오른 수준이다. 메가 히트곡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견 없는 블랙아이드필승 커리어 사상 최고작.



TWICE, [Taste of Love], JYP엔터테인먼트, 2021

2

트와이스, 'Alcohol-Free'


'CHEER UP'과 'TT'가 연달아 발매된 2016년이 단연코 '트와이스의 해' 였음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허나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던 트와이스가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황당무계한 퀄리티의 곡으로 당혹감을 안겼던 'SIGNAL'? 기존의 발랄한 콘셉트를 내려놓고 성숙한 이미지로의 변화를 꾀했지만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왔던 'FANCY'와 'Feel Special'? 잦은 컴백으로 과해진 이미지 소? 혹은 음악방송 앵콜 무대에서의 라이브 미흡 논란? 뭐가 되었든 2021년에 이르러 7년차를 맞이한 트와이스가 다소 정체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예전 콘셉트를 계속하면 매너리즘이요, 콘셉트를 바꾸면 초심을 잃었다며 날선 비판을 가하는 사면초가의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고자 이미 'Dance The Night Away'에서 EDM을 적극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던 그녀들 'MORE & MORE'에서 트로피컬 하우스, 'I CAN'T STOP ME'에서는 신스웨이브를 투입하는 등 일반적인 팝에 타 장르의 색을 짙게 칠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트와이스의 이미지에 꼭 들어맞는 세련된 보사노바 한 컵을 끼얹는 순간, 드디어 기다려 왔던 화학반응이 일어고야 말았다.


기나긴 실험 끝에 찾아낸 트와이스의 최적화 블렌딩 레시피, 'Alcohol-Free'는 순히 보사노바를 K-POP의 영역에 성공적으로 끌어 왔을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악기들을 조화롭게 운용하여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상쾌한 나일론 기타가 이끄는 1절, 바이아오(Baiao) 리듬의 베이스와 재지한 건반이 맞물리는 2절, 청량한 브라스가 멜로디를 부드럽게 감싸는 후렴 등 보사노바의 범위 내에서 섹션별로 선명하게 변화하는 세련된 사운드 덕에 귀가 지루할 틈이 없다. 해변의 낭만을 그대로 옮겨 담은 악기들의 합주와 함께 달콤한 선율이 자연스럽게 귀에 스며드니 이 바닷빛 칵테일에 취하지 않고서야 못 배길 노릇이다.


보사노바를 차용하겠다는 대담한 발상. 그것을 K-POP과 매끈하게 배합해낸 능숙한 프로덕션. 트와이스는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가진 커리어 최고작 'Alcohol-Free'로 멋지게 매너리즘의 벽을 무너뜨렸고, 박진영은 자신이 아직도 이 정도로 뛰어난 곡을 써낼 수 있는 프로듀서임을 재차 입증해 보였다. 부진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aespa, [Next Level], SM엔터테인먼트, 2021

1위

에스파, 'Next Level'


2021 K-POP 최고의 블록버스터. 역대 신인 아이돌 중 가장 충격적인 데뷔. 두렵도록 급진적이고 놀랍도록 호기로운 하이브리드 프로젝트. 모두 하나의 노래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바로 에스파(aespa)의 두 번째 싱글 타이틀 'Next Level'이다.


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에서 레드벨벳의 뒤를 이을 신인 걸그룹을 내놓는다는 소식에 커진 기대감은 이윽고 그 걸그룹이 인간과 AI 아바타 각각 4명씩으로 이루어진 8인조 팀이라는 뉴스가 공개된 이후 한숨 섞인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무리수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파격적인 사이버펑크 콘셉트는 그 낯섦을 극복하기 어려워 보였고, 데뷔곡 'Black Mamba'는 SM의 비대한 세계관을 대중들에게 온전히 설득해 내기에는 한참 부족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데뷔 초 메인 콘셉트로 내세우다 언제부터인가 소리없이 폐기해 버렸던 선배 그룹 엑소(EXO)의 초능력 세계관과 겹쳐 보이며 기대보다는 걱정만이 앞설 뿐이었다.


그러나 1년 후 에스파'Black Mamba' 보다 모든 면에서 눈부신 스텝업을 이룬 후속곡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모두를 크(SYNK: 인간과 아바타가 연결된 상태)시켰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수록된 A$ton Wyld명의 곡 리메이크한 'Next Level'은 SMCU(SM Culture Universe: SM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소속된 하나의 세계관 유니버스)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서막으로, 'KOSMO', 'Naevis', 'P.O.S' 등 SMCU 내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가상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가사에 투입다. 이 낯선 용어들을 불친절하게 나열하기만 했을 뿐인 전작과는 달리 이번에는 현실 세계, 플랫(FLAT: 가상 세계), 광야(KWANGYA: 플랫 너머 무정형의 세계) 등 다양한 공간을 오가는 에스파의 여정을 변화무쌍한 사운드 변주와 하이브리드적인 트랙 구성을 통해 표현하여 그 거대한 서사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도록 했다.



사이버펑크 풍의 투박한 베이스를 타고 카롭게 흘러가는 초반부는 아이(ae: 인간의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바타)와 에스파가 만나 인공지능 시스템 나비스(naevis)의 인도에 따라 빌런 블랙 맘바(Black Mamba)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해 그가 사는 광야로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스타일리시한 코드로 담아냈다. 백그라운드 보컬이나 유니즌 코러스를 곳곳에 배치하여 분위기를 환기하는 버라이어티한 진행은 깊은 몰입에 한층 추진력을 더한다. 'Check It Out'을 '제껴라'로, 'New York'을 '유혹'으로 개사하며 원곡의 발음을 살리는 재치 역시 돋보인다.


이어 나비스가 연 문을 열고 에스파와 아이가 광야로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공간감 넘치는 신디사이저가 내려앉고 유영진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닝닝윈터의 시원시원한 보컬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윽고 트랙이 또다시 변주되며 등장하는 둔탁한 리듬과 함께 에스파 일행은 비로소 광야에 도착한다. 블랙 맘바의 환각에 빠져 에스파와 아이는 분리되어 버릴 위기에 처하지만, 나비스의 도움으로 다시 현실 세계로 복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음악 역시 초반부의 사이버펑크풍 비트로 돌아오고, 에스파는 '난 광야의 내가 아냐 / 널 결국엔 내가 부셔' 라며 더 강하고 자유로워진 모습으로 훗날 블랙 맘바를 꼭 물리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실로 재미있는 수미상관 구조가 아닐 수 없다.


공간 변화와 서사의 흐름에 따라 선명하게 변주되는 'Next Level'의 사운드는 K-POP의 하이브리드적 성질을 극대화하여 전례 없는 몰입을 선사한다. 에스파는 길고 복잡한 세계관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지 않는다. 단지 변화무쌍한 음악과 상징적인 노랫말로 청자를 자연스레 SMCU의 세계로 끌어들일 뿐이다. 멜론(Melon) 차트 개편 이후 걸그룹으로서는 최초로 24Hits 차트 1위를 차지한 눈부신 성과가 이미 대중 역시 에스파의 광야에 초대되었음을 증명한다.



전세계의 주목도와 자본을 자석처럼 끌어모으며 이미 단순한 아이돌 음악 이상의 거대한 산업이 되어 버린 K-POP. 앞서 언급한 트와이스가 'Alcohol-Free'에서 보사노바를 차용한 것처럼 K-POP은 EDM, R&B, 록, 힙합, 심지어는 앰비언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장르 음악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자유롭게 포용시킨다. SMCU 영상에서도 등장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처럼, 대중가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K-POP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유일무이한 하이브리드적 속성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고 그 무한한 확장성이 음악 외적으로까지 뻗어 나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같은 곡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다채로운 사운드 섹션을 자연스럽게 융합해 곡을 만들고,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계관을 하나의 유니버스로 연결해 더 큰 차원에서의 서사를 쌓아올리고, AI 기술을 아이돌 산업에 가져와 '케이팝 메타버스'가 구현된다. 이것은 비단 SM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K-POP 산업 자체가 향해가는 궁극적 방향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파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시대의 변곡점에서 나타난 이 급진적인 프로젝트는 결국 처음의 당혹감을 이윽고 그들의 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K-POP의 미래는 한층 더 낯설고 하이브리드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며, 에스파는 그 문을 열어 우리를 그 광야로 인도한다. 저 광야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이끄는 새 시대로의 열차에 기꺼이 올라타고 싶은 마음이다.


 "난 궁금해 미치겠어 / 이 다음에 펼칠 story, huh!" - aespa, 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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