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leS(트리플에스) 〈Christmas Alone〉
연말이 가까워지면 도시의 공기가 살짝 들떠 보일 때가 있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전구가 걸리고, 카페 스피커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끊이지 않는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함께여야 완성되는 밤”을 광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혼자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방에 서 있는 순간, 괜히 내가 빠져 있는 자리가 하나 생긴 것만 같다는 기분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게 바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밤의 기분일지도 모른다. tripleS(트리플에스)의 〈Christmas Alone〉 가사를 듣다 보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이 노래는 그 사람을 불쌍한 주인공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외로움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간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의 의미를 대단한 사건이나 완벽한 조건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 스토아 철학은 “모든 것을 참아라”가 아니라, 바꿀 수 없는 상황과 바꿀 수 있는 마음가짐을 조심스럽게 구분하는 일에 가까웠다. 축제의 한가운데에 있든, 조용한 방에 홀로 앉아 있든, 결국 결정적인 것은 상황이 아니라 그때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명상록』에서 자기 자신에게 거듭 당부한다. 일어난 일을 억지로 포장하지 말 것, 그렇다고 모든 일을 절망의 증거로만 삼지도 말 것. 기쁜 일과 서운한 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지금 여기의 나를 어떻게 세울지에 마음을 더 오래 둘 것. 아우렐리우스에게 고독은 실패의 벌이 아니라, 잠시 삶을 다시 정렬해 볼 수 있는 사적인 공간에 가까웠다.
이 렌즈로 〈Christmas Alone〉 가사를 다시 들어 보면, 노래는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비극”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 서기 시작한다. 가사 속 “내게 남긴 blue Christmas / 깨진 조각들이 차가워도 / 녹아내려 촛불 앞엔 oh”라는 구절에서 화자는 자신의 슬픔을 대놓고 부정하지 않는다. 아프면 아픈 대로, 차갑다면 차가운 대로 먼저 인정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조각들을 촛불 옆에 두고 서서히 녹여 보기로 한다. 크리스마스 장식 같은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작은 불꽃 하나가 만들어내는 온기에 기대어 한 해를 통째로 바라보는 느낌. 또 다른 가사 “행복은 멀리 찾을 수가 없어 / 떨어진 눈도 반짝이고 있어”라는 문장에서, 얼어붙어 보이던 눈발이 다시 빛을 띠기 시작한다. 함께 걷던 사계절의 판타지가 끝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끝에 서 있는 화자의 자세는 분명 달라지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밤을 떠올리게 된다. 함께 보냈던 날들을 뒤로한 채, 올 한 해 나는 결국 어디에 와 서 있는지. 누군가와 웃으며 사진을 찍던 장면은 지나갔는데, 그 빈자리를 더 이상 ‘결핍’으로만 읽지 않으려 애쓰는 시간들. tripleS 〈Christmas Alone〉 가사에 나오는 “오늘 밤 cherish my time alone”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 오래 귓가에 남는다.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된 시간을 그냥 버틴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밤을 지금의 나를 온전히 마주할 기회로 삼아 보겠다는 다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함께라서 특별한 날”만을 기념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나 혼자 숨을 고르던 저녁들이 내 삶을 버티게 해 준 적도 많다. 아우렐리우스가 일상의 끝에서 짧은 문장을 적어 두며 마음을 다잡았듯, 화자 역시 이 날을 자기 삶의 한 장면으로 조용히 기록하려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의 가사 “I’m just happy as I am / I’m right here / 써 내려가 story of my life / I’ll make it, 이 순간을 꼭 기억해”라는 고백은, 이 노래가 그려내는 고독의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언젠가 더 좋아질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적어도 지금 이 자리의 나는 여기 있다”라고 인정하는 태도. 누군가 곁에 없다는 사실로 자신을 완전히 깎아내리는 대신, 조용한 집에서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에도 분명히 숨 쉬고 있다는 감각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는 마음. 크리스마스라는 날짜가 더 이상 연애 서사만으로 규정되지 않고, 방 안의 공기와 창밖의 별, 떨어지는 눈,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늘의 장면을 완성한다.
아우렐리우스의 언어로 옮기면, 이 노래의 화자는 “사랑이 떠난 뒤의 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계절을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의 현재”에 주의를 돌리고 있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상처를 감싸는 호흡은 조금씩 정리된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부족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자리로 바뀌어 간다.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침착함은 감정을 지워 버리는 무감각이 아니라, 그런 밤들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조심스럽게 품어 보려는 연습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비슷한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는 시끌벅적한 연말 모임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허전하고, 누구는 조용한 집에서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에도 이상하게 안도감을 느낀다. 〈Christmas Alone〉 가사는 그 어떤 쪽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질문을 조용히 건넨다. “지금 이 밤의 나를, 나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가.” 축제의 중심에 있든,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앉아 있든, 어느 쪽이든 그 시간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기억해 보려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한 해의 마지막에 기꺼이 붙들어야 할 작은 불씨일지 모르겠다. 이 노래는 그 불씨를, 크고 요란한 장식이 아니라 혼자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의 밝음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