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나와 나 사이의 자리다

크리스탈 〈Solitary〉

by 문어

가끔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화는 계속되고 웃음소리는 오가는데, 마치 내가 없는 방처럼 거리감이 생길 때가 있다. 반대로, 집에 혼자 있는데도 전혀 쓸쓸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음악을 틀어 놓고, 컵에 물을 붓고, 하찮은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아, 지금 이 시간은 나랑 나만 있는 자리구나” 하는 감각이 선명해진다. 똑같이 혼자인데도 어떤 밤은 견디기 어렵고, 또 어떤 밤은 이상하게 꽉 차 있다. 크리스탈의 〈Solitary〉 가사를 듣다 보면, 그 두 종류의 고요가 천천히 갈라지는 느낌이 난다. 혼자 있는 밤이 전부 외로움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는 순간들이다.


미국 사상가이자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람이 혼자 있을 때 반드시 결핍 속에 놓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월든》에서 그는 도시의 소음과 관계망을 한 발짝 물러나, 숲 속 오두막에서 지내는 실험을 직접 해 본다. 일을 그만두고 영영 숲으로 도망간다기보다, 타인의 기준과 시선을 잠시 옆에 내려 두고도 하루를 채울 수 있는지 시험해 본 셈이다. 그에게 고독은 그냥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타인의 말과 속도가 잠시 비워졌을 때,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또렷하게 드러나는 시간에 가까웠다. 혼자 있는 순간에 내가 나를 견디지 못하면,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결국 비슷한 허기가 따라온다. 그래서 소로에게 중요한 장면은, 나를 둘러싼 사람이 몇 명인가보다 “나와 나 사이의 관계”였다. 내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건너게 하는지. 혼자 보내는 주말, 혼자 있는 저녁이 전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이 관계를 다시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인지 묻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곁에 두고 〈Solitary〉 가사를 다시 들어 보면, 이 노래는 “나 혼자야”를 외치는 탄식보다, 혼자 있는 나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작은 선언처럼 들린다. 가사 속 “I’m so solitary / Yeah I’m my own party”라는 구절에서 화자는, 사람들 틈에서 밀려나 혼자 남았다고 호소하기보다는, 어차피 혼자인 이 시간을 내 방식대로 채워 보겠다고 말하는 쪽을 선택한다. “여긴 내가 앉는 자리 / Not waiting for nobody”라는 줄도 손님이 불러 주기만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먼저 “이곳은 내 자리”라고 정해 버리는 제스처에 가깝다. 남이 정해 준 자리가 아니라, 나 스스로 결정한 자리에 앉을 수 있을지 묻는 장면. “저긴 내가 앉을자리”라는 말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내 마음이 가 닿을 위치를 미리 짚어 보는 여유도 섞여 있다.


“See 난 필요 없다고 / Go ahead, take yours / 넘쳐나니까 / My own water to my rose”라는 가사에서는, 외부의 인정과 자원을 붙들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는 사람이 보인다. 누가 나를 챙겨 주지 않으면 금방 말라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 소로가 《월든》에서 숲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회사·학교·도시 같은 이름표가 잠시 떨어져 나가도, 나는 그냥 공중에 붕 뜬 공백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남을 수 있는지. “세상과 잠깐 떨어져도 나는 살아 있다”는 근거를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찾아보려는 시도. 〈Solitary〉 속 화자는 그 질문을 요즘 언어와 박자로 다시 꺼내 놓는다.


후렴에 반복되는 “I’m good, I’m good, I’m good”은 겉으로만 세게 말하는 허세라기보다, 여러 번 되뇌어야 겨우 믿을 수 있는 자기 고백처럼 들린다. 진짜 완벽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너무 함부로 깎아내리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이 노래 가사는 “나밖에 필요 없다”며 사람을 밀어내는 식의 쿨함을 내세우기보다는, “지금은 잠깐 나랑 나만 있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라고 스스로에게 허락을 주는 쪽에 서 있다. “I don’t want no yada yada yada yadee / So I gotta go”라는 구절에서 떠나는 행위도 관계를 다 지워 버리겠다는 선언보다는, 끝없이 이어지는 잡음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마음의 숨소리를 다시 들으려는 선택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어폰을 빼고, 타임라인을 잠깐 내려두고, 이 방 안의 공기와 혼자 있는 고요를 조금 더 느껴 보는 선택.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떠올리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생일, 주말 같은 날에 혼자 있으면 자동으로 “나는 뭔가 실패한 건가?”라는 생각부터 먼저 떠올랐다. 나만 초대받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달까.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묻게 된다. 이 고요가 정말 전부 결핍일까, 아니면 그동안 밀어둔 나와의 대화를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틈새일까. 꼭 숲 속 오두막까지 가지 않더라도, 방 한가운데 앉아 크리스탈 〈Solitary〉를 틀어 놓고 가사를 따라 부르다 보면, “나랑 있어도 그렇게 나쁘진 않네”라는 감각이 아주 조금씩 달라붙는다. 혼자 보내는 밤이 전부 ‘루저의 증거’가 아니라, 나와 다시 연결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마 우리 대부분은 완전히 혼자 살 수도 없고,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혼자 남는 시간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전부 실패의 증거처럼 대할지, 아니면 나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자투리로 받아들일지는 결국 내가 고르는 일이다. 〈Solitary〉 가사는 그 선택의 순간을 너무 진지하게도, 너무 가볍게도 만들지 않는다. “Yeah I’m my own party”라는 한 줄처럼, 혼자 있는 밤을 내 편으로 데려오는 법을 조심스럽게 보여 줄 뿐이다. 고독을 없앨 수 없다면, 적어도 그 고독 속에서 나를 조금 덜 미워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소로가 숲에서 그 가능성을 시험해 봤다면, 크리스탈은 오늘의 언어와 리듬으로 그 실험을 다시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