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엔 늘 은은한 단맛이 맴도는 이유

JUNGWOO〈SUGAR〉

by 문어

어떤 날은 별일도 없는데 저녁 공기가 유난히 쓰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루를 완전히 망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거창한 실패를 겪은 것도 아닌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슬쩍 “오늘은 좀 쓴 하루였다”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도는 밤들. 연애도, 일도, 딱히 큰 일은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씁쓸한 그런 날들이다. 그럴 때 우리는 대개 한 방에 모든 걸 뒤집어 줄 반전을 상상한다. 인생을 통째로 만회할 것 같은 결정적인 순간, 모든 피로를 보상해 줄 거대한 사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아이리스 머독의 철학들을 읽다 보면, 삶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녀는 사랑도, 세상을 한 번에 갈아엎는 마법이라기보다는, 이미 살던 하루의 맛이 서서히 달라지는 경험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쪽이기 때문이다.


머독에게 사랑은 ‘감정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라기보다, 세계를 향한 시선이 방향을 틀어 버리는 사건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게 될 때, 그 사람을 둘러싼 작은 것들이 유난히 또렷해진다. 옷차림이나 말투, 메시지 하나 같은 표면만이 아니라, 그날의 피곤함, 그 사람이 견디고 있는 고민,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붙잡았을 작은 기쁨들까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머독은 이 변화를 사랑의 핵심 개념인 ‘주의(attention)’라는 말로 설명한다. 내 안에 가득 찬 선입견과 억울함, “나도 힘든데 왜 나만…” 같은 자기 연민을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눈앞의 존재를 그 자체로 보려고 애쓰는 힘.


물론 이 ‘주의’가 사랑에만 한정된 개념은 아니다. 머독에게 그것은 도덕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전체적인 태도, 일종의 사랑의 윤리에 가깝다. 다만 사랑과 연애라는 경험 속에서, 그 주의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사랑은 이 주의를 통해 세계를 더 정확하게, 동시에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만드는 작업이다. 세상이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밤과 계절이 이전과는 다른 결을 드러내는 일. 같은 공기인데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감각.


그 생각을 떠올리며 정우의 〈SUGAR〉 가사를 듣고 있으면, 이 노래는 “나 지금 사랑에 빠져서 세상 꿀맛이야”라고 자랑하는 곡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일상의 온도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노래처럼 들린다. 화자의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가사 속 “When I’m feelin’ bitter”라는 한 줄. 특별한 비극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씁쓸함의 맛. 원래 이 시간대의 공기는 약간의 피로와 공허함, 그리고 연애의 공백이 섞인 쪽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맛본 순간 너에게로 / 감겨버릴 flavor”, “That’s sweet delight” 같은 문장이 끼어들면서, 같은 어둠이 다른 향을 띠기 시작한다. 같은 밤인데, 다른 맛이 스며든다. 내가 좋아하는 대목은 〈SUGAR〉 가사 중 “까만 밤 달빛 새 / 기다림도 sweet 해”라는 부분이다. 보통 누군가를 향한 기다림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외롭게 만든다. “왜 아직 답장이 없지?”, “역시 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같은 생각이 줄지어 나오는 시간, 연애의 쓴맛이 진하게 올라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 노래 속 화자는 똑같은 기다림을 두고 “sweet 해”라고 말한다. 객관적인 조건이 갑자기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살짝 옮겨진 것이다. 머독의 말대로 달라진 건 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의다.


내 쓴맛을 잊게 해 줄 다른 자극을 찾기보다, 그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의 움직임에 더 관심을 돌리는 쪽으로. “Every time, you’re filling me up / 항상 같은 마음인 걸 알잖아”라는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상대는 내 결핍을 메워 줄 구세주라기보다는, 이미 살고 있던 하루를 더 충만하게 느끼게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를 완전히 다른 인생으로 옮겨 놓는 존재라기보다는, 같은 자리에서 숨 쉬고 있는 시간을 다르게 느끼게 해 주는 사람. 연애의 단맛이란 어쩌면 이런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노래의 달콤함은 잠깐의 환상과는 다른 결을 띤다. 가사 “잠시 멈춘 시간들도 / 특별할 memories”라는 구절은 함께 보낸 순간을 과장된 판타지로 부풀리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밤과 새벽을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닌 기억해 둘 만한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다. “When I’m feelin’ bitter”라고 말하던 화자는 같은 현실 속에서 “sweet all night”을 체험하는 사람으로 서서히 옮겨 선다. 회사도 그대로고 고민도 여전히 옆자리에 있을 것이다. 연애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달라진 건 그 시간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사람을 향해 마음을 기울이는 방식뿐이다. 머독의 언어로 옮기면, 이 노래는 사랑을 통해 세계를 조금 더 잘 보는 법을 익혀 가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나는 정우의 〈SUGAR〉 가사를 듣고 나면,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은, 정말로 저 사람을 더 잘 보게 만들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내 불안을 달게 덮어 씌우는 설탕물에 가까울까.” 요즘식 연애의 단맛과 쓴맛을 나누는 기준이 어디쯤인지 다시 묻게 된다. 이 노래가 그려내는 단맛은 적어도 후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쓰디쓴 밤을 완전히 지워 새로 칠해 버리려 하기보다, 그 위에 얹히는 작은 단맛들을 끝까지 지켜보려는 마음에 가깝다. “When I’m feelin’ bitter”와 “sweet all night”이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하루도 그런 애매한 균형 위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역할은, 우리를 다시 아이처럼 만들 만큼 달콤한 환상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미 살고 있는 삶의 맛을 조금 더 섬세하게 느끼게 하고, 같은 밤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SUGAR〉 가사는 “달콤하다”는 말을 가볍게 쓰지 않는다. 쓰디쓴 날에도 여전히 어떤 얼굴을 떠올리고, 그 얼굴 덕분에 세상이 아주 조금 달라지는 경험. 아이리스 머독이 말한 사랑의 ‘주의’란 아마 이런 순간에 가장 가까이 서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몇 번이고 포개지다 보면, 언젠가 “bitter”와 “sweet” 사이에 서 있는 나 자신의 표정도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띠게 될지 모른다. 노래 가사와 철학자의 문장을 나란히 놓고 바라볼 때,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맛이 겹쳐 있는지, 그 미묘한 결들이 조금 더 또렷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