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말하며 내일을 맡기는 밤

윤아(YOONA), 〈Wish to Wish〉

by 문어

연말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비슷한 풍경을 마주한다. 한껏 꾸며진 트리와 장식등에 불이 켜지고, 카페 스피커에는 비슷한 캐럴이 나오며, 사람들 손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선물 봉투가 하나쯤 들려 있다. 하지만 진짜 마음에 남는 것은 거대한 이벤트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다. 눈이 올 듯한 밤, 집에 가는 길을 조금 돌아가며 누군가와 나란히 걷던 거리, 잡은 손이 따뜻하다고 느꼈던 기억 같은 것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사람과 맺었던 관계를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같이 보았던 하늘, 함께 넘기던 달력, 그때 건넸던 아주 짧은 약속들이 쉬이 잊히지 않는다. 윤아의 신곡 〈Wish to Wish〉는 바로 이런 순간을 배경으로 한다. 가사에는 눈과 별빛, 크리스마스 장식이 등장하지만, 그 중심에는 한 사람의 마음이 있다. “또 시간이 흐른대도 영원하도록 너의 곁에 있을게”, “약속할게 지금처럼 두 손 꼭 잡아 줄게”라는 가사는, 오늘의 분위기에 취해 내뱉는 과장된 문장이 아닌, 서로의 내일을 잠깐 맡겨 보는 말에 가깝다. 이런 장면을 독일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생각과 함께 보면, 사랑과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상투적인 이미지 뒤에서, 인간이 어떻게 불안정한 세계를 버텨 나가는지에 대한 조금 다른 풍경이 떠오른다. 아렌트는 거대한 이념이나 계획보다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내일 다시 만나자”, “다음에도 곁에 있을게”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에 주목했다. 〈Wish to Wish〉에서 반복되는 겨울밤의 고백은, 바로 그 능력이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작은 사례처럼 읽힌다.


아렌트가 중요하게 붙들었던 개념 가운데, 이 노래와 유독 겹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약속의 힘이다. 아렌트가 보기에 인간의 세계는 애초에 예측 불가능한 공간이다. 각자가 저마다의 생각과 욕망을 지닌 채 행위에 나서기 때문에, 한 번 던져진 말과 행동은 되돌릴 수 없고, 그 결과는 처음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사람들은 서로에게 앞으로의 일을 미리 말해 두고, 그 말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이때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여기서 보자”, “당분간은 네 편에 서 있을게” 같은 약속은, 불확실한 세계 한가운데서 최소한의 믿음을 유지하게 해 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아렌트는 이런 신호들이 사라지면 인간 사이의 관계는 늘 우연과 배신, 오해와 실망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작의 능력이다. 아렌트는 인간을 “시작할 수 있는 존재”로 이해하려 했다. 누군가가 태어난다는 것은, 이전까지 이 세상에 없던 출발점이 생긴다는 뜻이므로, 개인들은 이미 굳어져 버린 흐름 속에도 전혀 다른 방향을 열어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 행위에서든, 사적인 관계에서든, 인간은 언제든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다르게 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던 친구에게 문득 안부를 묻는 일, 포기했던 공부를 어느 날 다시 책을 펼쳐 이어 가는 일 같은 것들이 모두 이런 힘에 속한다. 이때 약속은 불확실성을 완전히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이러한 새 출발을 서로에게 견딜 수 있는 형태로 건네기 위한 언어에 가깝다. 요약하자면 아렌트에게, 약속은 불안정한 시간 속에서 관계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닻이고, 새로운 시작은 그 닻에 묶여있더라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추진력이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Wish to Wish〉의 가사를 다시 읽어보면, 노래가 그리는 겨울밤은 단순한 계절 장식이 아니라, 서로의 내일을 시험 삼아 내어 보는 작은 정치의 장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단,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거창한 국정 운영이 아니다. 아주 작은 집단이 오늘은 누가 밥값을 내고 내일은 누가 설거지를 맡을지 정해 가는 자리까지 포함하는 삶의 협의를 뜻한다.


먼저 약속에 집중해서 〈Wish to Wish〉의 장면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이 곡에서 눈과 별빛,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은 이미지는 분명 중요한 배경이지만, 노랫말 전체를 이끄는 힘은 다른 데 있다. “또 시간이 흐른대도 영원하도록 너의 곁에 있을게”, “약속할게 지금처럼 두 손 꼭 잡아 줄게” 같은 문장은, 오늘의 감정이 내일도 그대로일지 장담할 수 없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들린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의 핵심은 ‘영원’이란 단어가 아닌, ‘영원’이란 표현을 굳이 지금 건네려는 몸짓에 있다. 누구도 미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버텨 보자”는 말을 택한다. 이 곡 속 화자는 크리스마스의 화려한 연출 뒤에 숨지 않는다. “이 순간을 기억해 / 우리가 나눈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구절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와 웃음, 침묵과 시선들을 서로 함께 떠안자는 제안처럼 들린다. 아렌트가 말한 약속의 힘은 이런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렌트의 시각에서, 서로에 대한 다짐은 “반드시 이렇게 될 거야”라는 예언이 아니고, “일이 어떻게 틀어지더라도 나는 이 말을 기준으로 움직여 보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Wish to Wish〉 안에서 건네지는 말들은 현실을 장밋빛으로 포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쥐고 갈 한 줄짜리 문장들에 가깝다. 연애를 떠올릴 때, 우리는 자주 “그때는 서로 뜨거웠지”와 같이 감정의 온도를 먼저 말하지만, 정작 관계를 떠받쳐 온 것은 “퇴근하면 문자 할게”, “이번 주말에는 꼭 시간 비워 둘게” 같은 소소한 약속들이었을 때가 많다. 이 겨울 노래는 후자의 문장들에 조명을 비추고, 연말이라는 무대를 빌려 서로에게 내일을 살짝 내어 주는 말들이 어떻게 둘 사이의 단단한 바닥을 다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믿겠다는 말이 사라지면 사랑은 그저 지나가는 느낌으로 남지만, 반복해서 확인되는 서로를 향한 작은 다짐들 속에서, 감정은 비로소 어떤 형태를 갖춘다. 〈Wish to Wish〉에서의 밤은 그 모양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이번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란 관점에서 이 곡을 읽어 보자. 크리스마스는 달력에서 매년 같은 날로 돌아오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어떤 해의 12월은 미처 말하지 못한 고백이 쌓여 있던 날로, 또 다른 해의 연말은 헤어짐을 겨우 견뎌 냈던 밤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Wish to Wish〉는 바로 이 반복과 차이를 동시에 껴안는다. “Do you remember”로 시작하는 회상은 과거의 겨울들을 부른다. 함께 웃었던 순간, 눈을 맞으며 걸었던 거리, 처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았던 장면들이 “그날의 우리”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 곡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반짝일 네가 되기를”이라는 바람, “언제까지라도 이 마음 변치 않기를”이라는 소망을 말하며, 같은 계절 속에서 전혀 다른 내일을 구상하고 있음을 밝힌다. 아렌트가 말한 새로운 시작의 능력은 바로 이런 감각에서 체감된다. 인간은 과거에 묶여 있는 동시에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존재다. 한때 상처를 남겼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을 해 볼지, 아니면 이번 겨울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을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같은 달력 위에서 다른 하루를 연다. 〈Wish to Wish〉 속 화자는 이 모순된 상태를 그대로 안고 간다. “또 시간이 흐른대도”라는 표현에는 어쩌면 언젠가는 지금의 감정이 옅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배어 있다. 동시에 “영원하도록 너의 곁에 있을게”라는 문장은, 그 불안을 알면서도 당장은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단어를 새로 꺼내 쓰는 선택이다. 아렌트에게 사람이 하는 새 출발은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어난 일들과 감정의 흔적을 안고서도 다른 방향을 열어 보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의 겨울밤은 어제와 내일이 겹쳐진 묘한 시간이다. 이미 지나간 계절들이 “Do you remember”로 다시 불려 오고, 그 기억 위에 “언제나 반짝일 네가 되기를”이라는 새로운 문장이 덧씌워진다. 하나의 계절이 반복되는 사이, 사람들은 매번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또 조금씩 다른 종류의 내일을 상상한다. 이 곡은 그 상상의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두려는 시도다. 마치 해마다 같은 카페에서 다시 만나면서도, 그 해의 대화와 표정이 매번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계절 속에서 다른 겨울을 만들어 보려는 마음이 여기서 움직인다.


〈Wish to Wish〉는 표면적으로는 크리스마스의 설렘과 연인의 다정함을 그린 계절 노래다. 하지만 약속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두 개념을 두고 가사를 다시 읽어 보면, 이 곡은 사랑을 “지금 이 순간의 감정”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관계는 서로의 내일을 내어주는 표현 속에서 형식을 갖추고 같은 계절 속에서도 매번 다른 겨울을 열어 보려는 힘 속에서 조금씩 자라난다. 만약 아렌트가 이 노래를 들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는 아마도,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시간을 맡기고, 실패할 수도 있는 다짐을 반복하면서도 관계를 이어 가는지에 주목했을 것이다. “Wish to wish for you”라는 후렴은, 단순히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마음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너를 향한 소망을 새로 말하겠다”는 형식으로도 들린다. 사랑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매년 다시 돌아오는 겨울마다, 같은 노래를 다시 들려주고, 같은 거리를 다시 걷고, 같은 별빛 아래에서 “이번에도 한 번 더 믿어 볼까”를 조용히 반복하는 삶의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한 어떤 관계를 떠올릴 때, 너무 서둘러 “실패한 사랑이었어”, “그냥 잠깐 불타오르다 끝난 사이였지”란 표현으로 마무리해 버리지는 않았는가. 사실 그 안에는 몇 번의 진지한 다짐과, 여러 번의 작은 시작들이 숨어 있지 않았는가. 또 지금 맞이하는 겨울, 지금 듣고 있는 노래 위에서, 나는 누구와 어떤 말을 조심스럽게 다시 꺼내 보고 싶은가. “영원히”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적어도 “이번 겨울만큼은 한 번 더 같이 버텨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문장을 건네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다음 겨울을 버티게 해 줄 아주 작은 약속의 씨앗을 마련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