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에 닿은 겨울 공기, 그리고 기억하는 몸

윤미래, 〈숨〉

by 문어

오늘 그저 한 번 숨을 들이마셨을 뿐인데, 갑자기 어떤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일을 가끔 경험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밀려 들어온 차가운 공기,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가 목도리 사이로 스며든 섬유 유연제 냄새,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스치는 커피 향이 뜬금없이 어떤 얼굴을 부른다. 이별한 지는 오래고, 머리로는 다 정리했다고 생각하는데, 폐까지 들어온 공기가 마음 한가운데 어딘가를 건드리는 것 같다. 그리고 “아, 그때”를 통째로 꺼내 올려 버리는 순간, 이건 단순한 미련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하는 세계”가 얼굴을 드러내는 장면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된다. 윤미래의 〈숨〉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보여주는 곡이다. 이 노래는 왜 헤어졌는지,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 관계를 설명하는 문장을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내 주머니에 네 손이 있었을 때”, “커피가 식어 / 아이스 카푸치노 수염 길어” 같은 짧은 장면들을 불쑥불쑥 꺼내 놓으면서, 숨과 냄새, 겨울 공기와 같은 감각의 조각들로 마음의 상태를 그려낸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선을 빌려 보면, 〈숨〉은 단순한 이별담이 아니라 “어떤 사소한 감각이 한 사람의 세계 전체를 다시 깨우는지”에 대한 하나의 연구처럼 읽힌다. 바슐라르는 인간이 추상적인 개념만 붙잡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과 계절, 냄새와 온도에 기대어 세계를 다시 꿈꾸는 존재라고 본다. 집과 방, 계단과 옷, 불과 물, 겨울 같은 것들은 그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여는 시적 이미지다. 이 눈으로 〈숨〉을 따라가 보면, 숨 한 번 들이쉬는 일이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불러오는 통로가 되는지 서서히 드러난다.


바슐라르가 평생 붙들고 사유한 첫 번째 핵심은 바로 “시적 이미지”이다. 그는 기억이 연대기처럼 차곡차곡 정리된 파일이 아니라고 봤다. 즉 과거의 사건들이 순서대로 서랍에 들어가 있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보는 구조가 아니라, 어떤 감각 하나를 계기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들이 한 번에 솟구쳐 오르는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가령 한겨울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손에 닿는 머그잔의 온도, 오래 입었던 스웨터에서 나는 냄새 같은 감각의 조각들이, 바슐라르에겐 단순한 정보가 아니고 상상력을 여는 “물질적 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눈으로 보는 장면만큼이나, 손으로 만지는 감촉, 코로 맡는 향기, 피부로 받는 온도가 한 사람의 내면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사실에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느냐가 아니다. 그 장면이 지금 여기의 나에게 어떤 정서와 시간을 한꺼번에 데려오는지, 그때의 불안과 안도, 슬픔과 웃음이 어떤 결로 다시 스며드는지가 더 중요하다. 바슐라르는 이런 감각의 층위를 “물질적 상상력”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인간은 개념과 이성으로만 세계를 이해하지 않고, 특정한 사물과 계절에 몸을 기대어 과거와 현재를 다시 엮어내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 궤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두 번째 핵심 개념은 공간, 특히 “안과 밖”을 나누는 집과 방, 옷장과 서랍, 주머니 같은 이미지다. 바슐라르에게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내면을 감싸고 보호하는 상상의 그릇이다. 안쪽은 숨을 고르고 머무는 곳이고, 바깥은 세계와 마주치는 자리다. 흥미로운 건 이 안과 밖이 칼로 자르듯 분리된 구조가 아니라, 숨과 냄새, 온도와 같은 감각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를 넘나드는 왕복선이라는 점이다. 한 번 들이마신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바깥으로 내보내지는 것처럼, 바깥의 계절과 안쪽의 기억은 호흡의 리듬을 타고 계속 오간다. 바슐라르에게 상상력은 바로 이 호흡 위에서, 구체적인 사물과 계절을 매개로 일어나는 운동이다.


이제 〈숨〉의 가사를 다시 보면, 이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줄거리라기보다 바슐라르가 말한 시적 이미지들의 연쇄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분명해진다. 화자는 “내 주머니에 네 손이 있었을 때”라는 한 줄만으로, 어떤 설명도 없이 과거의 한 시점을 통째로 소환한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던 겨울 거리, 코끝이 시릴 만큼 차가운 공기, 그 안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순간이 이 짧은 이미지 안에 압축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날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가 아니다. 주머니 안에 갇혀 있던 온도, 서로의 손이 맞닿은 촉감이 지금 이 순간의 화자에게 어떤 숨을 다시 들이쉬게 하는가, 그 숨을 타고 어떤 감정들이 올라오는가 하는 점이다. “커피가 식어 / 아이스 카푸치노 수염 길어”라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오래 대화를 나누느라 커피가 식었다”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식어 버린 커피와 입가에 남은 카푸치노 자국이라는 이미지만으로, 둘 사이에 흘렀던 시간과 웃음, 장난기가 ‘몸에 와닿는 감각’으로 다시 떠오른다. 바슐라르의 말대로 이런 시적 이미지는 분석을 거쳐 이해되는 것이 아니고, 한 번에 “와닿는” 어떤 것이다. 즉, 머리로 해석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기억이다. “거리마다 네가 생각나 괜히 네가 있을 것 같아”라는 구절에서 도시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 사람의 흔적과 마주치게 되는 친밀한 장소들로 변한다. 바슐라르의 눈으로 보면, 이때 세계가 다시 구조화된다. “너와 함께 걷던 길”, “네가 올 것만 같은 모퉁이”로 공간이 재배치되는 것이다. 이 노래의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관찰자가 아니다. 이러한 시적 이미지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을 현재형으로 다시 꿈꾸는 상상력의 주체에 가깝다.


한편 다시 〈숨〉을 읽어보면 계절과 공간이 어떻게 “안과 밖”을 동시에 건드리는지에 관한 가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이 내 안에 내려 / 하얀 기억이 되어”라는 구절을 보면, 겨울은 더 이상 계절의 이름이 아니다. 바깥에 내리는 눈이 화자의 내면으로도 스며들어 “하얀 기억”이라는 층으로 변형된다. 바슐라르의 언어를 빌리면, 겨울은 단순한 기후가 아니라 “내 안쪽을 덮는 이미지의 계절”이 된다. 눈이 쌓이는 풍경은 마음 안에 차곡차곡 켜켜이 쌓인 추억의 질감과 겹쳐진다. 밖에서 떨어지는 눈과 안쪽에 쌓이는 기억이 동시에 “내려”앉는 장면이다. “너 없는 길을 걸어도 아직은 네가 보여”라는 대목에서도 바깥의 길은 분명 혼자 걷는 거리인데, 화자의 시선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흔적이 겹쳐 보인다. 길은 외부의 공간이지만, 그 위에 포개지는 장면은 철저히 내면의 것들이다. 바깥의 풍경과 안쪽의 기억이 투명하게 겹쳐지는 이중 노출의 순간, 바슐라르는 이런 겹침을 상상력의 핵심으로 본다. 집과 방, 계단과 창문 같은 구조물들이 단지 “거기에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 내 안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지지하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숨〉에서는 거리가 그런 역할을 맡는다. “거리마다”라는 표현 속에는 바깥의 공간을 하나하나 다시 자기 내부의 지도 위에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숨어 있다. 그리고 숨과 겨울 공기는 이 과정을 매개하는 요소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화자의 안쪽에 내려앉아 있던 하얀 기억이 동시에 흔들린다. 숨은 바깥과 안쪽을 왕복하는 통로이면서, 한 사람의 세계를 다시 엮어 주는 매개가 된다. 바슐라르가 말한 “물질적 상상력”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작동한다. 계절과 공기, 길과 눈 같은 재료들이 마음속에서 다시 짜이면서, 상실과 사랑, 미련과 온기가 새로운 배치로 묶인다.


마지막으로, 〈숨〉의 클라이맥스에 가까운 장면인 “네가 준 목도리를 꺼내 / 냄새 맡다 웃었어 혼자…”라는 구절을 두 개의 개념을 겹쳐 보며 다시 읽어볼 수 있다. 여기서 목도리는 단순한 방한 도구가 아니다. 바깥의 추위를 막아 주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체온과 향기를 오랫동안 품어 두는 작은 “집” 같은 존재다. 바슐라르가 집과 방, 서랍과 옷장을 “내면을 감싸는 공간의 은유”로 읽었다면, 〈숨〉 속 목도리는 그 은유가 가장 응축된 형태로 나타나는 사물이다. “네가 준”이라는 말 한마디에 이 물건은 이미 화자와 상대 사이의 시간을 저장하는 용기가 된다. “냄새 맡다 웃었어 혼자”라는 행동은, 이 용기를 살짝 열어 안쪽에 있던 계절과 온기를 다시 꺼내 들이마시는 장면이다. 바슐라르 식으로 말하면, 이때 화자는 과거를 수동적으로 떠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사랑을 현재형으로 다시 불러오는 존재다. 숨을 들이마시는 행위와 냄새를 맡는 감각, 불쑥 새어 나오는 웃음이 한 줄 안에서 겹쳐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화자가 누군가를 잊지 못해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목도리라는 작은 방을 통해 여전히 사랑과 상실, 온기와 차가움을 함께 지닌 현재의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바슐라르는, 인간은 개념이 아니라 숨과 냄새, 겨울 공기와 같은 물질적인 이미지에 기대어 자기 삶을 다시 꿈꾸는 존재임을, 이 곡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 곡이 내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내 삶에서 “숨”과 “향기”, “계절”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목도리, 어떤 골목, 어떤 카페 냄새에 내 사랑과 상실을 통째로 넣어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언젠가 혼자 걷는 겨울 거리에서, 혹은 문득 옷장 문을 여는 순간, 그 접힌 기억이 다시 풀려 나와 나를 웃게 하거나 울게 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