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EXO) 〈Crown〉
Yeah 네 앞에 내려와
기꺼이 받을 Crown
Now we back & touching down
It’s the king of the town
On the streets see the crowd
Take that 가져도 돼 모든 걸
Yeah we comin’ for that
Yeah 너에게 내 전부를 걸어
Now we comin’ for that
절대 누구도 허락할 수 없어
망가지더라도 다 던져
널 위해 지켜낼 Crown
Comin’ for that
유일한 주인은 너니까
손을 뻗어 망설이지 마
Comin’ to the throne
입 맞춘 그 순간 느낀 Truth yeah
너라는 운명의 장난 같은 Pain
쉽게 맘을 뺏겨가
선택지는 하나 Ride or die
Yeah sirens in the night whoa
너를 노리는 Sight whoa
갖고 싶어 다
Yeah 마주치는 시선 속 날 끄는 손
움직일 수 없게 날 만들어 넌
너를 향한 예감은
하나 둘 매번 적중해
심장을 파고든 감각이
새겨져 내게
Comin' for that
Yeah 너에게 내 전부를 걸어
Now we comin’ for that
절대 누구도 허락할 수 없어
망가지더라도 다 던져
널 위해 지켜낼 Crown
Comin’ for that
유일한 주인은 너니까
손을 뻗어 망설이지 마
Comin’ to the throne
저 수많은 눈이 원망을 해
난 오직 네 눈길 하나면 돼
Hard truth or hard for you to see
남은 건 오직 너의 선택뿐
Yeah sirens in the night whoa
이미 시작된 Fight whoa
후회는 없어 난
Yeah 좁혀지는 시야 속 날 향한 손
그거면 난 되는 걸
너를 향한 퍼즐이
하나 둘 맞춰져 끝내
기다린 시간이 다가와
Rise until the end
Comin' for that
Yeah 너에게 내 전부를 걸어
Now we comin’ for that
절대 누구도 허락할 수 없어
망가지더라도 다 던져
널 위해 지켜낼 Crown
Comin’ for that
유일한 주인은 너니까
손을 뻗어 망설이지 마
Comin’ to the throne
이제 누구도 막지 못할
자리에 다 왔어
긴 장면들을 지나 널 마주하지
Cause it’s time
Comin’ for that
망가지더라도 다 던져
널 위해 지켜낼 Crown
Comin’ for that
유일한 주인은 너니까
손을 뻗어 망설이지 마
Comin’ to the th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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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랑을 주제로 한 아이돌 노래를 들을 때면, 막연히 기대하게 된다. 그들이 또 얼마나 본인들의 사랑이 아름답고, 순수하며, 또 열정적인지를 노래할지. 요즘의 사랑은 대체로 더 많이 느끼고, 더 크게 외치고, 더 극적으로 증명할수록 ‘진짜’에 가까워진다고 믿어진다. 그런데 EXO의 〈Crown〉은 나의 그런 기대를 완전히 뒤집은 곡이다. 이 노래에서는 사랑을 부드러운 합의나 감정의 교환으로 전제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을 정리하고, 흔들림이 스며들 틈을 막기 위해 관계의 구획을 분명히 만드는 방향에 집중한다. 가령 “절대 누구도 허락할 수 없어”라는 문장은 관계가 흩어지기 이전에 먼저 외부로 차단선을 세우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또 “망가지더라도 다 던져 / 널 위해 지켜낼 Crown” 또한 안전하게 거리를 벌리겠다는 태도와는 정반대편에 있다. 오히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한 번 세운 기준을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결단 같다. 이 곡이 주목하는 긴장감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언제든 경쟁과 의심의 공기로 바뀔 수 있다는 현실 감각에서 온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토머스 홉스의 생각을 일부 빌려보면, 〈Crown〉이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가”가 아니라 “사랑이 어떻게 질서를 세우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홉스는 인간이 선한 의지로만 단단히 결속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과 욕망이 겹칠 때 관계가 빠르게 경계와 경쟁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봤다. 그의 철학에서 말한 ‘자연상태’는 인간의 본성을 악으로 단정하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게 만드는 공통의 힘이 부재한 조건을 가리킨다. 규칙이 종이에 분명하게 적혀 있어도, 그것을 끝까지 집행할 권력과 처벌의 장치가 없다면 사람들은 규칙이 담긴 문장보다 상대방의 의도를 먼저 계산한다. 그리고 그의 학문에서 ‘전쟁’은 실제 전투가 상시 벌어진다는 뜻만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해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계속 남아 있는, 그러므로 누구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불신은 이제 특정한 개인이 가진 결함이라기보다 구조가 만든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홉스는 이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주권’이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여기서 주권은 단지 마음의 중심점이 아니라, 흩어진 판단을 한 곳으로 수렴시키고 약속을 실제로 지키게 만드는 공적 강제력이다. 핵심은 힘의 크기가 아니다. 핵심은 마지막 판단이 어디에서 내려지는가가 분명하다는 것에 있다. 즉 주권은 결정이 매번 미뤄지거나 그때그때 다른 기준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최종적으로 위치할 자리와 최종적으로 적용될 규칙을 세워 두는 것이다. 물론 그 시도는 불안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위험도 낳는다. 모든 결정이 한 점으로 몰릴 때, 그 자리는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Crown〉이 왕관과 왕좌라는 이미지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귀착점’의 열의와 부담이다.
물론 연애가 곧바로 홉스 철학의 자연상태와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공통의 규칙을 끝까지 집행할 힘이 부재할 때, 관계가 불신과 대비로 기울어지는 구조만큼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반복된다. 〈Crown〉의 초반부는 그 구조를 감정의 언어로 끌어올린다. “절대 누구도 허락할 수 없어”는 상대를 소유하겠다는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외부의 개입과 흔들림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들린다. 이것은 사랑이 흔들리는 이유를 오로지 두 사람의 마음 부족에서 찾기보다, 그 마음을 둘러싼 환경을 먼저 문제 삼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관계에서 소문과 비교, 시선과 평가가 침입하면 관계는 둘의 방을 빠져나와 군중의 광장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잘 전달하기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를 의식하여 더 큰 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이 곡이 세우는 선은 방어의 제스처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돌아올 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자는 결심이다. 이어 “sirens in the night”, “이미 시작된 Fight”는 이런 분위기를 더 촉각적으로 만든다. 여기서 ‘밤’은 어둠 그 자체라기보다 서로의 진심을 끝까지 확인할 수 없기에 경계가 먼저 앞서는 순간을 의미한다. 싸움 역시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따져야 하는 사건이기보다, 불신이 퍼질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이 노래는 사랑을 달래기보다, 사랑이 불안정해지는 조건을 먼저 가시화한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이 중요하다. “유일한 주인은 너니까 / 손을 뻗어 망설이지 마.” 여기서 ‘주인’은 지배자의 호칭이라기보다, 최종 판단이 귀속되는 자리의 이름으로 읽을 수 있다. 홉스의 주권이 그렇듯, 관계가 불확실성 속에서 계속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어느 순간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자연상태적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상대의 선택을 확신할 수 없고, 그래서 관계는 끝없이 협상하고 끝없이 의심하며, 끝내는 결정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무너진다. 〈Crown〉은 바로 그 유예를 끊어내려 한다. “손을 뻗어 망설이지 마”는 낭만적 대사에 앞서, 불분명한 공기 속에서도 판단을 미루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남은 건 오직 너의 선택뿐”이라는 구절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을 ‘너’에게 떠넘기는 냉정함으로만 읽히기보다, 분산된 기준을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드러낸다. 결정을 한 점으로 모으지 않으면 관계는 흔들리고, 흔들리는 동안 불안만 증식한다. 그래서 왕관은 빛나는 전리품이라기보다 “여기가 우리의 결론이다”라고 표시하는 표식이 된다. 왕좌 역시 타인을 내려다보는 계단이 아니라, 결정을 지연시키지 않게 하는 중심점의 은유가 된다. 이 곡은 사랑의 온도를 높이는 대신, 사랑이 의지해야 할 구조를 묻는다.
하지만 〈Crown〉은 그 구조가 늘 아름답기만 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king of the town”, “throne” 같은 승리의 언어는 전진의 힘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그 전진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드러낸다. 수많은 눈과 소음 속에서 관계는 쉽게 흩어지고, 그 흩어짐을 막기 위해 되려 중심을 과도하게 강하게 붙잡으려는 충동이 생긴다. “저 수많은 눈이 원망을 해 / 난 오직 네 눈길 하나면 돼”는 군중에 대한 거만함이라기보다, 평가의 소용돌이에서 한 점을 붙들려는 생존적 결의에 가깝다. 문제는 그 결의가 얼마든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결정을 한 사람, 한 관계, 한 약속에 몰아주면 그 자리의 무게는 커지고, 그 무게는 서로를 지탱하는 동시에 서로를 짓누를 수 있다. “망가지더라도 다 던져”는 숭고한 헌신으로 빛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태워서라도 질서를 유지하려는 강박이 될 수도 있다. 홉스가 말한 주권 역시 불안을 잠재우는 장치이면서, 힘이 집중될 때 언제든 폭력의 가능성을 품는다는 점에서 양면적이다. 그래서 〈Crown〉의 사랑은 평온한 위로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불안과 경쟁의 공기 속에서 “흩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최종으로 삼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결국 이 노래에서 왕관은 찬란함의 장식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단단한 표식에 더 가깝다.
정리하면, 〈Crown〉은 관계가 언제든 의심과 경쟁으로 기울 수 있다는 조건을 먼저 보여주고, 그 속에서 분산되는 판단을 한 점으로 수렴시키려는 주권의 열망을 사랑의 언어로 번역한다. 만약 홉스가 이 노래를 들었다면, 그는 사랑의 순수함을 칭찬하기보다 “이 관계는 무엇을 최종 규칙으로 세우려 하는가, 그리고 그 규칙이 주는 안정과 위험을 함께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물었을 것이다. 이 노래가 유독 귀에 남았던 건 어쩌면, 지금의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보다는 이 마음으로 인해 내 관계가 얼마나 쉽게 어그러지는지, 그리고 그 어그러짐을 멈추기 위해 어떤 형태의 ‘왕좌’를 마음속에 세우는지에 더 촉각을 곤두세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불안해질 때 대화로 확인하기보다 먼저 차단선을 세우는 방식으로 관계를 지키려 하지는 않았던가. “오직 너”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은 신뢰의 언어였던가, 아니면 외부의 시선을 끊기 위해 상대에게 과도한 귀착점을 떠맡기는 방식이었던가. 내가 앞으로 선택하고 싶은 사랑은 결정을 한 점에 몰아 고정하는 방식인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인정하되 그 부담을 더 잘 나누는 방식인가. 오늘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